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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월드리포트

호치민의 한국학생을 찾습니다

오유미 | 2010-05-07



많은 유학생들이 꿈을 찾아서, 혹은 배움을 채우기 위해서 유학 길에 오른다. 영국이니 프랑스니 예술 관련 분야로 진로를 정한 유학생들이 많이 찾는 나라들이 있지만 호치민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물론 다른 나라에 비해 그 수가 현저히 적지만 호치민 미술대학에도 한국 유학생이 있다는 말씀. 한국인 호치민 미술대학생이 전시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호치민 미술대학 캠퍼스를 찾았다.

글 | 오유미 (ymcity@hanmail.net)
에디터 | 정윤희 (yhjung@jungle.co.kr)

지난 3월 1일, 호치민대학교 신관 1층 갤러리에서 눈여겨 볼만한 전시회가 열린다기에 갤러리를 찾았다. 두 사람의 학생 중 한 명이 한국인 유학생이었는데, 한국인 유학생이 전무하다시피한 호치민에 한국 학생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그 사연이 궁금했던 것.
호치민 미술대학을 찾아 가는 길은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오후의 여유를 만끽하는 시민들이었다. 휴일이라 그런지 담벼락에 옹기종이 모여 있는 노점에서 사람들이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는 모습이 나른해 보이기까지 하다. 드디어 캠퍼스 입구. 호치민에 있는 학교들은 대개 캠퍼스 크기가 작은 편이다. 비싼 땅 값 때문이리라. 건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작품들이 미술대학교임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갤러리에 도착해 잠시 기다리니 김정현 학생이 꾸벅 인사를 해 온다. 많고 많은 나라를 두고 왜 베트남을 선택했는지, 호치민 미술대학에는 어떻게 입학할 수 있었는지, 또 무엇을 배우고 어떤 친구들과 함께 하고 있는지 등 물어보고 싶은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필자가 쏟아내는 질문에 차분히 대답하던 모습이 어찌나 듬직하던지. 그는 베트남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한국에서 미대입시를 준비하던 중 부모님이 호치민 한국학교로 발령이 나자 함께 오게 됐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아무리 부모님을 따라 온 곳이지만 딴에는 대단한 각오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호치민 미술대학교는 학기의 시작이 우리나라와는 달리 8월부터 시작된다고. 고등학교 3학년 때 호치민에 와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베트남어와 실기 시험을 준비했단다. 외국어라는 것이 어렵기 마련이지만 베트남어는 생소한데다 다섯 가지의 성조가 있어 발음뿐 아니라 억양에도 신경 써야 한다. 또 중국어보다도 성조가 하나 더 많은 베트남어는 질문임에도 성조 때문에 말꼬리를 내려야 하고, 하나의 단어에 여러 개의 뜻이 있는 경우가 많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닌데, 베트남어 능력 시험을 통과하는데 1년 반 밖에 걸리지 않았다니 그의 각오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산 너머 산이라고, 호치민 미술대학교 입학을 위한 실기 시험은 일주일 내내 하루 종일 봐야 했다고. 날마다 다른 분야의 시험을 치렀는데, 뎃생 시험의 경우 방마다 실제 모델을 세우고 그림을 그렸단다. 입학한 후에도 학교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매년 한 달에서 한달 보름 일정으로 다녀오는 ‘뜩떼’라고 불리는 스케치 여행이 기억에 남는다고. ‘뜩떼’를 떠나면 아예 지역을 정해 숙소에서 먹고 자며 그림을 그리는 생활을 한다. 그렇게 입학한지 벌써 4년이 지났다는 그에게 진로를 물었더니 아직 멀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호치민 미술대학교는 정규과정이 5년이기 때문. 실크과, 베트남 전통 옻칠과, 유화과 등 3개 과에서 유화를 전공하는 김정현 학생은 오전이면 모델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창작 수업을 한다. 창작 수업의 경우 교수가 매달 다른 주제를 선정해 주면 그 주제에 관한 그림만 그리는데, 이번 전시회에 출품한 그림들은 모두 수업 외에 따로 시간을 내어 작업한 것들이다. 이렇게 빠듯한 학교 생활 속에서 언제 이런 그림들을 그렸는지 부지런하기가 개미 저리가라다.



외국인이기에 친구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는 그는 3학년 때 갔던 ‘뜩떼’에서 바닷가 어린이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니 이렇게 즐거운 추억이 또 어딨으랴 싶었다. 물론, 그 바닷가에서 그려야 했던 드로잉이 4~50장이나 되었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마지막으로 호치민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에게 해 줄만한 조언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생각보다 간결한 대답을 내놨는데, 베트남이라고 무시하는 편견을 버릴 것과 베트남어를 할 수 있다면 공부하고 생활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는 것이다. 취재 시 깜빡하는 바람에 지인에게 물어보니, 현지인들은 1년에 약 100 ~ 150달러, 외국인은 1년에 2000달러 정도 소요된다고.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언제나 간편한 차림으로 다닐 수 있는 한결 같은 날씨, 외국인에게 친절한 사람들, 아시아 권이지만 이국적인 문화, 저렴하고 좋은 품질의 유화 재료, 그리고 입학 때부터 혹독하게 훈련시켜주는 학교까지(베트남의 미술대학은 하노이와 호치민 두 군데 뿐이며, 지각에도 엄격하다고 한다). 이만하면 그림에 푹 파묻혀 지내고 싶은 학생들에게 괜찮은 유학생활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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