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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를 끄는 문화적 힘, 라이프치히 도서전

유지원 독일 통신원 | 2009-06-02




10월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늦가을을 접는다면, 3월의 라이프치히 도서전은 초봄을 연다. 3 12일 목요일부터 15일 일요일까지 2009년 라이프치히 도서전(Leipziger Buchmesse)이 성황리에 열렸다. 중세부터 박람회의 도시로 성장해온 라이프치히의 도서전람회는 5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글ㅣ 유지원 독일 통신원,


사진ㅣ 유지원 , Tom Schulze∙Uwe Frauendorf/ Leipziger Messe GmbH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출판업자들을 위한 상업적인 성격이 강하다면, 라이프치히 도서전은 일반 독자들을 위한 문화적인 성격이 강하다. 책을 사랑하는 대다수 방문객들에게 보다 만족감을 주며 사랑 받는 도서전으로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과 차별화된 입지를 가진다. 인구 50만의 도시인 라이프치히에, 4일 동안 14 7천 여명의 방문객이 도서전을 찾았다. 박람회장뿐 아니라 시내 곳곳에서 ‘라이프치히는 책을 읽는다(Leipzig liest)’라는 이름의 페스티벌 아래, 책과 관련한 1900여 개의 행사가 열렸고, 모두 매진되었다. 독일 국내외 정치 및 문화계 인사들 역시 라이프치히 도서전을 방문해서 주목을 끌었다. 문학계에서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노장 귄터 그라스부터 젊은 스타 벤야민 레베르트에 이르기까지 명사들이 찾아왔고, 자신들의 신작을 직접 낭독하는 프로그램이 쉼 없이 이어졌다.


 


라이프치히 도서전의 규모는 프랑크푸르트보다 작지만, 꼼꼼하게 둘러보기로 작정한다면 34일도 모자란다. 중앙의 유리홀을 중심으로, 4개의 홀들은 사각형을 이룬다. 홀과 홀 사이는 서로 통로로 연결되어 있어 모두 헤매지 않고 쉽게 이동할 수 있다. 유리홀에서는 메인 행사가 열리고, 4번과 5번 홀에는 독일 국내외 메이저 출판사들의 부스들이 자리잡고 있다. 2번 홀은 대부분 공간이 만화 팬들을 위해 과감하게 투자하고 있다. 그리고 디자이너라면 3번 홀을 놓쳐서는 안 된다.




책으로 노는 젊은 도서전, 2번 홀

평소에 글자라고는 눈에 넣지도 않을 것 같은 청소년들이 비싼 입장료를 기꺼이 지불하며 자발적으로 찾아와 주요 방문객 층을 형성하는 점이 시선을 끈다. 더구나 그들의 손에는 책이 들려있기까지 하다. 이것은 수년 전부터 라이프치히 도서전에서 눈 여겨 보아온 현상이었다. 여기에는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 각별한 신경을 쏟아온 주최측의 적극적인 유치 노력이 있었다. 박람회장 전체 면적의 1/3, 미래를 향한 독서문화의 초석인 청소년과 어린이들을 위해 과감히 할애되었다. 물론 학부모나 교사들, 진지한 어린 독자들을 위한 교육적인 프로그램으로 균형을 잡으면서도 즐거움의 장으로서도 기능하고 있다.


만화의 컨텐츠적 가능성 역시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독일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가장 즐겨 읽는 책으로는 일본 망가 등이 꼽힌다. 그래서 2번 홀은 수년 전부터 만화 팬들의 메카로 자리잡았다. 특히 자기가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의 복장으로 정성스럽게 옷을 만들어 입고 독일 전역에서 찾아온 청소년들의 코스프레는, 수년 전부터 라이프치히 도서전 특유의 독특한 문화 현상으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수동적인 독자로만 여기기보다는, 그들의 눈높이에서 함께 놀면서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한다는 점에서, 잘된 기획이라는 인상을 준다.


 


참고로 일본 망가의 코너는 주독 일본 외무부의 스폰서를 받고 있다. 독일의 많은 청소년들이 망가를 통해 일본문화에 대한 동경을 키우고, 일본적 감성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한 동경을 충족시키기 위한 행사의 일환으로, 일본식 다원을 설치하여 서예, 다도, 바둑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디자이너를 매혹시키는 보물창고, 3번 홀

디자이너라면 3번 홀에 꼭 들러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공모전 부스에서는 14점의 수상작을 비롯하여, 유럽, 아시아, 남북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 세계 여러 대륙 각국에서 우수한 디자인으로 뽑혀온 수백여 권의 도서들이 집결되어 있다. 지난 2008년 세계의 서적 디자인 트렌드를 한 눈에 파악하고 싶다면, 여기서만도 반나절을 넘게 할애해야 한다.


 


 ‘고서적 박람회(Antiquariatsmesse)’ 스탠드에서는 서적 디자인의 역사적, 시간적 흐름을 감지할 수 있다. 유럽 서적 인쇄의 역사가 시작된 15세기 이래 고색창연한 서적들 속에 담긴 아름다움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다. 오래되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서적, 정교한 삽화가 그려진 의학서, 일러스트레이션이 눈길을 끄는 19세기 어린이 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영감을 주고 상상력을 자극한다. 오래된 책 속에서 의외로 현대적인 감각을 발견하기도 한다. 20세기 초중반의 서적들로 그다지 오래되지는 않았어도, 절판이 되어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워진 타이포그래피나 그래픽 디자인 책들이 꽂힌 서가도 보인다. 국내에서는 디자인 역사책의 도판에서나 접할 법한, 바우하우스에서 간행된 서적들도 판매되고 있다.






3번 홀에서는 구텐베르크 시대의 인쇄기를 비롯해서, 지난 시대의 여러 인쇄기를 직접 다루어보고 제지 및 제본 공정 등을 접할 기회 역시 주어진다. 캘리그래퍼들이 유럽 글자체의 역사를 친절하게 설명해주기도 한다. 그래픽이나 커뮤니케이션 디자인학과가 설치된 여러 독일 미술대학의 부스들도 3번 홀에 자리잡는다. 각급 미술대학의 교수나 학생의 작품 중 가장 성공적으로 꼽힌 서적 디자인 및 폰트 디자인 등이 진열된다. 미술대학 학생들의 창의력 넘치고 재기 발랄한 부스 디자인이 눈 여겨 볼만 하다. 독일에서는 작품뿐 아니라 전시 공간 자체를 디자인적 대상으로 삼는 추세가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만약 내년에 이곳을 찾는다면,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방문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수 많은 볼거리 가운데서 보물 같은 책들을 발굴해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방문 목적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이곳을 헤매다가, 혹은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해 허탕을 친다고 해도, 바로 이 공간 속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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