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8-26
사람들은 흔히 좋아하는 일을 하지 말고, 잘하는 일을 하라고 말한다. 그 두 가지가 하나를 이루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말일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이 되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았고, 결국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는 차인철 디자이너는 그 드문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리고 이제 막 그의 작업이 시작점에 섰다는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보여줄 디자이너의 탄생을 기대하게 하는 대목이다.
에디터 | 정은주(ejjung@jungle.co.kr)
자료제공 | http://aleainch.com/
Jungle : 최근 SK플래닛과의 콜라보레이션 ‘One&Another’를 진행했다. 이번 작업에 대해 설명해달라.
SK플래닛의 서비스들은 모바일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형태가 없다. 그래서 이러한 서비스들을 실제 오브젝트로 표현해, 생활과 가깝다는 인식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 중요한 콘셉트였다.
포스터는 총 9종류로 제작되었으며, 이는 다시 티저 포스터와 본 포스터로 나눌 수 있다. 이 작업을 위해서 우선 SK 플래닛의 HOPPIN, T MAP, T WORLD의 서비스를 직접 경험해보면서, 이와 어울리는 것들을 마인드맵으로 구현해 이미지들을 구상했다. 이들 서비스들의 공통점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관을 맺고 있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티저 포스터에는 누군가의 책상 위를 살펴보듯 그 위에 놓인 다양한 오브제들을 배치했고, 본 포스터의 경우 각 브랜드의 색깔을 부각시키는 한편 손 그림의 부드러운 느낌을 통해 일상의 즐거움을 표현했다.
Jungle : 전에도 SPAO나 던킨 도너츠 등의 여러 기업들과 함께 작업을 했다. 클라이언트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자유로운 편인가?
운이 좋게도 이제까지 만난 대부분의 분들이 내 작업에 많은 관심을 보여줬다. 아예 새로운 방식의 작업을 무리하게 요구한 적도 없었고, 작업 스타일에 대해서도 많이 이해해주셨다. 특히 이번 ‘One & Another’의 경우 의사소통이나 작업 과정의 모든 면에서 배려를 해주셔서, 개인 작업을 하는 것과 같이 편하고 또 즐거운 프로젝트로 기억하고 있다.
Jungle : 기존 작업들을 살펴보면 그리고자 하는 대상이 굉장히 뚜렷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러한 표현법을 선호하는가?
어릴 때부터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보다는 형체가 확실한 사물이나 인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다른 작업 방식들도 시도해봤지만, 결국엔 좋아하는 방식으로 작업하게 되었다.
Jungle : 사실적인 이미지 못지 않게, 질서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인가?
그림을 그릴 때 스케치보다는 이미지들을 즉흥적으로 떠올려 작업하는 편이다. 다양한 사물들을 그리는 일이 많은데, 그러다 보니 어떨 때는 이미지를 배치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Jungle : 그림을 보고 있으면, 색을 선택하고 사용하는 것을 즐긴다는 기분이 든다.
색깔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이 있다. 지나가다 색이 예쁜 걸 보면 저절로 눈이 가기도 하고, 필요하지 않는데도 색깔 때문에 제품을 산 적도 있다. 아마 내 작업에 있어, 이미지를 배치하고 색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Jungle : 포스터 작업들을 하다 보면, 타이포그래피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다. 개성 있고 재미있는 이미지들을 많이 보여주는데 작업을 하는 건 어떤가?
포스터 작업을 하다 보니 타이포그래피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대학 때를 비롯해 어디에서도 그래픽 디자인과 관련한 공부를 한 적이 없었다. 결국 그 답은 주변 친구들의 조언과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찾고 있다. 아직까지 어려운 부분이 많지만, 타이포그래피를 계속 해나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Jungle : 대학교에서는 서피스 디자인을 전공했다고 들었다. 지금 보여주고 있는 것은 일러스트나 그래픽 쪽에 가깝다고 생각되는데, 이 일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그림 그리는 걸 워낙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는 직접 그림을 그려 만화책을 만들기도 할 정도였다. 하지만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서피스 디자인을 전공하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약간 폐쇄적이라고도 느껴지지만 그 당시에는 전공에 집중해야 할 것만 같았다. 군대에 가서 다양한 작업들을 접하면서, 비로소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블로그에 매일같이 드로잉 작업물을 올리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서, 자연스럽게 지금의 작업들을 하고 있다.
지금 일러스트 작업을 한다고 해서, 섬유 쪽 일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섬유나 그래픽 디자인을 융합한 다른 작업들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Jungle : 이번 SK플래닛의 파티 장소로 이용했던 카페이자 문화공간인 알레아 플레이그라운드를 공동 운영하고 있다. 카페에서 작업하는 걸 선호한다고 했는데, 그 꿈(?)을 이룬 것 같다.
집에서 작업하는 성격이 못 되어서, 집 근처 카페는 안 가 본 곳이 없을 정도였다. 커피를 마시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리에 앉아 작업을 하는 것을 너무 좋아했다. 알레아 플레이그라운드를 만든 것도 우리 스스로 좋아하는 공간을 만들어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막상 공간을 운영하다 보니, 이전처럼 카페에서의 여유를 느끼지 못하기도 하지만, 카페는 여전히 내게 소중한 공간 중 하나다.
Jungle : 알레아플레이그라운드에서 유독 음악과 관련된 공연을 많이 했다. 작업들 중에도 빈지노의 음반 아트웍 등이 눈에 띄는데 음악을 평소에 좋아하기 때문인가?
빈지노를 비롯해 친한 친구들이 음악을 한다. 실제로 학교 다니면서 음악을 하기도 했는데, 적성이 음악보다는 그림에 맞다고 생각해서 마음을 접었다. 그래도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이 계속 이어져서, 공연 포스터나 앨범 아트웍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Jungle : 카페 운영자,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등 좋아하는 일은 꼭 해내고야 마는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아직도 다른 사람들에게 디자이너라고 불리는 것이 어색하다. 그 말이 조금 더 익숙해질 수 있도록 다양한 작업들을 계속 이어가려고 한다. 사실 디자이너로서의 성공이 스스로의 최종 목표나 꿈은 아니다. 문화를 기획하고, 이러한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알레아 플레이그라운드에서 현재 공연이나 음악과 관련된 클래스들을 개최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문화 전반으로 그 가능성을 넓혀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