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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그 후 지금 ⑦ 문화를 지키는 사람들, 손길을 기억하는 사람들

박현정│도쿄 | 2012-10-11



 나라나 지역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그곳 나름의 문화가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쌓인 세월의 두께와 깊이는 단단하지만, 한순간에 그 시간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만큼 자연의 파괴력 역시 강하다. 벌써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흐른 동일본 대지진은 그 어마어마한 피해 규모, 혹은 산업의 발전으로 잠시 잊혀진 도호쿠 지역의 문화를 재조명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롯본기 미드타운에 있는 21_21 디자인 사이트에서 지난 4월 27일부터 8월 26일까지 열린 전시[테마히마전(テマヒマ展)]은 무심한 듯 흐르는 도호쿠 지역의 시간의 결을 보여준다. 

글│박현정 도쿄 통신원(kyoun.p@gmail.com)



이번 동일본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일본의 도호쿠 (동북, 東北) 지역은, 역사적으로도 자연으로부터 많은 시련을 받은 곳이다. 기후적으로는 눈이 많이 내리는 데다가 바다와 면해있어, 혹독한 파도와 겨울바람 속에 살아야 했다. 이러한 시련을 이겨내고 삶의 지혜를 모아 하나의 독특한 문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지진과 쓰나미를 통해 더욱 재조명되었다. 테마히마전은, 이러한 도호쿠 지역의 「음식문화와 주거생활」에 포커스를 맞추어, 21_21 디자인 사이트의 디렉터를 맡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사토 타쿠 (佐藤卓)와 프로덕트 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深澤直人)가 기획하였다.





테마[手間] ①  어떤 일을 위해 들이는 시간, 혹은 노력.
히마[隙・暇・閑] ⑥무언가를 하기 위해 들이는 시간, 공.
테마히마[手間隙・手間暇]  손길과 공. 노력과 시간. 출처:『코지엔(広辞苑)』(이와나미 쇼텐)

“테마히마”라는 일본어는, 손 때 혹은 손길을 뜻하는 테마(手間)와, 공들이는 시간을 뜻하는 히마(暇)를 복합한 단어이다. 테마히마 전이라는 전시 타이틀에 걸맞게, 전시는 도호쿠 지역에 여전히 남아 있는 사람들의 손길과 그들이 들이는 공으로 만들어지는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물건과 음식 등에 집중한다.
 
도호쿠에는 합리성을 추구해 온 현대사회가 잊기 쉬운 시간의 개념이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 길고 험한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여러 해를 거치는 동안 인내로 지켜낸 손길은 계절에 맞추어 자연의 호흡과 함께 겸허하게 살아가는 삶 속에 녹아들어 있다. 바로 이 점이, 미래를 향한 디자인을 생각했을 때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자연 속에서의 테마히마, 즉 손길의 과정, 공들이는 시간이 도호쿠만의 담백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매력을 낳았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가치관을,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 이번 전시에는, 디자이너를 비롯, 푸드 디렉터, 저널리스트, 영상작가, 사진가로 구성된 팀이 도호쿠 6개 현의 「음식 생활과 주거생활」에 대한 리서치를 해 왔다. 그 속에는 독자적인 전통을 계승하는 농가, 시대에 맞춰 손재주를 더욱 발전시키는 장인, 젊은 재능으로 새로운 전통의 가능성을 개척하는 공방이 있었다. 전시는 이러한 리서치의 결과로서 음식 문화와 주거생활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와 사진, 자세한 설명들은 전시를 찾은 관객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전시장은 사토 타쿠의 그래픽과 후카자와 나오토의 공간 디자인으로, 도호쿠의 음식문화와 주거생활에 관한 약 55가지의 전시품들이 영상, 사진과 함께 소개되었다. 도호쿠의 문화나 정신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전시품에서, 우리가 앞으로의 디자인을 생각할 때 꼭 필요하다고 여기는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






 끈기 있고 긍정적인 도호쿠 사람들과의 만남은, 전시라는 형태를 통해 그 결실을 맺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공들이는 시간. 하나하나 사람의 손길을 거쳐 간 것들은 제각각 모양과 느낌이 다르다. 대량생산과 산업화는 눈부신 발전을 가져다주었지만, 물건에 담긴 정성까지 재현하지는 못한다.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결국 사람이 만들어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새삼 새롭게 느껴지는 것도, 전통을 소중히 지켜나가야 한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 자연의 할큄에 큰 아픔을 입은 도호쿠 지역의 문화를 여태껏 지켜온 자연과의 조화와 따뜻한 인간미를 중심으로 논했다는 것과 그 안에 숨 쉬는 사람의 존재를 부각시켰다는 것은 이번 전시를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 주었다.





사람의 손길로 만들어진 전시품들이 다양하게 선보인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손을 찍은 사진이 전시의 마지막을 장식했다는 것도 의미 있다. 도호쿠 지역에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사람들이 묵묵히 전해온 따뜻함은 계속되고 있다는 메시지가 마음을 채우는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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