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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월드리포트

미드 밖, 현실 속의 ‘매드맨’을 만나다

유수민│뉴욕 | 2014-11-04



미국 드라마에 어느 정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매드맨’을 직접 시청하거나 풍문으로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매드맨을 처음 알게 된 계기는 개성 넘치는 오프닝(title sequence)을 접하면서였다. 007을 연상시키는, 말끔한 블랙수트와 검은 실루엣으로 표현된 남자 주인공이 소파에 기대앉아 담배를 피우는 장면과 광고로 도배된 고층빌딩 사이로 추락하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던 오프닝은, 그야말로 50-60년대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속된 말로 피 터지게 치열했던 광고바닥을 단적으로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느 유명 광고 제작자의 일과 사랑, 그리고 권력 다툼을 그린 TV시리즈 매드맨이 각광을 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 드라마가 당시 50-60년대 자본주의의 절정을 달리던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데 주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뉴욕 매디슨 애비뉴(Madison Avenue)를 중심으로 광고산업에 종사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들을 일컬었던 매드맨. 그 중 광고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명했던 맥컬리 코너(1913~)의 일러스트 원본 작품들과 당시 뉴욕의 광고산업의 트렌드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뉴욕시 박물관에서 열렸다.

글ㅣ유수민 뉴욕 통신원
사진제공ㅣ Museum of the city of New York






1950년대의 미국은 그야말로 물질만능 사회였다. 전쟁 이후 미국이 세계 1위의 강대국으로 성장하고 부유해짐에 따라 소비문화가 자리잡게 됐고, 더 많은 물건을 효과적으로 팔기 위해 광고 산업이 급부상하게 된 시기였다. 흔히들 아이디어 싸움이라고 하는, 광고라는 무대에서 이야기(아이디어)를 효과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 단연 광고 삽화는 주인공과 같은 핵심적인 존재로 부각되었다. 뉴욕 매디슨 가를 중심으로 활동한 많은 매드맨들 중 광고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명했던 맥컬리 코너는 1950년대 탑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며, 고향인 뉴저지에서 뉴욕으로 건너왔다. 그가 경력을 쌓을 당시의 뉴욕은 미국 전역의 출판업계와 광고계의 수도로 여겨질 만큼 트렌드를 주도하는 중심지였고, 맥코너와 그의 동료 상업 아티스트들은 Collier’s, Woman’s Home Companion, Redbook과 같은 잡지들을 통해 전쟁 후 미국의 번영과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가족상의 이미지를 대중화시키는 데에 기여했다.




 600여개가 넘는 광고 에이전시와 넘쳐나는 상업 제품들로 인해 광고 일러스트는 밤낮없이 바쁘게 팔렸으며, 특히 여성잡지, 로맨틱 소설 등 여성이 주 고객인 장르의 출판물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맥코너 작품들 중 상당수가 여성잡지 붐이 일었던 시기에 탄생했다. 다양한 장르의 여성지 중에서도 가장 인기를 얻었던 분야는 로맨틱 단편선과 시리즈 소설들이었다. 매거진 앞표지에 실린 삽화들 속 군인들의 모습은 영화 포스터처럼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한눈에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이야기는 당시 시대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제 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1930년대는 미국인들에게도 많은 제약이 있던 시기였다. 전쟁 후 돌아온 군인들은 그들의 옛 혹은 새 애인들과 사랑을 속삭일 수 있게 되었고, 전쟁 중에 스스로 돈을 벌어야했던 여인들은 전쟁이 끝나면서 남자들에게 다시 가장의 자리를 내어주고 의존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소설 작가들은 이러한 남녀관계의 이야기를 로맨틱하게 집필했고, 이런 작품들이 인기를 끌면서 ‘이상적인 여성상’ 같은 현상이 생겨나게 되었다.

잡지 내에 들어진, 혹은 꾸며진 이미지들 중 하나는 그림 같은 가족생활의 모습을 들 수 있다.  아버지는 열심히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고, 어머니는 집에서 자녀들을 자애롭게 돌보는 전형적인 화목한 가정의 모습은 누구나 꿈꾸는 이상적인 가정 (Home) 그 자체였다. 사람들은 이런 이상적인 가족의 이미지를 보며, 이 제품을 사면 우리 가족도 이런 화목한 삶을 누릴것이라는 환상을 품었을 지도 모른다. 요즘 사람들의 시각으로 ‘쇼윈도 가족’같이 인공적이고 부자연스럽게 보일 수 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당시의 잡지를 보는 독자층이 확연하게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주류잡지들이 타켓으로 삼은 고객층은 개신교 백인들이 대부분이었고, 흑인, 남미인, 아시아인, 유대인을 비롯해 가톨릭교 사람들마저도 전부 배제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50년대의 미국 생활상은 디자이너가 표현함에 있어서 매우 제한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그런 인공적인 완벽한 가족의 이미지가 당시 소비자들의 구매욕구를 불러일으킨데에 많은 영향을 끼친것만은 분명하다.

