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선│LA | 2012-11-23
대학교정에 가면 사람들이 잠든 어두운 밤에도 환하게 불이 밝혀진 곳들이 있다. 그 중 대부분이 건축학과의 설계 작업실이다. 프로젝트 마감을 위해 젊은 건축학도들은 모든 열정을 다 쏟아 부으면서 밤을 새가며 작업을 하는데, 이것은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미래의 건축가들을 키워내는 건축학교 중에서 작은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올해 미 전역 건축학교 중 학부과정 순위에서 코넬대학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한 싸이아크 (Sci-Arc : Southern California Institute of Architecture)가 있다. 이곳에서 특별히 올해 10월부터 12월까지 세계적인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 (Zaha Hadid)의 설치물이 전시되고 있다.
글,사진│박은선 LA 통신원(archsuki@yahoo.com)
싸이 아크는 1972년도에 설립된 LA의 건축학교이다. 현재 에릭 오웬 모스 (Eric Owen Moss)가 학장으로 있으며 학부와 대학원 제도로 운영되어 전체 학생이 50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학기마다 초청교수가 있어, 모포시스(Morphosis)의 탐메인 (Thom Mayne)이라EMS가 히토시 아베(Hitoshi Abe), 쿱 힘멜블라우(Coop Himmelblau) 등 세계적으로 명성있는 건축가들의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싸이 아크의 건물 외관은 처음 보는 이에게는 학교라기보다는 다소 산업용 공장 같은 느낌을 준다. 긴 직사각형의 낡은 콘크리트 건물엔 유리창에 붙어있는 안내표시 이외에는 이곳이 Sci-Arc라는 간판조차 달려있지 않다.
학교 건물 자체가 남북으로 긴 터널과 같은 모양으로 되어있기에, 내부에는 동쪽에는 건물을 가로지르는 긴 복도가 그리고 서쪽에는 갤러리나 학생들의 개개인의 작업공간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긴 복도는 학기 말 작품들을 전시하는 전시장으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평일에 학교에 방문하면 오픈된 공간에서 진행되고 있는 학생들의 크리틱 수업을 참관할 수도 있다. 이 학교는 특이하게도 24시간 개방되어 있기에, 외부 사람들이 갤러리나 설치물들을 쉽게 감상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런 무채색의 차가운 콘크리트의 건물 곳곳에는 교수들과 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구조물들이 설치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이런 구조물들은 싸이 아크의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 특성을 반영하듯 매우 유기적이고 역동적이게 표현되어 있다. 설치물을 제작하는 교과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이 직접 구상하여 디자인한 것을 자르고 조립하면서 재료나 구조의 조합 등을 실제로 깨우쳐 나간다.
싸이 아크의 갤러리에는 시즌마다 명성 있는 건축가들의 구조물들이 전시되는데 올해 설치된 자하 하디드의 Pleated Shell Structures(주름 잡힌 쉘 구조물)도 그 중 하나이다.
한국에서도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로 유명한 자하 하디드는 유기적이고 비정형적인 형상에서 디자인 모티브를 이끌어내는 건축가이다.
이번 구조물은 하디드의 디지털 시스템을 이용한 디자인에서 나온 형태에 대한 연구의 프로토타입 (형상이나 설계 등을 평가하기 위해 만든 실물 크기의 모형) 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Pleated Shell Structures는 이번 2012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전시되었던 그녀의 구조물 ‘Arum’과 같은 맥락의 디자인으로, 물리적 형태로 만들어지는 곡면의 기하학적 모습이나 스스로 지지하여 서 있을 수 있는 구조에 대한 연구를 보여주고 있다.
마치 나비의 날개 같은 모양의 구조물 중 두 개는 fiberglass(유리섬유)로 덮여있고 다른 두 개는 나무 골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는 보는 사람에게 어떤 구조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학교 내의 다른 많은 설치물과 같이 자하 하디드의 구조물도 직접 학생들이 제작하고 설치하였으며 과정을 담은 사진이 갤러리 안에 함께 전시되어 있다.
아직은 이렇게까지 복잡하고 자유로운 기하학적 형태의 디자인은 설치 구조물로만 만족할 뿐 구조적 문제나 시공 방법의 문제로 건물로써는 실제로 이루어진 적이 없다.
하지만 현재 많은 건축가들이 계속 이런 미래지향적 디자인을 시도하고 있고 자하 하디드와 같이 형태에 대한 구조적 이해와 실현 가능성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는 이런 건축가나 그들의 노력과 연구를 발판으로 삼아 지금 건축을 공부하고 있는 많은 학생들에 의해 이런 형태의 디자인이 건물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http://www.sciarc.edu/exhibition.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