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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월드리포트

종이 책이 전해주는 이야기, 다케오 페이퍼쇼

박현정 | 2011-12-15




1965년부터 매년 이어지고 있는 다케오 페이퍼 쇼는 일본의 대표적인 제지회사인 다케오 (竹尾)가 개최하는 종이를 테마로 한 전시회다. ‘태초에 종이가 있었다’로 시작되는 작년의 테마, ‘proto-‘와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27명의 대표들이 ‘제품’, ’미디어’, ‘감성’의 테마 중 한 가지를 골라 강연하는 것으로 이루어진 제작년의 ‘SUPER HEADS'등 최근 2-3년의 흐름만 살펴 봐도 알 수 있듯 종이를 테마로 그 안에서 매년 다채로운 기획이 시도되는 전시이기도 하다.

페이퍼쇼가 올해 선택한 테마는 다름아닌 ‘책’이었다.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개최 시기도 가을로 미뤄졌고, 규모도 축소되었지만 다케오 페이퍼쇼는 기존과는 차별화된 방식으로 시대의 흐름에 맞춘 변화의 노력을 보여주었다. 2011년 다케오 페이퍼 쇼, ‘책(本)’. 진보쵸(神保町)의 다케오 본점과 24개의 서점에서 만날 수 있는 2011년의 다케오쇼가 말해주는 종이 책의 역할과 가능성은 무엇일까.

글, 사진│박현정 영상작가(Kyoun.p@gmail.com)
에디터 | 길영화(yhkil@jungle.co.kr)



올해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종이’ 라는 소재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해 왔던 지난 시도들과는 다르게 종이를 묶어 만든 ‘종이 책’이라는 미디어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전시는 크게 두 가지로 형태로 구성된다. 10월 20일부터 약 2주간 다케오 본점에서 이루어진 전시와 내년 1월경까지 이어질 크고 작은 도쿄의 서점들의 전시가 각각 그것이다.

다케오 본점에서 이루어진 전시는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다양한 이야기들로 꽉 찬 느낌이었다. 이 전시에서는 지금의 시점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78명의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책에 대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한 권의 책을 선정하고, 그 책에 관해 400자 정도의 해설을 덧붙이는 방법으로 ‘책’을 조명했다. 



책 선정에는 스기우라 고헤이(杉浦康平), 가츠이 미츠오(勝井三雄) 등 그래픽 디자이너를 비롯, 패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三宅一生), 아트디렉터 사토 나오키(佐藤直樹), 쿠마켄고(隈研吾), 니시자와 류에(西沢立衛), 후지모토 소(藤本壮介) 등의 건축가, 후지하타 마사키 (藤幡正樹), 미야지마 타츠로 (宮島達男) 등 아티스트, 시인 타니가와 슌타로(谷川俊太郎), 문예비평가 후쿠다 카즈야(福田和也), 북 디렉터 하바 요시타카(幅允孝), 연구자 마츠오카 세이고(松岡正剛), 골동품 수집가 사카다 카즈미(坂田和實) 등,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하였다. 소재도 표현 방법도 너무나 다른 책들이 모여 있고, 책을 선정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애착과 추억이 한 눈에 보이는 전시 공간은 한참 동안 관람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할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또한 전시 공간 한 편에서는 선정한 책들의 이미지를 이용해 또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전시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다케오 페이퍼쇼는 매년 한 권의 책을 발간해 오고 있는데, 올해에는 ‘종이 책의 가능성을 풀어보는 책’ 의 성격을 띈 책으로 간행되어 판매되었다. 여기서 만나볼 수 있는 ‘책은 ◯◯입니다’라는 정의들은 책갈피에 인쇄되어 또 다른 서점에서 진행되는 전시의 테마가 되기도 했다. 다케오 본점 전시에서는 책의 내용들을 영상으로 보여주었다.

크리에이터들이 소장하고 있는 ‘기억이 담긴 책’이 여러 서점들로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것은 마치 책이라는 매체가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을 재해석한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도 들었다. 특히 공간의 규모에 맞추어 전시 내용을 적절하게 바꾸고 웹을 적극적으로 이용함으로써, 단순히 보는 전시에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참가와 체험이 가능한 이벤트로서의 전시를 전개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만 했다.




‘종이 책에 주어진 역할과 가능성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던지고, 참가자에게도 생각하는 기회를 가지게 함으로서 교감할 수 있는 장(場)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는 올해의 페이퍼 쇼에서는 그 목적에 맞게 관람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코너가 늘어난 것을 볼 수 있었다. 특히 관객이 79번째의 크리에이터가 되어 직접 고른 책을 전시하는 코너, ‘Share’는 아이패드와 웹을 통해 책의 가치에 대해 공유할 수 있는 시도라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대를 이어 종이를 만드는 장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일본의 동북 지역에 닥친 지진과 쓰나미는 착실히 쌓아온 여러 종이공방을 급습했다. 복구는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 9개월이 지난 지금에도 이루어지고 있을 만큼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질 수는 없겠지만, 그들이 이어온 종이와, 그 종이로 만들어 온 다양한 문화로 장인들의 숨결은 아직 이을 수 있다고 보여진다. 여러 사람들이 고른 저마다 다른 책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정의하고 전시한 2011년 페이퍼 쇼는 어쩌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종이의 감촉, 책장을 넘길 때 이는 바람, 시간이 지나며 변화하는 종이의 모습을 잊지 말고 이어가자는 메세지를 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종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종이 위 세계는 시공간을 담고, 지식을 담으며, 그 정보들을 공유하고 사람들의 추억을 담는 매체가 된다. 한 권의 책이 가진 가치는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여전히 높으며, 책을 만드는 소재로서의 종이가 짊어지고 있는 역할은 이러한 디지털 시대이기에 더욱 중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올해의 다케오 페이퍼 쇼는 ‘책은 역시 책이다’라는 간단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를 느끼게 해주었다.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책, 그 매체를 이루는 종이의 앞날이 주목된다.


2011 페이퍼 쇼 「本」공식 웹사이트 http://www.takeopapershow.com
다케오 (竹尾) 웹사이트 http://www.takeo.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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