맥코너의 일러스트 작품을 단연 돋보이게 해준 요소는 그가 디자인한 여성의 이미지다.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하면서 세련된 현대여성의 이미지는 마치 배우 오드리 헵번을 연상시킨다. 그가 창조한 똑똑하고 당찬 여성상이야 말로 고전의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여성과는 확연히 다른 새로움으로, 여성 독자들에게 영화배우만큼이나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살롱을 찾아가 그의 일러스트 속 여성들의 헤어스타일을 요구했다고 한다. 특히 빨간 립스틱과 완벽하게 손질된 손톱 매니큐어는 신여성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을 정도로 유행을 불러일으켰고, 나아가 패션 트렌드까지 주도할 정도로 그의 일러스트는 늘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여성의 인권과 역할에도 많은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더 이상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에 의지해 아이들만 바라보며 사는 역할의 여자는 없었다. 스스로 남자를 유혹할 줄 알고, 직접 일을 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능동적인 모습의 여자들을 독자들은 원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남성 캐릭터들을 살펴보면 주로 여성고객들이 바라는 남자상을 대변했다고 볼수 있다. 남자들이 중심으로 우뚝선 1950년대에는 주로 상류층의 소위 엘리트집단으로 불리는 남성상과 거친 일을 하는 마초적인 남성상으로 크게 갈리는데, 이 조차도 주 고객이 여성들인 만큼 대부분의 남자 캐릭터들은 모든 여자들의 로망인 굿가이의 표본이 되거나, 아니면 여성들을 질투와 복수의 화신으로 만드는 이야기의 대상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의 남성 캐릭터들은 병풍처럼 여성의 뒤에서 배경의 대상으로 머무르거나, 여성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로서 이용되기가 일쑤였지만, 그 이미지만큼은 완벽한 복장과 몸매의 남성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1920년대에 이미 광고산업의 중심에 있었던 매디슨 애비뉴이지만, 1950년대의 매디슨 애비뉴야 말로 진정한 문화의 수도로 자리매김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뉴욕 ‘광고 맨’ 그 자체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아메리칸 드림을 판다는 그들의 자신감은 실로 대단했다. 셔츠 카라부터 테이블 서비스 관련 상품 이미지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서비스도 이미지로 만들어낸 광고맨들이었다. 맥코너와 같은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는 그야말로 일거리가 쏟아지던 시기였고, 작가들은 매거진 삽화뿐만이 아니라 매거진 편집작업에도 참여했다. 그래서인지 자동차 광고 작업을 했을 때 맥코너의 작업을 보면, 이야기보다는 그냥 자동차를 갖고 싶어하는 캐릭터들을 배경으로 설정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소설보다는 제품광고가 상대적으로 삽화 작가들에게 많은 제약을 가한것이 느껴졌다.
맥코너의 작품들을 보면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생생함’이었다. 찰나의 순간이 담긴 그 생생한 장면이나, 막 잡은듯한 모델의 포즈들은 마치 사진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생생한 느낌을 작품 속에 어떻게 담았는지에 대한 그 궁금증은 전시의 끝에 다 달았을 즈음 해소됐다. 맥코너는 장면 구상을 위해 실제로 모델들을 불러 포즈를 잡게 했고, 여러장을 찍어 콜라주처럼 합성해 스케치로 만들어 그 작업을 완성시켰다. 포토샵이 없었던 시절, 핸드메이드 포샵질(?)이었던 셈이다. 여러장의 사진과 스케치, 그리고 완성작까지 그 흐름을 볼 수 있어, 옆에서 그가 작업을 하는 것을 지켜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필요하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작업에 임하는 그의 열정과, 성공을 맛본 뛰어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상상한 모든 것들을 머릿속에서 완성해 내지 못해 노력을 거듭하는, 일종의 불완전한 인간적인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

시간은 많은 것을 바꾼다. 영원할 것 같았던 그 찬란했던 잡지사 광고산업도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흐름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많은 것을 바꿔놨다. 출판 광고의 인기는 더 이상 예전만 못했고, 많은 광고 에이전시들이 문을 닫아야만 했다. 맥코너 역시도 광고계의 흐름이 바뀌던 때에 사업파트너 빌 닐리마저 사고로 잃었으며, 50대에 접어들 무렵 교육출판과 로맨스 소설 커버 디자인쪽으로 작업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다. 더이상 화려한 광고삽화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는 없었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나머지 반세기의 세월동안 꾸준히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왔으며,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변화하는 세월에 끄떡없이  101세가 된  지금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현명하게 잘 겪은, ‘원조 매드맨’ 맥컬리 코너의 진정한 프로정신은 요즘같이 빠르게 진화하는 문화의 흐름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세월을 뛰어넘은 그의 디자인 감각에 마지막으로 한번 더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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