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민│뉴욕 | 2013-02-14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친근한 이미지에 밝은 색을 사용했으며, 추상화처럼 난해하지 않으면서, 분명한 메시지를 담은 그림. 그림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해도, 팝 아트 작품을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밝은 색상과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대상을 주제로 삼았기 때문에 그만큼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팝아트는 비교적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예술 장르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비문화의 꽃으로도 여겨진 팝아트지만, 빛이 존재하면 그림자도 공존하듯, 그 시절 아메리칸 드림을 비판하고 꼬집는 어두운 면을 표현한 팝아트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글,사진│유수민 뉴욕 통신원(smyoo1017@gmail.com)
휘트니 뮤지엄(Whitney Museum)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시니컬한 느낌이 풍기는 듯했다. 검고 높은 벽 사이의 틈이 마치 무언가를 엿보는 듯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입구에 놓인 크리스(Christo)의 포장된 손수레(Package on Hand Truck)라는 작품을 배치해두어 오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마치 누가 조금 전에 놓고 간 듯한 이 작품은 오브제의 정체성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었다.
팝아트의 단골 소재는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캠벨 스프캔과 같은, 당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오브제들이었다. 무엇이 포장되어 있는지 철저히 베일에 싸여있는 크리스토의 이 포장 작품은 그래서 팝아트의 그림자를 쫓는 이번 전시의 시작을 장식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60년대 초반 미국의 팝아트는 전쟁 이후 가히 폭발적인 광고와 미디어 문화 번영을 반영하는 예술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과장된 소비문화, 사회 전체에 팽배해진 물질 만능주의, 여성과 시민의 권리 신장운동, 그리고 베트남 전쟁의 단계적 확대 등 사회문제를 다루는 팝아트 활동 또한 활발히 진행되었다. 전시장 초입에서부터 여성의 외모를 주제로 삼아 당시 여성 인권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는 앤디 워홀의 비포앤애프터(Before and After)와 낸시 그로스먼(Nancy Grossman)의 헤드(Head)를 보고 있자니, 씁쓸한 웃음이 절로 나오는 듯했다.
직접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작업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체의 여자와 새의 이미지를 합성한 멜 라모스(Mel Ramos)의 연작시리즈는 그리스 신화인 레다와 백조(Leda and the Swan)를 인용한 것으로,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결국 인간들은 힘만 갖고 있으며 지혜롭지는 못하여 전쟁과 폭력으로 물든 역사를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전시장 안쪽에서 기괴하게 생긴 그림 한 점과 마주하게 되는데, 괴상망측한 모양새는 눈과 입이 달린 걸로 보아 사람 같기는 하지만 괴물에 가까운 모습이 이목을 끌었다. 미국 유명 팝아티스트인 짐 너트(Jim Nutt)의 쉬즈힛(She’s hit)이라는 작품인데, 이 그림은 우리가 말하는 아름다움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들과 폭력적인 것들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서커스 과녁 맞추기 쇼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무분별하게 온갖 부정적인 것들에 노출된 사람들의 모습을 풍자하는 이 그림을 보고 있자니 냉소가 절로 나왔달까. 얼핏 보면 가벼운 느낌의 아메바 같은 기괴한 그림처럼 보이지만 이런 심오하고 무거운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고 또한 찾아내는 것이 팝아트를 감상하는 또 하나의 묘미일 것이다.
풍자하니 생각나는 작품이 있다. 위지(Weegee)라는 예명으로 활동한 사진작가(본명은 아서 펠리그Arthur Fellig)의 작품으로,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마를린 먼로의 왜곡된 얼굴 사진이었다. 얼굴 중 한 부분만 아주 살짝 왜곡되어 있지만, 그 작은 변화가 그 두 유명인사의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가히 천재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작가는 미국의 번영이 가져다주는 빛 뒤의 그림자를 이미 일찌감치 알아차리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라는 노래가사처럼 말이다.
팝아트가 유행했을 당시 주를 이루던 소재들 중에 베트남 전쟁을 빼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피터 사울(Peter Saul)의 사이공(Saigon)을 본 첫 소감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선정’적이라고 할 것이다. 형광에 가까운 원색과 큰 스케일의 캐릭터들로 가득한 이 작품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도 남았다. 게다가 그림 왼편 아래에 적힌 문장 또한 선정적이지 않은가. 사이공 사람들을 고문하고 강간하는 백인들이라. 확실히 피터 사울은 미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을 굉장히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던 것 같다.
미국경제가 호황을 누리며 폭발적인 소비문화를 반영하듯 꽃을 피운, 대중들이 사랑한 팝아트. 하지만 그 이면에 가려진 사회문제들을 풍자, 고발한 팝아트 작품들을 볼 기회는 상대적으로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동전의 양면처럼 당시의 아메리칸 드림은 희망과 동시에 절망도 함께 내포되어 있었던 것 같다. 삶은 풍요로워졌을지 몰라도 인간과 인간 사이는 더 멀어져 점점 더 혼자 고립되어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조금은 불편하고 덜 풍족 했더라도 사람들의 정이 돈독했던 아날로그 시대의 그 감성이 그리운 요즘에, 이번 전시는 물질만능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따끔한 ‘사랑의 매’ 같은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질과 성공만을 쫓아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리들에게 잠시 멈추고 돌아보며 숨을 고르는 여유를 가져보라 충고한 한 스님의 가르침처럼, 가끔씩은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예술작품을 벗 삼아 마음의 여유와 감성을 충전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