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컬쳐 | 월드리포트

사물들의 박물관(Museum der Dinge) ②

이상혁 | 베를린 | 2013-01-21



공예예술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 바우하우스(Bauhaus), 신조형주의운동(De Stijl), 구성주의(Constructivism), 모더니즘(Modernism) 등의 굵직굵직한 역사의 이름들은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프지만 이러한 디자인의 역사가 현재를 말해주고 미래를 만들어 나간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근대 디자인 역사에 가장 중요했던 사상과 정신은 단연 바우하우스이다. 바우하우스의 근원이 되고 독일 디자인의 시초가 되었던 독일공작연맹(Deutscher Werkbund). 디자인 역사의 가장 중요하고 공예와 대량생산의 기점에 있던 독일은 이 운동을 통해 독일 디자인을 정의했고 또 독일 근대 디자인의 표준을 만들었다. 베를린에 있는 독일공작연맹의 박물관, 사물들의 박물관(Museum der Dinge)를 다녀와 그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알아본다.

글, 사진 | 이상혁(hello@leesanghyeok.com)


독일공작연맹의 초기 공동 설립자였던 헤르만 무테시우스(Hermann Muthesius)와 앙리 반 드 벨데(Henry van de Velde)는 1914년, 표준화에 대한 의견이 달랐다. 무테시우스는 표준화를 통해 보편성을 찾을 수 있다, 라고 표준화의 필요와 정당성을 주장했지만 이 의견에 대해 벨기에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앙리 반 드 벨데(Henry van de Velde)는 공작연맹에 예술가들이 있다면 예술가들은 열정적인 개인주의자들이고 자유롭고 자발적인 창조자들이다, 라며 반박했다.


1900년 초 전자제품의 양대산맥은 미국의 제네랄 일렉트릭(GE)와 유럽의 아에게(AEG), 지멘스(Siemens)이었다. 당시 공작연맹의 회원이었던 피터 베렌스(Peter Behrens)는 아에게의 디자이너였다. 피터는 공작연맹정신에 입각해 아에게(AEG)에서 아트와 산업의 퓨전(Fusion)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피터는 이것을 계기로 후에 산업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만드는 표본이 되었다.



공작연맹은 그래픽 분야에서도 큰 발전을 이루게 되는데 이것이 기업 아이덴티티(Corporate Identity, CI)이다. 브랜드 이름이 상품의 질과 높은 가치를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공작연맹과 같이한 브랜드들로 오늘날까지 알려진 회사들은 아에게(AEG)를 비롯해 보쉬(Bosch), 오스람(Osram), 펠리칸(Pelikan) 등이 있다.


전후 독일에는 전쟁에 쓰인 물품들이 그 형태만 가져와 대량생산하여 가정에 사용되곤 했다. 철모가 시리얼 그릇이 되고 가스 마스크 필터가 설탕을 담는 그릇으로 쓰이는 것이다. 주인 없이 버려지거나 주위에 널부러졌던 전쟁 물품들이 어떤 식으로 재활용되어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문명화된 사례들로 여겨져 진열되고 있었다.

독일공작연맹은 서독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동독에는 공작연맹이 없었다. 하지만 동독에도 다양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떤 면에서는 공작연맹이 바라는 좋은 형태, 디자인의 이상과 맞는 제품들도 있었다. 동독의 디자인은 동독 사람들이 원하는 것도 많았지만 당의 수장들의 취향에 무게가 실린 것이 대부분 이었다. 동독의 디자이너들은 국제 디자인 정세를 따라갈 수가 없어고 기술력도 발전되지 못해 서독과의 격차가 점점 벌어졌다. 동독 디자이너들은 형태보다 알루미늄과 유리, 백자 등 재료의 혁신을 가져왔다.


1955년 뒤셀도르프(Duesseldorf)에서 열린 라디오 박람회에서 독일 브라운(Braun) 사는 연한 색깔을 나무와, 철, 플라스틱을 사용해 심플한 외형의  라디오들을 선보여 혁신을 이루었다. 브라운 사의 모던화 전략배경에는 독일공작연맹이 있었다. 이 후 전기 면도기부터 믹서까지 브라운 사의 모든 제품들은 새로 디자인되어 회사의 아이덴티티(Identity)가 되었다. 당시 새로운 브라운 디자인을 만들었던 윌렘 와건펠트(Wilhelm Wagenfeld), 한스 구겔롯(Hans Gugelot), 옷 아이허(Otl Aicher), 헤르베르트 허쉬(Herbert Hirche)와 디터 람스(Dieter Rams)였다. 뒤에 브라운 디자인 수장이 된 디터 람스는 그 당시 신입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취업해 이미 혁신적으로 바뀌고 있던 브라운 디자인에 숟가락만 얻었다는 후문이다.


시대의 주류 속에 혁신적인 사고로 디자인을 한 단계 성장시키고 국가 디자인을 만들어갔던 독일. 독일의 산업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에서 어떻게 독일 근대 디자인이 형성되었고 무엇이 독일 디자인의 만들었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공예운동으로 공예의 부활을 이루며 공예의 산업화를 꿈꾼 영국이 반대로 독일의 공예, 디자인 개혁을 배우게 되었다. 20세기 디자인 역사에서 이 부분은 우리가 알아야할 중요한 역사이다. 어떤 것이 더 좋은 것이다, 이게 더 낫다, 라는 틀이 없는 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혁신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무기는 아니지만 역사 속 그 혁신이 탄생한 배경에 귀를 기울인다면 좀 더 나은 미래의 발전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진 않을까.


관련링크
독일공작연맹(Deutscher Werkbund) http://www.deutscher-werkbund.de
사물들의 박물관(Museum der Dinge) http://www.museumderdinge.de
앙리 반 드 벨데(Henry van de Velde), 레플리카 http://www.henry-van-de-velde.com









facebook twitter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