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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월드리포트

뉴욕 ‘휘트니뮤지엄 2006 비엔날레’를 주목해 보자.

박선민 뉴욕통신원 | 2006-04-25



새로운 것을 찾고자 세계 예술계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의 눈이 지금 뉴욕 휘트니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비엔날레 쇼’에 몰려있다. 뉴욕의 4대 뮤지엄의 하나로 불리며, 현대 미술 개척의 중심에 서 있는 뉴욕 ‘휘트니 미술관’의 2006 비엔날레 행사가 지난 3월 7일부터 5월 26일까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휘트니 뮤지엄의 비엔날레 쇼는, 미국 아니 세계 현대 미술의 동향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차도 매우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는 행사이다.


휘트니 미술관은 처음 백만장자의 아내이자, 조각가 ‘거트루트 밴더빌트 휘트니 (Gertrude Vanderbilt Whitney)’가 미국 내 다양한 작가의 발굴과 미술작품들을 전시하기 위해 설립되었으나, 이제는 전 세계의 작가들을 향해서 그 문을 열어두고 있는 매우 국제적인 곳으로 변모하였다.


모든 미술관들에서 ‘특별전’에 관해서는 저작권이 자신들에게 있지 않기 때문에 사진 찍는 것을 허용하고 있지 않지만, 특히나 휘트니 뮤지엄은 자신들 소유의 작품 조차도 사진을 못 찍게 하는 곳이다. 특히나, ‘비엔날레’ 같은 특별 전시회에서야, 거의 매 작품마다 안전요원이 배치되어 아쉽게도 현장 사진은 전혀 찍을 수가 없어서, 뮤지엄 홍보 관계자에게 메일을 보내 사진 요청을 하여 몇 장의 사진들을 얻을 수 있었고 나머지 사진들은 휘트니 뮤지엄이 다른 매체에 제공한 사진들과 휘트니 미술관이 2006년 비엔날레를 위해 제작한 ‘Whitney Biennial 2006-Day for Night’에서 발췌를 할 수밖에 없었음을 미리 알려둔다. 이것은 아마도 최상의 사진을 통해 작품의 가장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휘트니 미술관의 노력의 일환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취재 | 박선민 (okokook@gmail.com)



사람들은 이미 한 번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무엇이든 다시 채워지기 위해서는 비워야만 하는 법이지만, 이미 편안해져 버린 ‘익숙한 수트’를 벗는 고통이란 ‘창작 혹은 처음의 고통’을 상기시키기에 누구나 피하고 싶은 힘든 과정이기 때문이다. 비엔날레를 개최하는 목적은 바로 이런 이미 어떤 형태로든 익숙해진 것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다. 썩은 물이 되지 않기 위해, 주류가 되어 버린 익숙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위한 도전의식의 발로인 것이다.


미술교류가 국제적으로 활발해짐에 따라 세계 각지에서 대규모 국제 미술전시회가 기획되고, 현대미술의 새로운 동향을 알기 위한 노력으로서 비엔날레(2년) 혹은 트리엔날레(3년)을 기획하여 세계 미술계 전체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한 행사를 열고 있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1895년에 발족하여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며, 세계적으로는1951년 발족된 브라질의 상파울루 비엔날레, 그리고 미국의 휘트니 비엔날레가 세계 3대 비엔날레를 형성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1995년부터 매2년 마다 광주 비엔날레를 개최하고 있다.


이번 비엔날레를 보면서 우선 느낀 것은, 현대 사회가 복잡하고 혼란해져 가는 것만큼 현대 예술도 어려워 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현대 추상예술을 보고 작가의 의도를 진실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되고 또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다양한 예술이란 것은, 또 다른 이름으로는 예술가들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위한 새로운 도전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급속하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특별히 예술가로서, 디자이너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선보여야 하는 어려운 직업이고, 그러한 고민 속에서 탄생한 작품들이 어려운 것은 또 어떤 면에서는 매우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비엔날레 작품들도 많은 작품들을 한번에 이해 할 수는 없었다. 작품을 보고, 작가를 보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른 비평가들의 글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었던 것도 상당부분(거의 대부분) 있었다.




