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영 | 2011-05-13
런던의 지하철을 타면 매일 퇴근 시간 즈음 무료로 나눠주는 London Evening Standard 라는 신문이 있다. 작년 11월 즈음 그 신문에서 눈에 잊혀지지 않는 작품 사진을 발견하고 가위로 잘라 고이 스크랩 해두었던 적이 있다. 그 기사는 National Gallery에서 Bridget Riley라는 예술가의 전시가 있을 것이라는 기사였다. 미루고 미루다 겨우 이제서야 그 전시를 방문해 보게 되었다.
글, 사진│ 김도영 영국 통신원
에디터 | 이은정(ejlee@jungle.co.kr)
Bridget Riley: Paintings and Related Work
2010.11.24 – 2011.5.22
Mon-Sun 10am – 6pm, Friday 10am – 9pm
Sunley Room in National Gallery
무료입장
본명 Bridget Louise Riley, 1931년생 런던출신. 그녀는 영국을 대표하는 옵 아트 (Op Art)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 1949년부터 1952년까지 Goldsmiths College에서 학사를, 1952년부터 1955년까지 Royal College of Art에서 석사를 마쳤다. 1960년 즈음부터 눈의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기하학적인 패턴의 블랙 앤 화이트로 구성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1965년 뉴욕 MOMA (Museum of Modern Art)에서 전시를 하면서 국제적인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그녀의 작품이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당하자 옵 아트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1967년부터는 컬러와 그것의 대조에 대한 탐구에 빠져든다. 이후 그녀의 작품들을 보면 컬러와 선에 대한 연구가 대부분이다. 그녀는 첫 번째 영국 현대 회화 작가이고 국제적 회화 작가 상을 받은 첫 번째 여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멋있는 작품만큼이나 굉장한 미인이었다. 8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왕성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내셔널 갤러리 전시는 Riley의 작품에 영향을 끼친 역사적 걸작들과 그녀의 작품을 함께 보면서, 지극히 현대적인 그녀의 작품들이 어떻게 전통적인 회화 양식에서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Riley는 그녀의 학생 시절에 존경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따라서 많이 그렸다고 한다. 그 그림들을 모방하면서 그 예술가가 쓴 선과 색, 구성 등 모든 것 들을 느끼려고 노력했다고. 그녀의 첫 번째 모방 작품은 1433년에 그려진 Jan Van Eyck의 Portrait of a Man (Self Portrait?) 이다.
위의 그림은 Riley가 모방해서 그린 그녀의 작품이다. Jan Van Eyck의 작품과 Riley의 작품을 비교해 보면 전문가가 아닌 이상 거의 차이점을 찾기 힘들다. 이런 그녀의 모방 행위들은 그저 과거의 반복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살아있는 영감의 원천이 되어 현재의 그녀의 작품들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나는 그 작가가 어디서 어떤 컬러를 쓰고 왜 그곳에 썼는지에 대해 알기 위해 노력했다.’ 이 인용문을 통해 왜 그녀가 걸작들을 다시 그녀의 손을 이용해 그려보았는지 알 수 있다.
1989년 Riley는 The Artist’s Eye라는 전시를 위해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는 두 거장의 작품을 선택한다. 하나는 Andrea Mantegna의 The Introduction of the Cult of Cybele to Rome (1505-06) 이고, 다른 하나는 Raphael의 Saint Catherine of Alexandria (about 1507) 이다.
Mantegna의 작품 속 로마인행렬의 힘찬 리듬감과 균형감, Raphael의 Saint에서 볼 수 있는 우아한 곡선들은 요즘의 그녀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율동감과 안정감 그리고 멋이 있는 곡선들에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첫 눈에 확연히 느낄 수 있는 영향은 분명히 아니다. 개인적으로 그래서 더 멋지다는 생각을 한다.
그녀는 존경하는 선배들의 그림을 따라 그리고 연구하는 것으로, 그들이 미리 내어놓은 길을 따라 걸으며 자신의 색을 찾으려 노력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예술가로서 색과 선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철학 그리고 실천적인 열정이 있는 그야말로 거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1930년대에 태어난 여자로서 말이다. 순수미술에 무지한 필자는 Bridget Riley에 대해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단지 지나치다 발견한 그녀의 율동감 있는 컬러 플레이에 매료되어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본 것이다. 단지 그 색감이 마음에 들어 그녀의 캔버스에 들어간 것만은 아니었다. 거장이라는 것은 그런 것인가 보다.
영어로 되어 있지만 색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오디오 인터뷰가 있는 사이트를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