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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인터뷰

만화 작가 박경은

2012-06-26


프랑스에서는 주현절에 갈레트라는 빵을 다 같이 먹는 풍습이 있는데, 이 때 사기 등으로 만든 작은 인형인 페브를 갈레트에 넣어 놓고 여럿이 빵을 먹다 페브가 들어있는 조각을 고른 사람이 왕이 되는 놀이를 한다. ‘루이’라는 한 노년의 남자는 주현절 다음날 마트에 남은 갈레트 빵에서 이 페브를 발견하고는 자신만의 왕국을 세우고 스스로 왕이 될 결심을 하게 된다. 그 왕국은 광활한 땅도, 풍족한 자원도, 충성스러운 국민도 없는 혼자만의 일상 도피처일 뿐이다. 만화 ‘평범한 왕’은 이렇게 시작한다.

‘평범한 왕’은 전 세계 만화가, 그래픽 노블 작가들의 무대인 앙굴렘 국제만화축제의 젊은 재능 공모전 1등 당선으로 주목 받았던 작가 박경은이 지난 2009년 프랑스 유수의 만화 출판사인 ‘카스테르만(Casterman)’을 통해 출간한 만화로 최근 국내 독자들에게도 선보여진바 있다. 평범한 일상에서 발견한 노인들의 삶의 모습이 아이디어가 된 이 책은 자신의 삶에서는 누구나 왕이라는 보편적인 진리를 일러스트레이션적인 그림체와 간결한 이야기로 담아낸다. 특히 스토리의 원안과 그림은 박경은 작가가 직접 구성한 것으로 책은 프랑스 작가인 앙투안 오자남의 구체적인 시나리오가 결합되는 이색적인 협업을 통해 완성되었다. 노년을 맞이하는 한 남자가 가족들과 함께 겪은 한 시기의 이야기를 다룬 동화 같은 만화 ‘평범한 왕’, 그리고 프랑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작가 박경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에디터 | 길영화(yhkil@jungle.co.kr)
자료제공 | 세미콜론


Jungle : 정글 독자들에게 간단한 소개 부탁 드립니다.

프랑스에서 만화를 그리고 있는 박경은입니다. 스트라스부르 아르데코에서 만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했고, 졸업 후 다수의 공동작업과 개인작업을 해왔습니다. 프랑스에서 이미 두 권의 장편이 출간되었고, 지금은 세 번째 장편을 작업 중입니다.


Jungle : ‘평범한 왕’ 원안 스토리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평범한 왕’의 아이디어는 졸업작품으로 구상하고 있던 것입니다. 마지막 학년 때 주로 집에서 작업을 했는데, 당시 대낮에 집에 머물고 있던 주변의 노인 분들을 의도치 않게 관찰하게 되었죠. 그러다 그 분들의 삶에 조금 더 호기심이 생겨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Jungle : ‘평범한 왕’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아직 책을 접하지 않은 독자들이 많을 텐데,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의 답을 미리 말해주는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한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말씀드리자면, ‘우리 모두가 중요한 사람이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소외되고, 경쟁하고, 뒤쳐지고, 좋아하는 일은 있는데 실력이 못 미치고, 또한 때때로는 업신여김을 당하기도 하겠지만 자신 안에는 소중한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비록 남이 알아주지는 않는다고 해도 말이죠.


Jungle : 책의 그림체를 보면 한국이나 일본 등의 만화와는 다른 서구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데요, 이런 그림체에 영향을 준 계기가 있었나요?

좋아하는 작가들의 그림에서 조금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 만화가 지피나 프랑스의 드 크레시 작가의 만화를 자주 들여다 보았는데, 작업을 하면서 그 영향이 조금씩 배어 나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레퍼런스 작가들의 그림체는 말 그대로 영향 일뿐 그것들이 그림에 그대로 보이도록 하지는 않습니다. 보두앙이나, 하바테, 바탈리아, 죠세 뮤뇨즈의 그림도 좋아하는데, 이 작가들의 그림은 조금 정적이죠. 제 그림에는 보다 다이내믹함을 더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Jungle :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이 프랑스 유명 만화출판사인 ‘카스테르만’에서 출간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 들었습니다. 어떠한 인연이 있었나요?

우리나라 작가의 만화가 카스테르만에서 번역되어 소개되었던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가 직접 카스테르만과 연결되어 작업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할 수 있죠. 중간에 에이전시가 일을 엮어주는 것이 아니라 작가 혼자서 알아서 진행한 경우는 이제까지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카스테르만과의 인연은 앙굴렘의 젊은 재능 공모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출품된 제 작품을 눈 여겨 본 카스테르만 편집자로부터 연락이 왔었던 거죠. 그 이후 제 프로젝트를 보여주면서 함께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Jungle : 한국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프랑스에서 일러스트레이션과 만화를 공부하셨다고 했는데, 만화, 혹은 그래픽 노블이 순수미술이나 일러스트레이션과 다른 매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각각의 매체가 매력이 있긴 한데, 프랑스에서 하는 만화 자체가 굉장히 일러스트레이션 적입니다. 일본만화 전문가가 쓴 책을 읽어보니 일본출판사에서는 가독성을 상당히 중요시 한다고 하는데, 프랑스에서는 가독성이 좀 희생되더라도 작가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편입니다. 이렇든 만화의 연출 스타일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는데, 그것이 만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순수미술을 전공했었는데, 순수미술을 통해서는 작품으로 관객과 직접 소통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 점이 많이 답답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작품을 통한 느낌, 조형미 이런 것보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화를 그런 저에게 어울리는 작업이었던 것이죠. 프랑스에서 만화를 공부하게 된 것은 너무 정황화된 코드들의 일본만화가 식상해지기 시작해서 유럽과 서구만화에 눈을 돌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아시아 만화에서 다시 배워가는 것도 많이 있지만요.


Jungle : 프랑스에서 계속 활동하시고 계신데, 젊은 작가들이 활동하기에 프랑스의 환경은 어떠한가요?

시대가 변하면서 프랑스 만화의 모습도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하드커버 양장에 48페이지, 혹은 60페이지 정도의 칼라 만화가 주류였다면, 지금은 포맷도 다양해지고 페이지 수도 훨씬 많아졌습니다. 프랑스 만화계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들이 있습니다. 언론과 성인독자들의 만화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 세계의 모든 만화의 흐름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만화전문서점들, 수십 종의 만화백과사전과 만화전문잡지, 만화의 학술적 연구와 원화 판매 전문 갤러리, 수 많은 만화페스티벌 등 프랑스 사람들이 만화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죠. 그렇다고 언어와 문화가 다른 만큼 다른 나라의 작가들이 프랑스 만화의 주류로 들어서는 일은 쉽지 않을 겁니다. 한국 작가도 마찬가지고요. 또한 이곳에서도 만화가의 일이 금전적인 성공을 쉽게 보장해주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아시아 만화와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싶다면 프랑스에서의 활동이 충분히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Jungle : 다음 계획하고 계신 작품이나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

지금은 2006년의 레바논과 이스라엘 분쟁에 대한 내용을 만화로 그리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레바논인인 프랑스 시나리오 작가와 같이 작업중인 데, 그가 저와 작업하자고 보내온 시나리오가 상당히 마음에 와 닿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나라에 대해 많은 발견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 같아 개인적으로도 재미있게 작업 중입니다. 한국에도 꼭 소개를 하고 싶은 작품이기도 하죠. 그 후의 작업들도 조금씩 구체화 되어가고는 있는데, 아무래도 이 작품의 결과에 따라 어떠한 진전이 있을지 좀 더 명확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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