폴 찬 (Paul Chan)
홍콩출신의 작가 폴 찬의1st Light 이다. 이 작품은 움직이는 무엇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사람들은 이미지들의 그림자들을 보면서 이제 그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추측할 수 있다.  검은 물체들은 계속해서 움직이며 어떠한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애쓴다. 검은 물체들이 무엇인가를 사람들이 정확히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작가에게 중요하지 않다.

이것은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작가의 세상이다. 작가는 개인적으로 보호 그룹 “Voices in the Wilderness(야생의 목소리)”에 참여하여 이라크에서 한 달을 보내기도 하고, “ The People’s Guide to the Republican National Convention(공화당 집회의 사람들의 가이드)”이라는 그룹을 창립하기도 하였다. 그는 작가이면서도 사회와 정치에 대한 깊은 관여를 하고 있다.
1st Light는 세상의 많은 방법 중에서 폴 찬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그의 현실세계에 대한 이해와 감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개인적인 사회와 예술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방법이야 말로 사람들이 각각의 다른 작가들을 통해 얻고자 하는 바로 그 바람이 아닐까.



스웨덴 출신의 작가 울스 피셔의 예술 세계는 물질들의 본질에 대한 통찰, 만드는 행위, 그리고 의도하지 않은 과정의 종합으로 나타난다. 전쟁후의 도시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폐허처럼 보이는 구멍의 연속을 그는Intelligence of Flowers 라는 이름으로 명명하였다. 어쩌면 그 구멍들이 꽃이 만개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그 이름은 완전히 비유적으로 폐허가 된 어떤 장소를 가리키는 것 같기도 하다. 그의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은 바로 그의 다른 작품들이었다.


그는 스티로폼, 진흙, 거울, 과일, 왁스, 나무, 유리, 물감, 톱밥, 그리고 실리콘에 이르기 까지 아주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의 다양한 재료들을 작품의 재료들로 응용한다고 한다. 그는 배의 반쪽과 사과의 반쪽을, 바나나의 반쪽과 오이의 반쪽을, 그리고 가지의 반쪽과 양파의 반쪽을 붙여 새로운 작품들을 만든 후에 그것들을 썩을 때까지 두거나, 우리가 평소에는 전혀 볼 수 없거나 상상해보지 않았던, 각각의 재료들이 가지고 있는 자연의 조화나 혹은 상호간의 거부감을 예술의 과정으로 이용하고 있는 매우 괴짜 작가이다. 
그리고 그의 2004년 작품 Bread House 는 빵으로  실제 크기의 집을 지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빵 조각이 떨어지고, 집이 썩어가고, 냄새가 나는 것을 하나의 예술의 과정으로 삼았다고 한다.



울스 피셔의 작품들에 있어 소재는 작품들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작품의 소재들은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바로 그것이 된다. 사람들이 ‘빵으로 만든 집’에 대해서 들었을 때, 빵 부스러기가 떨어질 것을, 썩어서 냄새가 날 것을, 그래서 영원하지 못할 것을 예상한다. 작가는 그러한 과정을 하나의 예술로서 승화 시킨 것이다.

‘마르셀 뒤샹’이 화장실 소변기에 자신의 사인을 해서 작품으로 내 놓았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비웃기도 하였지만, 대량생산된 제품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켜 버린 그의 예술적 혜안은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응용하고 거론하는 것으로 충분히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울스의 행위가 작품이 될 수 있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하는 생각은, 그의 작품에 대한 독창적인 이해가 과연 실제로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게 하는가로 판단 받아야 할 것이다.



사진 수업을 한번이라도 받았거나, 아니면 사진에 관심이 있어서 사진에 대한 별 생각이 없는 단계를 넘어서면, 이제는 누구나 ‘무엇을 찍어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 이미 사진이 발명된 지도 거의 200년이 되어 가는 이 시점에 있어서는, 지구상의 대부분을 누군가가 찍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로켓을 타고 우주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면 이미 모든 소재가 찍혔다고 본다면, 이제는 어떻게 다르게 찍느냐, 어떻게 연출을 하느냐가 사진의 무엇을 결정하는 키워드가 되고 만다. 휘트니 비엔날레는 여러 장르가 2006년 비엔날레를 위해 선택한 ‘사진’ 부분의 3 작품을 감상해 보자.


