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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월드리포트

스타 디자이너,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전편>

박진아  | 2003-07-09

스타 디자이너,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전편>

때로 우리는 세기의 천재 예술가(그것이 문학이든 미술이든 음악이었든간에)가 생전 명성도 한 번 제대로 누려보지 못하고 고전하다가 죽어갔다거나하는 처절하고 비극적인 이야기에 접하게 된다(예컨대 인상주의화가 반 고흐나 작곡가 모짜르트가 대표적인 예일게다). 그런가하면, 피카소처럼 한평생 천재라는 칭호 속에 해보고 싶은 온갖 예술적 실험을 다 해보고 부와 명성과 그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복(예컨대 남다른 여복(女福)이라든가)과 취미생활(예컨대 피카소는 까다로운 식도락가로도 알려져 그가 즐겨먹던 식단들이 실린 요리책까지 출판되어 있다)과 폭넓은 교우관계까지 한껏 누리다 간 사람들도 있다. 그는 흔히 요즘 세상같은 시대로 치자면 헐리우드 유명연예인이나 다를바 없는 „스타“의 일평생을 살고 간 운좋은 사람이었다.

예술가라해서 평생 배고프게 살다간다는 속설은 그래서 꼭 맞는 말일 수 없다. 오히려 그같은 편견은 19세기말 20세기초 인상주의나 에꼴드파리파 화가들의 고독하고 빈곤했던 라이프스타일이 미술가의 전형인양 받아들여져 온 낭만적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얼마전 앨런 보우니스가 쓴 번역서 <미술가의 성공의 조건> (조형교육)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저자의 주장인즉 성공한 미술가들은 남다른 재능 이외의 몇가지 출세의 조건을 준수하고 밀고나가는 일종의 „전략가“에 다름아니라고 말한다. 동료 미술가(예술가)들 사이에서 재능있다는 인정받을 것, 비평가나 언론인들의 인정을 받을 것, 자기의 작품을 인정하고 후원해주는 든든한 후견인이나 소장가의 지원을 받을 것, 중심지로 옮겨 주류 환경에서 거주하며 창작활동을 할 것 – 이상은 역사 속에서 기록된 성공한 미술가들이 공동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4가지 성공 비결이었다고 이 책의 저자는 여러 사례를 들어 조목조목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 설혹 이 저자의 논리가 다소 단순화된 면이 없지 않음을 인정하더라도, 미술이 컨셉(concept)을 주식(主食)삼아 표현하는 시각예술이라는 점과 근 반세기전 이미 앤디 워홀이 지적했던 대로 „미술은 비즈니스“라는 점을 사려해 볼 때 타당한 구석이 없지 않다.

요즘처럼 스타만들기 문화가 만연해 있는 세상에서 디자인계라 하여 사정은 크게 다를 건 없다(미국인 대중과 한국 재계 사이에서 우상처럼 떠받들여져 오던 제네럴 일렉트릭 사의 잭 웰치 회장도 경제계와 언론이 조작해 낸 스타였다고 <이코노미스트> 지 [5월4-10일호]가 비판했던 것처럼 스타만들기 수법은 재계에서도 활용된다). 경제의 톱니바퀴를 돌리기 위해서 끊임없이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신제품을 개발생산하고 팔아 소비시켜야 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디자인은 진정 새로이 값진 재화로 인정받은 듯 하다.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경제가 호황을 누린90년대부터 디자인은 전에 없는 호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뉴욕, 런던 등 구미 대도시의 대형 유명 박물관/미술관들이 디자인을 미술 분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하여 전에 없이 디자인 거장들의 작품 수집붐과 전시 기획붐을 일으켰던 것만 봐도 그렇다. 그 덕에 얼전까지만해도 고미술상과 중고가구점들 한구석에 먼지만 쌓인채 처박혀 있던 오래된 판톤 의자, 아르네 야곱슨의 개미의자, 디터 람스의 60년대 고물 브라운 라디오, 심지어는 어느 디자이너의 스케치북에서 찢겨 나간 한 점의 스케치 낱장들은 오늘날 ‚트렌디한 디자인 숍’에서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된 고인 디자이너들의 제품들은 ‚명품’ 취급을 받으며 한정수량으로 생산 유통되면서 미술 시장에서의 인기도와 수요에 따라 가격이 상승하는 추세이다. 한편 새로 급부상하는 현대 신진 디자이너들은 유명 제품회사나 브랜드와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유명 미술관 큐레이터들과 전시에 협력하거나 출판과 강연 활동까지 겸해 나가는 방법을 통해서 그들의 몸값을 높여나간다.

