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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월드리포트

상상력을 판매하는 미국의 어린이 장난감 ‘아메리칸 걸’

박선민 뉴욕통신원 | 2006-04-03



어린아이에게 있어서 장난감이란 어떤 존재일까? 우리 일상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 그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부분들도 자세히 그 내면을 바라보면 숨어있는 가치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예가 많은데 ‘아메리칸 걸’이 바로 그 중 하나의 예이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사주며,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창의력과 협동심 같은 것을 키우며, 훌륭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장난감이 어떠해야 한다는 규칙이나 법률은 없지만, 장난감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어린 시절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야 하는 존재들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미국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자랑하고 있는 어린이다운 장난감 ‘아메리칸 걸’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취재 ㅣ 박선민 뉴욕통신원(okokook@gmail.com)


‘아메리칸 걸’을 알기 전에, 처음 뉴욕의 완구점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바비 인형’ 코너에 사람이 정말로 없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5번가를 걷고 있을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 손에 뭉치로 쥐어진 자주색 종이 가방이 이런 나의 호기심에 대답을 해 주었다. 뉴욕 5번가의 많은 상점 중에서도, 특히 잘 나가고 있는 가게 중의 하나인 듯한 ‘아메리칸 걸’은 ‘장난감은 장난감답고, 교육의 효과가 있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아이디어로 현재 미국 소녀들 사이에 혁명과도 같은 인기를 끌고 있다.

‘아메리칸 걸’은 1984년Pleasant T. Rowland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녀는 어느 날 조카의 인형을 사기 위해 완구점을 방문했는데, 완구점의 인형들을 보고는 심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인형들이 ‘바비’처럼 어른인 척 하거나 아니면 ‘양배추 인형’처럼 자신의 어머니들의 행동을 흉내 내고 있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인형의 원래 본분대로, 아이들에게 교육적인 측면과 놀이적인 측면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인형을 만드는 것에 몰두하였다. 그녀는 당시 완구 회사의 통념이었던, 아이들이 10세정도 되면 인형을 가지고 놀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인형의 고객 타겟을 12세까지로 높여 잡고(현재는 대부분의 회사들에서‘아메리칸 걸’처럼 연령 목표를 잡는다고 한다), 그에 걸맞게 크기를 키우고 고급화 하는 전략을 고수하여‘아메리칸 걸’ 인형은 현재 인형 하나의 평균가격이 $100불(약 10만원)에 이를 정도로 고가이며, 평균 2만 5천원($25)하는 옷 한 두 벌과 액세서리를 구입하면 금방 20만원 정도를 소요하게 된다.

현재 ‘아메리칸 걸’의 소유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완구 회사인 Mattel(이 회사는 또한 ‘바비’와 ‘보드게임’의 소유자)로서, ‘아메리칸 걸’은 현재와 과거 속의 인물들의 생활상을, 상상 이상의 정교함으로 만들어낸 다양함이 특징이다.
‘아메리칸 걸’은 인형을 단순한 유희의 도구만이 아니라 그에 부속된 책과 영화 까지 만드는 등, 교육의 도구로서 전환하여 훨씬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The American Girls Collection’라인의 인형들이다. 이들 인형들은 미국 역사 속의 한 시대를 살았음직한 가상의 미국 소녀들을 인형화 한 것으로 인형을 통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미국 역사를 배우고, 인형의 소품들을 통해 역사시대를 현실처럼 인식하게 된다. 이제 ‘아메리칸 걸’을 가지고 놀았던 아이들에게 역사 속의 인물은 먼 존재가 아니며 자신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공유했던, 실제의 추억으로 존재하게 된다. 예를 들면, 세계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녀 몰리는 1944년에 태어난 생기발랄한 애국소녀라는 컨셉트로, 몰리를 통해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세계 2차 대전에 대해 배울 수 있고, 몰리의 옷차림과 행동을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과 가치관에 대해서 배울 수 있다. 아이들은 동화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현실의 상상력과 결합하여 자신들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들의 인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필리세티’라는 영화까지 만들어서 전 세계적으로 그 영향력을 높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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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린아이들로 하여금 살 수 밖에 없는 충동을 일으키는 ‘꼭 너처럼(Just Like You)’ 라인이 있다. 인형의 옷과 똑같은 디자인의 아이옷, 소품 등을 만들어 인형을 정말로 자신의 분신처럼 느끼게 하는 것으로, 소녀들은 인형과 함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처럼 차려 입을 수도 있고, 하얀색 티셔츠와 보라색 치마의 이웃집 아이처럼 차려 입을 수도 있다.