첫 번째 조단 울프선의 작품의 제목은 아마 세계에 존재하는 사진 제목 중에 가장 길 수도 있겠다. 그 제목은 영화The Great Dictator (1940)에서 찰리 채플린의 마지막 연설 전체이다. 이 사진은 그 연설을 사진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이것이 제목


I’m sorry but I don’t want to be an Emperor—that’s not my business—I don’t want to rule or conquer anyone. I should like to help everyone if possible, Jew, gentile, black man, white. We all want to help one another, human beings are like that. We all want to live by each other’s happiness, not by each other’s misery. We don’t want to hate and despise one another. In this world there is room for everyone and the earth is rich and can provide for everyone. The way of life can be free and beautiful. But we have lost the way. Greed has poisoned men’s souls—has barricaded the world with hate; has goose-stepped us into misery and bloodshed. We have developed speed but we have shut ourselves in: machinery that gives abundance has left us in want. Our knowledge has made us cynical, our cleverness hard and unkind. We think too much and feel too little: More than machinery we need humanity; More than cleverness we need kindness and gentleness. Without these qualities, life will be violent and all will be lost. The aeroplane and the radio have brought us closer together. The very nature of these inventions cries out for the goodness in men, cries out for universal brotherhood for the unity of us all. Even now my voice is reaching millions throughout the world, millions of despairing men, women and little children, victims of a system that makes men torture and imprison innocent people. To those who can hear me I say “Do not despair.” The misery that is now upon us is but the passing of greed, the bitterness of men who fear the way of human progress: the hate of men will pass and dictators die and the power they took from the people will return to the people, and so long as men die [now] liberty will never perish.… Soldiers—don’t give yourselves to brutes, men who despise you and enslave you—who regiment your lives, tell you what to do, what to think and what to feel, who drill you, diet you, treat you as cattle, as cannon fodder. Don’t give yourselves to these unnatural men, machine men, with machine minds and machine hearts. You are not machines. You are not cattle. You are men. You have the love of humanity in your hearts. You don’t hate—only the unloved hate. Only the unloved and the unnatural. Soldiers—don’t fight for slavery, fight for liberty. In the seventeenth chapter of Saint Luke it is written “the kingdom of God is within man”—not one man, nor a group of men—but in all men—in you, the people. You the people have the power, the power to create machines, the power to create happiness. You the people have the power to make life free and beautiful, to make this life a wonderful adventure. Then in the name of democracy let’s use that power—let us all unite. Let us fight for a new world, a decent world that will give men a chance to work, that will give you the future and old age and security. By the promise of these things, brutes have risen to power, but they lie. They do not fulfill their promise, they never will. Dictators free themselves but they enslave the people. Now let us fight to fulfill that promise. Let us fight to free the world, to do away with national barriers, do away with greed, with hate and intolerance. Let us fight for a world of reason, a world where science and progress will lead to all men’s happiness. Soldiers—in the name of democracy, let us all unite! Look up! Look up! The clouds are lifting—the sun is breaking through. We are coming out of the darkness into the light. We are coming into a new world. A kind new world where men will rise above their hate and brutality. The soul of man has been given wings—and at last he is beginning to fly. He is flying into the rainbow—into the light of hope—into the future, that glorious future that belongs to you, to me and to all of us. Look up. Look up.



두 번째 작품은 이른 새벽인지 이른 어둠인지 전혀 구분이 가지 않는다. 하늘은 맑은데 폭풍우가 몰아치는고 아주 밝은 조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것은 영화의 촬영장 같다는 생각이 드는, 과연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매우 궁금하게 만드는 비주얼의 효과가 매우 극적인 작품이다. 피에레 휴이헤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을 만드는 것을 즐기는 작가라고 한다. 그는 필름과, 사물들, 그리고 퍼핏쇼 같은 이벤트들을 자신의 작품의 소재로서 활용하고 다양한 소재들을 가지고 자신이 직접 연출을 함으로서,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고 극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작품 속에 사용된 것을 하나씩 분석하기 보다는 전체적으로 묘한 느낌을 사랑해 주는 것이 피에레 휴이헤의 작품을 잘 이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워낙 큰 나라라 각각의 주마다 아주 다른 성향을 지니고 있는데, 뉴욕에 살면서 부시의 지지자들을 본 것은 2005년 대통령 선거 직전 공화당 사상 최초로 대통령 전당대회를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한 약 3일간 이었다. 그리고 ‘Stop Bush’의 빨간색 뱃지를 붙이고 다니는 것을 본 것은 거의 3년간의 나의 뉴욕 생활 전부 동안 이었다. 한마디로 뉴욕은 부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동네이다.