디자인계에서 유명한 스타 디자이너로 성공하는 조건이란 존재할까? 그렇다면 그 조건이란 어떤 것일까? 재미로 앨런 보우니스가 제시한 미술가의 성공조건을 조금 변형해 디자이너의 성공조건으로 한 번 대입해 볼까 한다.

중심지로 옮겨 주류 환경에서 거주하며 창작활동을 할 것:
프랑스생 유태인이면서 제2차대전 나치점령군을 피해 뉴욕으로 이민가 디자이너/사업가로 대성공한 레이먼드 로위는 아마도 디자인 역사상 디자인과 비즈니스를 가장 성공적으로 접목시킨 스타 디자이너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만일 그가 뉴욕으로 피신하지 않고 파리에 머물러 살았더라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로위로 탄생할 수 있었을까? ‚근대 디자인의 아버지’ ‚성공적인 20세기 디자이너’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레이먼드 로위는 최초로 디자인이 기업의 성공적인 경영에 기여하는 자산임을 증명한 초기 스타 디자이너였다. 그의 자서전 <추한 것은 팔리지 않는다> 에 보면, 오늘날 우리가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간결추상적인 기업 로고나 트레이드마크가 로위의 컨셉에서 처음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다. 코카콜라, 럭키스트라이크 담배 패키징 디자인에서 왜 제품의 특성과 그래픽 및 서체가 일치감을 이루어야 하며, 어떻게 그의 그 유명한 ‚유선형(streamline) 자동차와 기차 디자인이50, 60년대 미국의 산업화와 속도라는 이념을 일반대중 사이에 널리 알려 정착시켰는지도 서술한다. 놀라운 사실은 로위가 당시 이미 하나의 아이템으로서의 디자인 제품을 많이 팔아 이윤을 올리게 해주는 수단으로서 비즈니스와 마케팅으로 우아하게 연결시키고 있음이다. 로위는 미국 4대 자동차 제조업체-제네럴 모터스, 포드, 크라이슬러, 아메리칸 모터-를 비롯해서 각종 전자제품, 식품업체, 주방용품, 교통, 기업 로고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 다국적 기업들의 기업로고와 제품 디자인을 맡았다. 그러니 기업 총수들 사이에서 스타 디자인 컨설턴트 겸 친구로 인정받았던 그를 <타임> 지가 표지 인물로 보도했을 만도 하다.

자기의 작품을 인정하고 후원해주는 든든한 후견인이나 소장가의 지원을 받을 것:
재능과 힘있는 후견인의 결합은 스타 디자이너 탄생과 무관하지 않음은 필립 스탁의 경우에서도 입증된다. 비행기 설계기술자 아버지의 아들로 1949년 파리에서 태어난 필립 스탁은 갖16세난 나이로 가구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데뷔했으니 남다른 재능을 보인 신동 디자이너였음에 틀림없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이 대세를 이루던60년대말에는 벤투리와 콰사르, 피에르 가르뎅 등의 주문으로 실내 가구와 조명을 디자인하다가 70년대부터 프리랜스 디자이너로 독립했다. 몽트레이으에 있는 나이트클럽 라멩블르와 파리 레 뱅 두슈의 실내장식을 맡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수퍼스타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 시점은 당시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의 공관 엘리제궁의 실내 장식을 담당하면서 부터였다. 시각적 감수성이 우수했던 걸로 알려지는 미테랑 대통령의 지원과 80년대 포스트모던적 추세에 힘입어 이후 스탁의 디자인은 상업적 성공을 거듭했다. 그로부터 프란체스카 스패니시 의자와 이지 라이트 의자같은 실내가구, 쥬시 살리프나 시브 막스 르 시느와 주방용품에서 뉴욕 로열튼과 패러마운트 호텔 및 대도시 나이트클럽과 레스토랑 실내 디자인 등 화재의 프로젝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최근까지(가장 최근 프로젝트는 2000년 런던 세인트 마틴스레인 호텔) 계속되어 오고 있다. 요즘 활동이 비교적 뜸해진 스탁은 80,90년대식 자기도취적 디자인에서 탈피해 환경과 내구 디자인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한다.