또 다른 ‘아메리칸 걸’의 성공요인은 너무나 정성 들여 만든 공짜 브로슈어이다. ‘아메리칸 걸’의 브로슈어가 오는 날에는 서로가 먼저 그것을 보기 위해 집안의 소녀들이 모두 싸움을 벌인다는 뉴스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인형들이 어떤 식으로 입히고 꾸며야 하는지 살아 숨쉬는 것처럼 잘 만들어진, 브로슈어를 보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주문하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킨다.














‘아메리칸 걸’이 다른 인형가게와 또 다른 점 중의 하나는 어린아이의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까 싶었던 것도 진짜로 만들어 내는 능력이다. 인형 미용실, 인형 병원 등. 어린 시절 소꿉 장난을 할 때 어린아이들의 마음속에 있던 상상력이 실제화 되는 곳이 또 ‘아메리칸 걸’이다.



인형 소품들의 디스플레이들의 사실성도 매우 뛰어나서 인형이 잠자는 시간에 보는 책이나 고양이 수면가리개, 비누거품이나 향수병, 모닥불과 썬 크림, 그리고 심지어는 장식장의 레이스 받침대까지. ‘아메리칸 걸’의 디스플레이들은 보는 사람들을 정말로 즐겁게 한다.

‘아메리칸 걸’은 장난감 최고 권위중의 하나인 ‘오펜하이머 장난감 상’을 8차례 수상하였는데, 그것은 ‘아메리칸 걸’ 인형이 그저 아이들의 말초적인 감정만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있는 인형들을 통해 아이들에게 미치는 교육적인 측면이 십분 고려된 결과라고 하겠다.










‘아메리카 걸’의 4층에는 카페와 레스토랑을 운영 중인데, 점심이 $25(이만 오 천원) 이상으로 아이들의 한끼 식사 비용으로는 상당히 비싼 편이지만 주말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항상 붐빈다. 이 레스토랑의 성공 비결은 아이에게 기억에 남는 생일파티를 해주고 싶어하는 부모의 심리를 이용해서 생일을 맞은 아이들에게는 친구들 앞에서 케익 모양의 불빛이 계속해서 반짝이는 브로치를 달아주고, 친구들 앞에서 웨이터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생일 케익을 가져다 주는 이벤트를 하는 것과, 인형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레스토랑의 입구에는 다양한 종류의 의상을 입은 인형들이 진열 중인데 우선 이 인형들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인형을 선택 한 뒤, 웨이트리스가 가져다 주는 특수제작 인형 의자에 앉혀서 인형 고유의 찻잔 세트와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식당은 한번 시작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 한 팀을 만드는 데, 음식은 세트메뉴 여러개 중 고르는 것으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맥도널드 ‘해피밀’ 세트의 고급버전 같다는 생각이다.아이들과 함께 오는 부모님을 기준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양이 많은 편이지만, 주말에는 점심을 두 팀이나 하기 때문에 상당히 촉박한 시간에 모든 것을 만들고 먹어야 하기 때문에 음식은 요리된 것을 데워서 나오는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아메리칸 걸’ 카페에서는 아무도 음식의 질을 따지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같이 간 친구들은 조차도 새로운 신나는 장소를 알려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나타낼 뿐이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데에도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아이들에게 상상력을 판매하는 곳, ‘아메리칸 걸’ 레스토랑은 인형과 함께라는 즐거움이 사람들을 마냥 즐겁게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다.

아이들에게 상상력을 판매하는 사업이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아이들을 발전 시킬 수도 있다. 어린아이다운 장난감이 없다는 불만을 그저 불평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아이디어로 승화시켰기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더 나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생활의 불편함을 아이디어로서 너 나은 삶으로 바꾸는 것이 디자이너로서의 즐거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모습에 마음을 열어두는 디자이너, 그래서 또 어떤 누가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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