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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인터뷰

즐거움을 만드는 건축가

2013-02-21


THEA Awards를 아는가.
한 해 세계적으로 이뤄진 국제행사 개폐막식이나 이벤트, 쇼 혹은 공연, 테마파크 놀이시설 등을 아울러 최고의 쇼를 뽑는 상이다. TEA 세계 테마 엔터테인먼트 협회(Themed Entertainment Association) 주최인 THEA Awards는 올해 20회째로 오는 4월 미국 애너하임 디즈니랜드 홀에서 개최된다. 올해 이 세계적인 엔터테이먼트 Awards의 ‘최고의 쇼’는 작년 여수세계박람회의 메인 쇼였던 ‘빅오(BIG-O)’ 쇼가 선정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수상은 빅오 쇼의 마스터 플래너였던 조병휘 건축가가 대표로 수상하게 되었다.

조병휘 건축가는 이탈리아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활동하다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연출 회사인 프랑스 ECA2를 거쳐 현재는 마스터 플랜 그룹 ‘빅(Berni Imagination Group)'을 설립하여 새로운 프로젝트들을 준비하고 있다. 그룹 ’빅‘은 리조트, 테마파크뿐만 아니라 일상 공간 속에 연출기법을 도입하여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순간을 만들기 위해 컨셉과 테마를 개발하고, 마스터 플랜을 구체화시켜 조화롭게 만들어 가는 작업방식을 가지고 있다. 특히, 모든 이들이 즐길 수 있는 ‘쇼 디자인’을 통한 엔터테인먼트 프로젝트의 접근은 ‘빅’만의 강점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행복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장소와 순간을 창조하는 디자인 그룹 ‘빅’의 대표이자 마스터 플래너인 조병휘 건축가를 만나 보았다.

에디터 | 구선아 객원기자


Jungle : 건축가, 프로듀서, 디자이너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도시, 리조트, 공원, 건축, 멀티미디어 쇼 심지어는 축제 마늘 모자까지 테마가 있는 모든 것을 계획하고 구체화하고 있어요. 공간의 틀을 짜는 과정에서 기억할 수 있는 순간을 치밀하게 계산하여 사용자에게 최고의 기쁨을 줄 수 있는 마스터 플랜을 만들고 있습니다. 모든 공간에는 테마가 있기 마련인데, 나의 목적물과의 궁극적인 차이는 ‘일상을 탈피했다는 것’과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테마파크 디자이너(themepark designer), 이미지니어(imagineer)라고도 하지만, 건축에 기반을 둔 작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마스터 플래너(master planner)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한 것 같아요.


Jungle : 건축을 전공하다가 쇼 연출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엄밀히 말하면 쇼 연출은 내 영역은 아닙니다. 공연적인 의미에서 작품을 만드는 직업으로 명함을 내밀기에는 쑥스러워요. 나는 작품과 작품, 공간과 공간 들이 어우러져 유기적인 관계를 구성하는 ‘마스터 플랜’에 흥미를 많이 느끼고 있어요. 쉽게 리조트나 엑스포를 생각하면 쉬운데, 먹고, 마시고, 관람하고, 쇼를 보고 잠을 자는 일련의 시간과 공간의 과정을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시나리오와 각본으로 구체화하면서 일관성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내 의도입니다. 원래 나는 극도의 조형미과 공간미에 짜릿함을 느끼는 건축가였어요. 이탈리아에서 동료와 함께 아뜰리에를 운영하며 학업과 작업을 병행하였어요. 그 곳에서 도시와 건축의 이론가인 프랑코 푸리니(Franco Purini)를 만나게 되었고, 반복과 변형의 과정 속에서 생성되는 공간의 미학을 탐닉하면서 이런 성향은 더욱 굳어졌죠. 그런데 여수세계박람회의 마스터 플랜 작업과정에서 건축적 접근으로는 도저히 ‘재미있음’이 풀리지 않는 것이에요. 저 뿐만 아니라 많은 건축가의 아이디어로는 신나고 재미있는 공간을 만들 수 없었죠. 이런 나의 고민은 비일상적인 경험을 주제로 하는 물질에 대해 파고 들게 하였고, 테마가 있는 공간과 쇼의 기획으로 이어져 지금의 빅오를 만들게 되었죠. 제 콘텐츠와 마스터 플랜이 채택되어 팀이 만들어 지고 완성되어 관람객의 환성으로 채워지는 순간을 잊을 수 없어요. 순간(moment)을 느끼고 기억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이고 제가 고려해야할 첫 번째 대상이 된 거죠. 베니스대학 입학 시험에서 어떤 건축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이야기가 있는 건축입니다.’ 라고 말한 것이 또렷이 기억나네요. 이탈리아 고유의 형태적 순수성에 탐닉할 수 있는 배경이 지배적이었지만, 처음부터 공간 속에는 반드시 살아가는 이야기, 좀 더 엄밀히 말하면 ‘기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나 봐요.


Jungle : 건축 학,석사는 물론 이탈리아 건축사까지 취득하셨는데요. 건축을 공부한 것이 엔터테인먼트 일에 도움이 되시는지요.

건축은 아주 오랜 시간을 인류와 함께한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행태이자 사고입니다. 생각하기(planning), 그리기(designing), 짓기(construction)의 혼합된 절차를 통해 이뤄지는 목적물이자 프로세스인데, 분석적 사고와 목적물의 완성에 대한 목표의식은 지금의 제 일에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죠. 그냥 멋지고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을 키워주는 것 또한 건축을 통해서구요.


