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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인터뷰

무대 디자이너 서숙진

2012-06-22


공연의 3대 요소는 무대, 배우, 관객이다. 그 중 무대는 관객들이 공연을 만나는 첫인상이자, 마지막 모습이다. 그렇기에 무대는 항상 사람들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무대 디자이너 서숙진 역시 그 무대에서 삶의 새로운 길을 발견한 사람 중의 한 명이다.

에디터 | 정은주(ejjung@jungle.co.kr)
사진제공 | EMK 뮤지컬 컴퍼니

뮤지컬 ‘엘리자벳’, ‘모차르트!’, ‘피맛골 연가’ 등 많은 사랑을 받은 이 뮤지컬들의 공통점은? 모두 같은 무대 디자이너가 참여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 무대들을 디자인한 서숙진 디자이너에게 작품을 고르는 남다른 안목이 있었던 것일까. 정작 그녀는 늘 작품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작품들을 할 수 있었던 기회가 그녀에게 주어졌었다. 이것은 그녀가 작품을 보는 안목뿐 아니라, 뮤지컬 분야의 스태프들의 신뢰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그녀는 무대 디자인을 그만두고, 연출 하는 것이 어떠냐는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를 들을 만큼, 작품에 대한 애정이 넘쳐 보였다. 작품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면 무대 디자인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같았기에 연출, 조명, 소품 의상 등 무대 스태프들과 부딪치면서 답을 찾는다고 말했다. 그것은 그녀가 무대 디자인의 역할에 대해서 확실히 파악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녀는 처음 무대 디자인을 했던 창작 오페라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연출 선생님이 저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무대는 정말 좋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놀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어딘가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어요. 무대는 배우와 연출자가 있는 곳을 만들어주는 것인데 그들이 움직이지 못하겠다고 하면 그건 무대 디자인이 아닌 거죠. 전시회에 출품하는 것이 맞을 거에요. 처음 무대 디자인을 시작할 땐 무대가 좋다는 말이 칭찬으로 느껴졌는데, 공연이라는 것이 어느 하나가 튀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어요.”

그녀에게 이때의 경험은 좋은 공연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좋은 공연이란무대와 소품 등 다양한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각 분야의 스태프들이 호흡을 맞추었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가장 큰 칭찬은 ‘무대 디자인 정말 좋았어요.’가 아니라, ‘공연 정말 좋았어요.’라는 말이다.

무대 디자이너는 스태프들과의 호흡만큼이나 자신의 디자인을 제대로 구현해주는 제작소와의 협력이 중요하다. 많은 연출가들로부터 무대 디자이너의 디자인에서 50%만 구현되어도 좋을 것이라는 말을 웃어넘긴 그녀였다. 하지만 제작소의 환경과 바쁜 일정 때문에 그녀가 원하는 대로 나오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그럴수록 그녀는 더 열심히 제작소를 찾았고,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했다. 큰 무대에서 무대 장막의 디테일이나, 조각상의 모습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작은 차이가 작품의 완성도를 달라지게 한다. 그녀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은 직접 제작을 하는 열정을 보였다. ‘피맛골 연가’에서 나온 행매의 나무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철망에 작화를 한 것이다.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해, 손에 닿을 듯, 닿지 않는 느낌을 주기 위해 만들었다고 했다.

그녀에게 무대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 무엇이냐고 묻자, 곧 한 가지로 대답하기 어렵다는 말을 했다. 공연의 시작과 끝, 그 모든 과정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음악과 대본을 통해 극을 이해하고, 그것을 토대로 디자인한 다음 무대 셋팅을 하고, 무대 감독이 잘 이끌어내는 모든 과정이 바로 무대 디자인이다. 예를 들어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대본을 보며 이미지를 떠올려, 극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모차르트의 감정 변화를 보여주는 경사 무대를 사용하는 것이 그렇다. 뿐만 아니라 지방 공연장의 상황에 따라 실시간으로 무대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도, 외국 뮤지컬의 무대를 한국적인 정서에 맞게 변형시키는 일 등 고려해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서숙진 디자이너는 처음부터 무대 디자이너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유학 길에서 우연히 만난 텅 빈 무대를 보고 이 공간을 채우면 좋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녀는 대학교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고, 이탈리아에서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공부할 생각이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삼 년 반 동안 준비해서 떠난 유학 길에서 내린 결정이었기에 주변 사람들을 모두 놀라게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이미 무대 디자인을 하겠다는 확실한 목표가 생긴 이후였다.

지난 6월 4일에 열린 제6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엘리자벳’은 여우주연상을 포함해 총 9개 부문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주연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력과 화려한 볼거리와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 작품으로 무대 디자인상을 수상한 서숙진 디자이너에게도 ‘엘리자벳’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좋은 작품’이라고 했다. 앞으로 그녀의 목표는 좋은 스태프, 좋은 작품을 만나 계속 작업을 해 나가는 일이라고 했다. 더불어 한국에서의 경험과 이탈리아에서의 공부를 바탕으로 두 곳의 장점들을 무대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과 나누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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