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빈 통신원 | 2006-02-24
출처. bbc웹 사이트 www.bbc.co.uk
얼마 전 BBC의 웹사이트에서 Great British Design Quest를 실시하였다. 그 후보 중에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Dr. Martens boots, K2 phone kiosk(영국의 빨간 전화부스), mini car, mini skirt 등 50가지 영국의 디자인들이 선정되었다. 그 중에서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product design의 일색이라고 생각했던 후보들 가운데 순수한 그래픽 디자인들이었다.
Verdana typeface, Sgt Pepper album cover, Penguin paperback, The Face magazine, British road signage(도로표지판), Underground map(지하철노선표), London A-Z(런던의 지도) 등 typeface에서 지도까지 다양한 그래픽 디자인 작업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공공디자인의 분야로 볼 수 있는 것들이 3점이나 들어있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조사를 실시한다면 얼마의 공공디자인 작업이 후보에 오를 수 있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질 때마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공무원처럼 책임 의식이 필요한 자리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한 책임감과 공공디자인에 대한 인식 변화를 기대하며, 이번 칼럼에서 런던의 공공을 위한 작은 디자인적 배려, 공공디자인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취재ㅣ 황현빈 런던통신원(bni1218@hotmail.com)
이정표와 길 이름 표지판, 지하철 출구 안내판 앞에 서서 길을 찾는 사람
런던 생활에 적응을 할 무렵, 나는 여행에서 만난 영국 친구로부터 housewarming party로 불리는 집들이에 초대 받았다. "지금 주소 적을 수 없지? 내가 이메일로 주소 보냈으니깐, 쉽게 올 수 있을 꺼야. 그 때 봐." 라고 친구는 전화를 끊었고, 메일에는 진짜 집 주소만 덜렁 적혀 있었다.
'이런...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도 이보단 쉽겠다...'싶었지만, 인터넷 주소 찾기 서비스가 있어 그 곳의 위치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지만, 직접 가서 어떻게 찾을 지 막막했다. 런던에 온 지 얼마 안 된 시기였고, 그 동네는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소심한 나의 기우였고, 너무나 쉽게 친구 집을 찾을 수 있었다.
London A-Z. 표지, 지도부분과 인덱스부분
몇 해 전, 정부에서 시도한 길마다 이름 짓기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주소 체계 변화를 기억하는가? 정부 인사들이 모델로 삼은 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는 없으나, 런던의 주소 체계는 100% 그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 나라처럼 편의로 각 집마다 번지수를 정한 것이 아니라, 모든 길에 이름을 부여하고 그 길에 위치한 집에 번호를 준다.
예를 들어 Old street에 위치한 집이면, ㅇㅇ(집 번호) Old Street, London 이런 식의 집 주소를 갖게 된다. 이러한 주소체계 덕에 위치를 찾기 위한 지도 서비스도 잘 발달되어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London A-Z이다. 인덱스 페이지에서 찾고자 하는 street의 이름을 검색하면 우편번호의 앞자리와 그 지역이 표시된 페이지와 그 페이지에서 그 곳의 구역을 알려주는 기호가 잘 표시되어 있어서 런던의 어느 곳이든 주소만 가지고 위치를 확인하고 찾아갈 수 있다. 만약 런던에서 파티에 초대받게 되었을 때, 주소만 덩그러니 준다고 해서 오해하는 일은 없으시길 바란다.
역 구내와 비치된 브로셔들, 서비스 안내판
Transport of London(런던 교통국)에서 운영하는 웹 사이트를 보면 런던시의 대중을 위한 배려를 한번에 느낄 수 있는데, 개인이 선호하는 교통수단에 따른 노선표에서, 출발지에서 행선지까지 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Journey Planner, 실시간 대중교통 상황까지 한번에 알 수 있다. 또한 교통 수단도 tube(지하철), bus, 국철, 택시 등 기본적인 것에서 river cruise, 자전거, coach(도시간 버스), 도보 등 다양한 카테고리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또한 각 역마다 런던 지하철 노선표, 요금의 변화, 공사로 인한 폐쇄된 역과 그것을 연계하는 버스나 리무진 서비스 안내, 자전거 이용자를 위한 런던 자전거 도로 안내서, 버스가이드, 대중교통 이용자를 위한 문화행사 할인 안내 등 대중교통과 관계된 많은 안내 브로슈어를 배치해둠으로써 시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뮤지컬 극장 지역으로 유명한 Leicester Square 지하철 역 안의 표시문들_출구를 극장을 중심으로 정리해두었다.