Jungle : 프로젝트를 기획하거나 연출할 때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에서 얻으시는지요.

‘건축적 행성(il pianeta architettonico)'라는 그림이죠. 푸리니 선생님 밑에서 배운 로트링 펜과 스타빌로 68펜으로만 그린 400짜리 정사각형 그림입니다. 아직도 내 그림수첩에는 수많은 선들과 점들이 시간 날 때마다 채워지고 있는데, 이런 찌꺼기들을 하나로 만들어 정밀한 그림을 손으로 그려내는 거죠. 거대한 스케일의 덩어리들을 치밀한 구성과 계산을 통해 꾸기거나 펴다보면 아주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솟아나지요. 현재 진행 중인 남해군의 공원 프로젝트 역시 이를 기반으로 아이디어를 제시하였구요.

Jungle : 테마 공간을 진행할 때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테마 공간의 구체화과정에서 나의 강점은 ‘쇼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기자가 나와서 하는 쇼도 있지만 물, 불, 조명 등 주변 장비들을 활용한 ‘멀티미디어 쇼’는 정적인 공간에 동적인 이야기를 제공하지요. 이게 제 특기인 것 같아요. 특히 올림픽 개폐막식 같은 1회성의 이벤트 쇼가 아니라 매일매일 지속되는 영구적인 쇼는 그 접근방식이 매우 다르지요. 빠듯한 예산으로 최고의 생산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운영과 유지관리를 항시 염두 한 계획과 설계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작은 케이블까지도 쉽게 꺼내어 고쳐낼 수 있는 유연함과 적절한 장비의 선택 그리고 안전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관람객의 기쁨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요.
이것은 공간형성의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순간적인 화려함과 외적인 쌈빡함은 금방 잊어버리기 마련이거든요. 질 좋은 자재와 기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만이 지속적인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인 것 같아요.


Jungle : 이제까지 진행하였던 프로젝트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거나 의미 있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두말없이 작년 여수세계박람회 ‘빅오 쇼’이지요. 지난 8월 12일 끝이 났지만 아직까지도 빅오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네요. 여수 밤바다가 너무 아름다웠나 봐요. 웃음. 아직도 아쉬운 것은 여수가 수도권에서 접근성이 매우 떨어져서 주변의 많은 분들이 엑스포에 방문하지 못한 것이 맘에 남네요. 2012년 세계테마협회(TEA)선정 최고의 쇼로 뽑혔고, 그 스케일과 정밀함은 당분간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쇼였는데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섭섭해요. 디즈니랜드, 유니버셜 스투디오, 라스베거스 그 어디에서도 이 정도의 쇼는 보기 힘들죠. 그렇지 않아도 장난기 많은 익살스러운 캐릭터가 등장하는 새 빅오 쇼가 만들어져 올 여름부터는 많은 분들이 찾아오실 것 같아요.

Jungle :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여수세계박람회 빅오 쇼라고 하셨는데요. 한국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와 해외에서 프로젝트를 진행 할 때 가장 다른 점이 있다면요.

전문가에 대한 배려입니다. 사실 공간 구성은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야하는 것이 맞고 이는 매우 주관적인 조언과 비판으로 이뤄지죠. 위험한 것은 구체화과정에서 계획단계의 아이디어를 백화점식으로 삽입하는 것인데, 결국 일관성이 없는 어디서 본 듯한 곳이 만들어지게 되는 거죠. 그 곳에서만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본질인데 그 것을 놓쳐버리게 되요. 전문가는 처음의 생각을 일관성 있게 계산하는 것이 직업인데, 이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면 결국 특색 없는 작품이 만들어질 수 밖에 없는 거죠.


Jungle : 어떤 마스터 플래너, 어떤 연출가가 되고 싶은가요.

말랑말랑하고 싶어요. 주변 분들께서는 제가 여전히 딱딱하다고 하더군요. 저는 항상 말랑했는데 말이죠. 웃음. 그 간 건축과 디자인은 지적수준에 맞춰 양극화되었어요. 간결하고 예쁜 디자인은 손으로 건드리기에도 맘 한편으로는 불편하잖아요. 소리지르고 뛰어다니고 더럽혀야 할 공간인데도 불구하구요. 모든 사람들이 직감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유연하고 유치한 발상은 더욱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되지요. 체험으로 공간을 이해하는 거죠, 머리가 아니라. 아마 저는 현명한 인간(Homo Sapiens)보다는 유희적 인간(Homo Ludens)이 되고 싶은 것 같아요.


Jungle :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그룹 ‘빅’을 운영 한다고 하였는데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쇼를 포함한 테마가 있는 공간을 계획하고 구체화하는 스투디오를 서울에서 조만간 런칭 할 예정입니다. ‘BIG'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지녔는데, 제 이름(Berni)과 상상(Imagination), 그룹(Group)의 이니셜로 이뤄진 동력체라고 생각하시면 좋겠네요. 나이트클럽에서부터 리조트까지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공간은 어떤 것이든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서울에서도 몇 가지 재밌는 쇼가 나올 예정이구요.


엔터테인먼트가 결합 된 마스터 플랜은 아직 국내에선 몇몇 대기업의 테마파크를 제외하고선 크게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이들 테마파크 또한 놀이시설 위주의 테마파크이다. 그러나 우리의 음악과 영화, 책 등의 문화콘텐츠가 세계적인 콘텐츠가 되는 이 시점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이야기가 있고 사람들의 체험이 기억되는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공간을 시도해 볼 시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그룹 ‘빅’과 조병휘 건축가의 재미있는 행보를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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