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진 런던통신원 | 2007-07-03
런던 첼시에서 18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첼시플라워쇼(Chelsea Flower Show)가 5일간 성대하게 열렸다. 첼시플라워쇼는 영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1년 동안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아주 유명하고 대표적인 영국의 문화 행사이다. 국영방송인 BBC에서는 특집으로 기간 내내 그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런던 뿐만 아니라 영국 내의 각 지방에서도 이 전시를 보기 위해 2달 전부터 표를 예매하기 위해 분주하며 오픈 2-3주 전에 이미 모든 표가 매진이 되었고, 행사가 열리는 기간동안 이 일대의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수많은 인파가 행사를 찾았다. 그 화려한 꽃만큼 볼거리가 풍부한 축제의 현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취재 ㅣ 이서진 런던통신원( seojinlee@gmail.com )
영국 사람들은 유난히 ‘가드닝(정원 가꾸기)’을 좋아한다. 취미를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런던은 도심 한가운데 큰 공원들이 많고 주택가에도 수십 혹은 수백년 된 나무들이 무성하다. 여름이면 도시 전체가 푸르름으로 가득하여 녹색과 회색빛의 최신식 건물 혹은 유서깊은 건물의 주홍빛 벽돌색과도 잘 조화를 이룬다. 영국의 집들은 우리나라처럼 아파트 단지의 모습이 아니다. 대부분 2-3층으로 된 빅토리안 스타일의 하우스가 타운을 이루며 줄지어 있고, 길과 마주하지 않은 뒤쪽으로는 대부분 정원을 갖고 있다.
영국에서 각양각색의 꽃들을 심고 열심히 가꾸는 것은 취미 생활을 넘어 그 가정의 경제적 문화적 척도를 과시하는 한 방편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잘 가꾸어진 정원은 그만큼 경제적인 풍요와 정신적인 여유가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집을 매매할 때에도 정원의 크기와 잘 가꾸어진 정도는 시세에 반영될 정도로 중요한 요소이다.
영국의 날씨는 비가 자주 오는 온난다습한 해양성의 기후이다.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고 여름에도 무덥지 않으며 선선한 바람과 함께 긴 일조량을 자랑한다. 이러한 기후는 나무와 꽃들이 잘 자라나기에 최적의 조건이 된다. 선진국인 영국에서 삶의 풍요로움을 위해 꽃이나 화초를 가꾸고 선물하는 것은 특별하다기 보다는 매우 일상적인 일이다.
가장 인기를 끌었던 곳은 플라워디자인 부스였다. 전시를 보기위해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 전시는 3가지 경연대회에 출품된 작품들과 플로리스트의 시연코너로 이루어져 있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꽃꽂이와 관련된 곳이었다.
우리가 많이 보아왔던 꽃꽂이이지만, 점과 선의 요소와 칼라 감각을 얼마나 새롭게 그러나 조화롭게 창조할 수 있는가에 관심을 두었다. 영국에는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꽃들이 재배되고 또한 수입되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창의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양한 솔루션을 제시하였다.
눈에 띄는 두 작품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두 작품 모두다 금상을 수상했다. 남들과 얼마나 차별화를 시킬 수 있느냐 그리고 또 얼마나 새로운 개념의 꽃꽂이를 시도할 수 있느냐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역력히 보이는 작품이었고, 꽃꽂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걸작이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다음은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스토리를 꽃으로 표현하여 전달하는 과제였다. 윌리엄텔, 오페라의 유령, 나비부인 등 우리와 친숙한 내용이 많았다. 그 중 일본의 한 플로리스트가 만든 오페라 ‘나비부인’의 주인공을 형상화한 꽃으로 만든 기모노가 대상을 차지했다. 일본 전통 의상인 기모노의 화려함과 동양적인 절제미를 서양난을 사용해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의 한복을 이렇게 꽃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웨딩 플라워 종목도 있었다. 런던도 웨딩 시즌이 있는데 6월에서 시작해 8월까지 이어진다. 런던의 여름은 우리나라의 5-6월 같은 날씨로 따뜻하고 맑고 청명한 하늘이 펼쳐져 야외 결혼을 많이 한다. 순백색의 꽃만이 아닌 다양한 종류와 색깔의 꽃으로 부케를 표현하였다 한쪽에서는 출품하였던 플라워 단체나 가게에서 나와 부케, 코사지 등을 시연하는 코너를 만들어 홍보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마지막으로 8-12세의 아이들이 꽃을 재료로하여 만든 쇼핑백 출품작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어려서부터 꽃과 원예에 관심을 심어주기 위해 기획되었다고 한다. 아이들의 다양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코너였다. 이런 경험을 통해 미래의 플로리스트를 꿈꾸는 아이들이 늘어가지 않을까 싶었다.
다양한 형태의 정원이 공원 내에 만들어졌다. 로마 시대를 연상케하는 정원, 사막에 있을 법한 정원, 심플하고 미래적인 가구들이 가득한 집과 어울리는 정원 등 다양한 테마를 선보였다. 아무것도 없었던 공간에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지만,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서 가꾸어진 것처럼 기품있고 정제된 모습이 놀라웠다.
“여러분의 정원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당신의 상상 속에 있는 그 정원을 우리가 만들어드려요.” 이렇게 각각의 정원을 만든 회사에서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팜플렛을 나누어주며 열심히 홍보하고 있었다. 잠재 객들의 수요를 이끌어내기 위한 회사의 열띤 홍보 열기가 느껴졌다.
장미라고 다 똑같은 장미가 아니다. 꽃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해주는 코너가 준비되어 있었다. 다양한 품종을 전시하여 한 종류의 꽃이라도 그 안에 다양한 품종과 색깔, 크기 등이 존재함을 보여주었다. 한쪽에는 강당을 설치해 강연을 하거나 비디오를 상영하여 꽃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고 있었다. 벽은 역시나 꽃 사진으로 채워진 판넬을 설치하여 만들었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쇼케이스는 ‘영국에서 재배되는 꽃과 채소’를 주제로 한 부스였다. 꽃과 야채가 언뜻 잘 매치가 되지 않는 것 같지만, 발한 발상의 전환을 주제로 새로운 꽃꽂이가 탄생했다. 서로 다른 텍스쳐와 형태 그리고 색깔이라는 개념으로 채소들을 하나의 오브제로 바라본 것이다.
전시하는 곳이 너무 넓기 때문에 중간중간 마련한 휴게시설은 자연과 함께 숨쉬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라이브 음악을 연주하는 파빌리온이 설치되어 관람자들의 눈뿐만 아니라 귀 또한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지친 다리를 쉬게하고 피곤함을 달래줄 음식들을 먹을 수 있는 곳이 곳곳에 마련되었고, 주변에는 원예용품들을 구경하고 구매할 수 있는 코너도 질서정연하게 마련되었다. 모종삽에서부터 원예용 장갑, 페인트까지 원예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울창하게 자란 포플라 나무길을 따라 줄지어 있는 샵들이 관람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논스탑 쇼핑으로 평소에 필요했던 원예에 관한 모든 것들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영국에서는 부자들만이 멋진 인생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검소하지만 그 안에서 풍요로운 삶을 꿈꾸고 가꾸어가는 것이 영국 문화의 바탕이다. 지갑이 두둑하진 않지만 마음이 두둑한 행복으로 가득찬 삶. 꽃 한송이를 집안에 심으며 누리는 마음의 평화가 진정으로 윤택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영국인들의 대답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