비싼 대중교통비로 인해 필자가 애용하는 것은 버스인데, 조금만 익숙해지면 겁 먹을 필요 없이 지하철처럼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서울처럼 런던도 꽉 막힌 도시 교통이 큰 문제 중 하나라서 간혹 패널에 표시된 시간 간격에 맞지 않게 버스가 겹쳐져 오거나 잘 오지 않을 때도 있지만 대략이라도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시민들의 짜증을 덜고자 한다. 또한 중요 행선지마다 걸리는 평균적인 시간을 알려줌으로써 이용자로써 도착할 시간을 예상해 볼 수도 있다.
버스정류장 사인, 정보패널, 맵, 전자 안내표지판
가장 매력적인 것은 점점 보편화 되어가고 있는 전자 알림판이 그것인데, 정류장에 붙어있는 대형가이드에서 가고자 하는 행선지와 현재 위치를 확인한다. 그 다음에는 그에 맞는 버스 번호를 정한 다음 작은 패널에서 예상 소요시간과 배차간격을 확인하고 난 뒤 정류장 천정에 붙어있는 전자알림판에서 자신이 기다리고 있는 버스가 현재 지금의 정류장에 다다르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그 버스의 종점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버스가 언제 올 지 모르고 하염없이 기다리기 보다는 이러한 작지만 유용한 정보 덕택에 버스 기다리는 시간을 가까운 근처 작은 상점에서 물이나 껌을 사는 시간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깔끔한 센스가 엿보이는 경고문들의 색채 조화와 레이아웃 런던 교통국 http://www.tfl.gov.uk/tfl/
여기에서 City of London 하면 우리가 그냥 떠올리는 대 런던이 아니라 은행과 과거 길드가 있던 런던의 시티 지역을 말한다. 대 런던은 우리나라의 '구' 단위와 비슷하게 여러가지 작은 시로 나뉘어져 서로 다른 기능과 특색을 가지고 거의 독립적인 자치 구역으로 나뉘어져서 관리된다.
City of Westminster 지역은 10 Downing Street의 총리 공관과 빅벤으로 유명한 국회의사당 등 실질적인 영국 행정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모여있는 곳이다. City of London은 그와 반대인 상공업 중심이다. 유서 깊은 웨스민스터나 시티 구역의 경우에는 그에 걸맞는 시의 문장같은 identity가 있다. 그 외의 생활구역인 city나 borough 경우에는 화려한 문장보다는 그 지역의 화합을 표현하는 아이덴터티를 사용한다.
city of Westminster의 identity와 적용된 예
공공디자인은 공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만큼 시민의 편의를 생각해야 하고 그에 따른 가독과 이해도도 필수적인 고려사항이어야 한다. 더 나아가 런던 지하철 지도처럼 그 도시나 국가를 대표하는 역할까지 수행한다면 성공한 공공디자인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취재 내내 씁쓸한 기분이 들었던 것은 나만 예민해서 그런 것 일까? 멋진 공공디자인 결과물이 나오기 위해서는 훌륭한 디자이너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시민의 편의와 이익을 우선하는 배려를 가지고 디자인에 대한 뜨인 눈을 가진 정부와 행정, 자신의 진정한 권리를 찾기 위한 공공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해 열린 눈을 가진 시민의 목소리가 우선 해야 할 것이다.
즉 공공 디자인 자체에 대한 필요성을 먼저 자각하는 것이 첫 걸음이자 지름길인 것이다. 서울이나 한국을 대표하는 공공디자인 작업을 하루 빨리 볼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이번 칼럼 취재를 마무리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