다른 거물급 디자이너 밑에서 너무 오래 조수생활하지 말 것:
„청출어람청어람“이라고 했던가. 신세대 여성 디자이너 마탈리 크라쎄는90년대 동안 프랑스 톰슨전자와 여러 실내디자인 프로젝트에서 필립 스탁의 조수로 일하다가 독립해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어 주목된다. 흔히 유명 디자이너 사무실에서 오랜 세월 동안 조수 디자이너로 일하는 것은 독자적인 디자이너로 성장하는데 걸림돌이 되곤 한다. 유명한 미술가 밑에서 조수로 활동하다가 큰 유명 미술인으로 성장한 경우도 매우 드물다. 나무가 크면 그 그림자도 큰 법. 그래서 재능있는 디자이너들은 3-4년을 넘지 않은 몇 년간의 조수 디자이너 생활을 마감하고 선배의 노하우를 터득한 다음 자신만의 작업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편이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동료 미술가(예술가)들 사이에서 재능있다는 인정받을 것:
한편 스타라고 하기엔 한층 저자세를 고수하면서도 최근 지속적으로 좋은 작품을 꾸준히 내놓고 있는 네덜란드의 마르셀 반더스와 헬라 용게리우스는 네덜란드 특유의 디자이너 사회 속에서 창조활동을 하고 있는 경우이다. 체코 출신이면서 90년대말부터 네덜란드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해 오고 있는 „똑똑한“ 디자이너 피터 빌락에 따르면, 네덜란드에서는 디자이너들끼리 서로서로 얼굴과 작업을 빤히 알고 있는 매우 밀집된 디자이너 사회가 구축되어 있다고 한다. 다른 문화권과 달리 네덜란드에서는 디자이너라 하면 인문학과 과학공학에 이르기까지 두루 지식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종종 철학가나 문화이론가를 뺨칠 정도로 이론적 능력이 강한 지식인으로 간주되곤 하며 보수도 고속득층에 속한다. 헤이그 소재 그 유명한 스튜디오 덤바를 비롯해서 중소규모의 마르셀 반더스의 디자인 회사에 이르기까지 디자인 회사들은 저마다 대거 우수 프리랜스 디자이너 풀을 보유하고 프로젝트마다 그에 적합한 디자이너를 고용해 진행한다. 디자이너들끼리 실력과 창의성을 견제하는 사회에서 허튼짓을 했다가는 다음번 프로젝트는 다른 디자이너들의 몫이 되고 말테니까.

비평가나 언론의 인정을 받을 것:
오늘날 정보사회에서 어쩌면 언론만큼 스타덤을 확실하게 약속하는 수단도 없을 것이다. 미술 분야 만큼 비평의 역할이 발달하지 못한 디자인 분야는 특히 언론 매체를 통한 홍보효과에 크게 힘입고 있다. 최근 전세계에서 발행되는 여성 패션잡지들, 라이프스타일 잡지들의 편집자들은 특유의 화려한 원색 도판을 통해서 디자이너 작품을 (많은 경우 임의적으로) 선별해서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물론 연륜있는 사진가의 노하우와 포토샵 기술이 여기에 또 많은 기여를 한다. 90년대 혜성처럼 나타나 미래주의적인 소재와 둥근 곡선을 특징으로 하는 스타일을 제시한 마크 뉴슨, 그 밖에 톰 딕슨, 론 아라드 등은 최근 그 활동이 다소 주춤해졌다. 몇 해 전부터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수퍼 스타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최근엔 그의 동생 하니 라시드도 건축과 디자인을 공부하고 형을 이을 스타덤에 도전하고 있다)는 요즘 도데체 언제 디자인을 할 시간이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강연 및 행사 참여로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다(라시드는 여타 바쁘고 유명한 디자이너들이 그렇듯 아트디렉터로서 지시를 내리고 조수 디자이너들이 주문 제품들을 디자인해 보급하고 있다). 앤디 워홀이 조수들이 모여 바쁘게 작업하고 있는 자신의 화실을 가리켜 ‚공장(factory)’이라고 불렀던 이후로 오늘날 여러 바쁜 미술가와 디자이너들이 바로 그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으니 별달리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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