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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월드리포트

비밀의 영화관, 시크릿 시네마

김도영 | 2012-02-09



우리는 친구나 연인을 만나면 ‘영화 보러 갈까?’ 라는 말을 정말 많이 한다. 그만큼 영화는 우리 여가 생활에 큰 영역을 차지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영화를 보는 형식에 대해 생각해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시간이 되면 팝콘이나 콜라 정도를 손에 들고 커다란 스크린이 있는 어두컴컴한 공간으로 들어가고, 관람이 끝나면 조용히 출구로 줄지어 나가는 모습. 아마 우리가 영화를 보는 보편적인 형식일 것이다. 이런 일반적인 형식에 물음표를 던지며 색다른 영화관람을 시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글 │ 김도영 영국 통신원
에디터 | 길영화(yhkil@jung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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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도 없고 심심한 오후, 뭐 재미나는 일 없나 생각하던 중, 문득 전에 친구에게 들었던 시크릿 시네마(Secret Cinema)가 떠올랐다. 호기심에 당장 컴퓨터 앞에 앉아 검색을 하니, 바로 눈에 띄는 시크릿 시네마 공식 웹사이트. 메인페이지를 보니 간단한 룰(Rule)같은 게 보인다. 이곳의 회원이 되면 언젠가 비밀스럽게 영화상영에 관한 이메일이 갈 것이라고. 이건 뭐지? 하며 갸우뚱 하지만 회원가입도 공짜라니 일단 한번 시크릿 시네마의 회원이 되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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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가 지났다. 시크릿 시네마에 가입했었다는 사실에 신경도 안 쓰고 있을 즈음, 그 곳으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0월 0일 0시까지 Wapping 지하철 역 앞으로 모이라는 것. 무슨 영화를 어디에서 볼 것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지만, 왠지 재미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티켓을 구입한다. 아, 한가지 요구사항은 있었다. 바로 의상을 1940년대를 테마로 맞춰달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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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시네마에서 알려준 날짜를 기다리며, 1940년대 의상을 리서치하고 스스로 꾸며본다. 마치 시크릿 파티에 초대된 것처럼 설레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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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날이 왔다. 약속된 장소에 나가보니, 1940년대 의상을 한 사람들이 눈에 띈다. 처음에는 몇 명 보이는가 싶더니 어느 새 수십, 수백 명은 되는 듯 싶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같은 테마의 옷을 입고,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모여서인지 서로 쳐다보며 웃음을 짓곤 한다. 잠시 후, 역시 1940년대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우리를 통솔한다. 어리둥절 하면서도 흥미로운 마음에 그들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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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데려간 곳은 페허 같은 허름한 벽돌 빌딩. 그 안에 들어서니 발레 댄서들이 춤을 추고, 광대들은 우리에게 와서 말을 걸기도 한다. 한참을 여러 가지 볼거리에 취해 사람들과 한껏 떠들고 나니, 영화 상영을 알리는 방송이 들린다. 마침내 공개된 영화는 1948년 작 ‘The Red Shoes’이다. 베일에 쌓였던 비밀의 영화관 문이 드디어 열리는 순간이다.



The Red Shoes 이벤트에 관한 영상 







런던의 시크릿 시네마(Secret Cinema). 위와 같이 이름 그대로 비밀스럽게 사람들을 모아, 비밀스런 장소에서, 비밀스럽게 영화를 보는 것이다. 2007년 시작된 시크릿 시네마의 기획자는 ‘파비앙 리갈(Fabien Riggal)l’이다. 그는 시크릿 시네마 이전, 2003년 ‘Future Shorts’, 2005년 ‘Future Cinema’를 기획하기도 했다. 첫 시작이었던, ‘Future Shorts’는 기존에 오버그라운드에서 활동할 기회가 없는 작은 필름메이커들의 짧은 필름을 상영하는 이벤트였다. 당시 리갈은 재능 있는 독립 필름 메이커들이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한 채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했고, 어떻게든 대중들에게 그들의 재능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Future Shorts’를 기획하면서 떠오른 또 다른 아이디어가 ‘Future Cinema’. 이것은 영화 관람에 ‘경험’이라는 요소를 넣은 라이브 이벤트로 미리 영화를 알려주지 않는 ‘비밀’이라는 요소를 빼고는 시크릿 시네마와 같은 구성이다. 시크릿 시네마는 ‘Future Cinema’에 ‘비밀’이라는 흥미로운 요소가 더해진 진보된 형태라 볼 수 있다.


Future Cinema event중 영화 Top Gun 영상



리갈은 시크릿 시네마를 통해 사람들이 영화를 꼭 한가지 형식으로 봐야 할 이유가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음악도 연주하고, 춤도 추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축제 같은 분위기로 영화를 즐길 수도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다. 사람들이 영화 안에 들어가 함께 호흡하고 만져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 또한 영화 관람의 한 형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18번째 이벤트를 맞이한 시크릿 시네마는 최근 런던과 세계 여러 도시가 동시 상영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국제 시크릿 시네마(International Secret Cinema)를 개최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아프카니스탄 카불(Kabul)에서 열리기도 했으며, 올해에는 뉴욕과 함께 한다고. 특히 카불 이벤트는 끊임없이 들려오는 그곳의 나쁜 뉴스들로 인한 리갈의 좌절감과 안타까움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비록 들리는 소식이라고는 테러 같은 것뿐이지만 분명 그곳에도 문화적인 것에 굶주린 젊고 열정적인 이들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그를 움직인 것.

인터넷, SNS의 등장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소통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각자가 주인공이 되어 스스로의 관심을 쫓아 능동적으로 움직인다. 새로운 시대가 정확히 어떤 세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분명 전과는 다른 세상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어쩌면 시크릿 시네마는 이런 달라지는 세상으로 인해 주목 받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즐거움을 찾는 방식 또한 변화되고 있을 테니까.

언젠가 한국에서도 한번쯤 이런 이벤트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예를 들어, 영화 ‘고래사냥’을 주제로 다같이 여름 동해에서 모여보는 건 어떨까? 80년대 옷을 입고, 안성기 아저씨처럼 코트 안에 주렁주렁 살림살이를 달고, 김수철 아저씨의 노래를 부르며 영화를 보는 거다. 상상만 해도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 물론 나도 꼭 참석할 것이다.


시크릿 시네마 홈페이지 http://www.secretcinem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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