리차드 세라의  Stop bush 는 2004년 미국의 이라크 군대가 아랍병사들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인격적으로 심한 모독을 준 Abu Ghraib 감옥에서 한 이라크 군을 묶어두고 머리에 무언가를 씌워서 유령처럼 보이게 만든 사진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와서,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두꺼운 오일 스틱으로 그린 작품이다.



처음 비엔날레 전시장을 들어서면 ‘보이는 피스타워’라고 명명된  탑이다. 탑 속의 각각의 작품들은 작가가 평화란 어떤 것인가에 관해서 생각한 것을 나타내고 있다.
마크 수베로와 릴클이트 틸아반이자는 태어난 곳도 30년의 나이차를 가지고 있는 매우 다른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예술이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고유의 신념을 지니고 있는 예술적 동지들이다. 2006년 비엔날레를 위해 이 두 작가가 뭉쳤는데, 피스타워는 처음 마크 수베로에 의해 1966년 베트남 반전을 위해 설치되었는데, 이때는 200피트 크기의 예술작품이었다고 한다.

당시 이 작품을 위해 많은 로이 리히텐슈타인등의 유명 작가가 참가하였는데, 탑은 당장 반대편의 공격 대상이 되었는데 이것은 더욱 큰 미디어의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2006년의 피스타워는 그때의 정신을 이어 받아 뮤지엄의 벽의 크기에 맞게 재 디자인 된 것으로 그 정신만은 1966년의 반전정신을 이어 받고 있다고 한다. 솔직히 처음 이 작품을 입구에서 대했을 때 너무 흔한 모양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이 작품이 그 흔한 피스탑들의 원조를 이어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니 좀 묘한 경외의 느낌이 든 작품이었다.





이번 비엔날레 쇼에 관한 글을 쓰면서 미술 비평에 관해서는 학생 수준의 지식만 가지고 있는 내가 괜한 모험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하였지만, 계속 노력 하는 뉴욕 예술계의 모습이 바로 비엔날레이고, 그러한 것이 뉴욕을 더욱 뉴욕답게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용기를 가지고 이번 글을 쓰게 되었다(그러니 다른 의견을 가지고 계시더라도 같은 그림을 보고 다른 의견을 느껴보는 재미로 생각하시고 정글 독자들께서 너그럽게 이해하시기를 바란다).


모든 작품들이 모두 어떠한 이유로 휘트니 미술관 전시에 선택되었지만. 특히나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처음엔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이었다. 처음에는 별로 감이 잡히지 않는 것들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이 내가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보기 시작하면 작품들이 나에게 문을 열기 시작한다는 깨달음과 감동이란 것은 개인적으로 아주 큰 즐거움이었다.


휘트니 뮤지엄의 기획자의 말처럼 “세상에는 점점 보지 않고, 비평되지 않은 것들이 줄어들고 있다”. 이제 그만큼 사람들이 웬만한 시각적 충격에는 별로 반응도 하지 않는 세상이 와 버린 것이다. 이렇듯 시각 영상이 발달하게 된 시대에 휘트니 비엔날레는 그 동안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진주를 찾기 위한 혹은 더 다듬는, 2년 마다 열리는 큰 행사이다. 특히 우리에게는 한국이 낳은 대표 예술가 백남준 선생의 작품을 거의 매 휘트니 비엔날레 쇼마다 미국 화단에 크게 소개하여 거장의 반열에 한 층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 것처럼, 이제 제2, 3의 한국의 백남준이 휘트니 비엔날레를 통해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고 알려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이번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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