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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덕트 | 리뷰

남자의 자격

2010-04-07

리모콘을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면서 허무가 아닌 희열을 느끼는 남자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이 원하고 원망하는 기능이 정말 디자인일까요?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yes’다.

에디터 | 이안나(anlee@jungle.co.kr)


인간공학적인 디자인이 아름다울 수 있으려면 외양만을 두고 말하기란 불가능하다. 집약된 기술과 인간을 위하는 기능을 디자인의 시선으로 바라봐야만 비로소 ‘인간’과 ‘공학’은 하나로 합해진다. 다만 기능적인 것이 곧바로 우수한 디자인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기능들 사이에서 디자인이 아름다울 수 있으려면 기술을 가리지 않고, 헤치지 않아야 하며, 더함과 덜함도 없어야만 한다. 덜어내고 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디자인의 본 모습, 기능적인 디자인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서다.


R8은 주차되어 있어도 고속도로에서 질주하는 자동차의 기운이 느껴진다. 건널목에서도 경주용 자동차처럼 굉음을 내면서 질주한다는 허풍을 해도 믿을 만큼 R8은 남자다운 야성이 느껴지는 차다. 독보적이고 강력한 아우디의 휠은 1미터 25센티미터의 낮은 차체로 인해 받는 노면에 바짝 붙어 있어서, 차에 실리는 저항을 견딜 수 있다.

아우디의 슬로건이 ‘기술을 통한 진보(Vorsprung durch Technik)’인 것처럼 디자인을 보더라도 R8의 휠은 기술과 잘 맞물린다. 정면에서 휠을 바라보면 너머에 차의 엔진이 들어 있는 것처럼 차체의 내부가 숨김없이 보이고, 로고가 박힌 중심에서 2개씩 짝을 이뤄 Y자 형태로 굴곡져 뻗어 나오는 10개의 눈부신 바퀴살(뼈대, 빗살)는 525마력을 타이어에 그대로 전달한다. 기술의 힘은 휠의 공법에 있다. 높은 압력으로 눌러서 만드는 단조(forged) 공법으로 휠은 가볍고 단단하다. 힘에서 밀리지 않고 정지한 상태에서 시속 100km 가속까지 3.9초에 주파하는 아우디의 휠이야말로 겉이 아닌 속으로 진가를 말한다. 그리고 아우디는 남자가 자동차에 가장 돈을 많이 투자하는 부분이 휠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기능적인 디자인을 생각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손톱깎이였다. 단칸방에서 손톱을 깎는 남자가 아니라 손톱을 반들반들하게 윤낸 남자의 손톱깎이. 서랍이 아니라 갑에 넣어두는 손톱깎이 말이다.
네일아트숍에서는 손톱 끝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줄칼처럼 생긴 파일로 손톱을 갈아준다. 이름해야 연마. 쓰리세븐은 안다. 손톱을 가는 연마가 미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를. 쓰리세븐의 손톱깎이는 세계 최고의 연마 기술을 자랑한다. 그리고 손톱을 자르는 절삭력도 1.5배 높아졌는데 이상적인 날 구조와 각도 덕분이다. 그중에 ‘큐티클 트리머’는 특허를 받은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날 선 칼날이 미끄러지면 손톱이 다칠 수 있기에 지문과 마찰이 생기도록 빗금을 입힌 손잡이가 디자인적으로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고작 손톱깎이에 기능과 디자인이 얼마나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중국에서 쓰리세븐 손톱깎이가 받는 대우를 떠올려보라. 중국의 대형 백화점 1층에는 쓰리세븐 손톱깎이가 진열되어 있다. 세계시장 점유율 1위라는 기록 안에 숨겨진 손가락 한 마디만 한 기술력은 기능을 돋보이게 하려는 아주 기본적인 생각에서 시작된다. 중국의 총리가 CCTV 방송에 출연해서 “외국 제품은 품질 면에서 이렇게 훌륭한데, 우리 제품은 왜 안 되는 겁니까? 우리도 노력해서 훌륭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냅시다”라고 호소할 때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제품 또한 쓰리세븐의 손톱깎이였다.


양재홍이 헬스 트레이너로 일하면서 알게된 건, 여자들이 남자의 손등이나 팔뚝에 튀어나온 핏줄을 은근히 밝힌다는 사실이다. 그런 여자들은 내심 자신의 연인에게 악력계를 선물할지 모른다. 투박하게 생긴 거 말고 일명 캡 악력계라 불리는 ‘COC(captions of crush) 악력계.’ 기능은 동급 최강이다. 팔씨름 동호회 파워존에서 COC 악력계는 명품으로 통한다. 가격대는 높지만 손아귀 힘을 기르는데 탁월해서 회원마다 적어도 2개 이상의 COC 악력계를 가지고 있다. 굳이 2개가 있을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하겠지만 악력의 세기에 따라 등급을 나눈 것이 그들만의 전략이다.

어쩌면 힘의 세기에 따라 등급을 나눈다는 발상은 힘자랑 깨나 하는 남자들을 잘 간파한 걸지도 모른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COC 악력계라고 치면 하나같이 세기가 높은 악력계를 손으로 쥐었다 풀기를 반복하는 동영상이 뜨니, 최고 등급인 No.4를 쓰기 전까진 아마도 평생 그럴 것 같다. 더군다나 No.4를 쥘 수 있는 사람이 세계적으로 딱 5명뿐이라니 대대손손 COC 악력계를 만나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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