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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자동차 디자인의 수용

2011-03-15


자동차 ‘새나라’를 기점으로 완성차의 해체 부품을 수입하여 단순 조립하는 생산 방식이 시작되면서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본격적으로 KD(Knock Down: 부품을 수출해서 현지에서 조립, 판매하는 방식)조립체제로 이행하게 되었다. 신진자동차공업은 1966년 정부의 ‘자동차공업일원화‘ 업체로 선정되면서 적극적으로 KD도입에 나서 토요타의 코로나, 크라운, 파브리카를 국내로 들여왔다. 곧이어 68년 현대자동차도 영국 포드의 소형차인 코티나, 포드20M 등을 도입 생산하였으며, 아시아자동차는 70년부터 이탈리아의 피아트 124를 생산하였다.

글 | 이옥분 디자인학 박사
에디터 | 최동은(dechoi@jungle.co.kr)

신진이 일본에서 도입해 온 토요타 차량은 대부분 미국과 영국 자동차 디자인을 모방하여 일본의 실정에 맞게 크기를 줄인 차량이었다. 신진이 생산한 차들이 일본에서 들여왔긴 했지만 이 차들의 원래 모델은 유럽 디자인이 많았고, 신진 이외의 대부분의 생산업체들도 유럽의 자동차업체에서 디자인을 도입했다. 이때부터 한국 디자인은 50년대의 미국 스타일에서 벗어나 유럽 스타일로 확실히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다. 이러한 방향 전환은 미국 자동차들이 연료소모가 많은 대형차 중심으로 발전해 있어서 한국의 도로와 경제사정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KD 도입으로 공업화를 이룩하게 되면서 한국의 디자인이 유럽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유럽 디자인을 그대로 이전받아 조립 생산하는 방식이 성행했던 것은 자체적인 디자인의 개발보다 품질이 확보된 디자인을 도입하는 것이 생산과 시장 확보에서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외국 디자인에 의존했던 이러한 태도는 기업의 미래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

1960년대 신진자동차는 자동차일원화 업체로 선정되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토요타의 코로나를 생산하며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간 동안 신진은 국산화와 기술 개발에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토요타에 의존했고, 이 때문에 토요타가 일방적으로 기술협약을 파기하자마자 차량을 생산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신진자동차는 정부의 자동차산업의 육성 정책을 성장의 기회로 삼지 않고 외국디자인에 의존함으로써 선두기업의 지위에서 물러나게 된 것이다.


디자인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이 부족한 상황에서 일방적인 디자인의 수입이 가져온 문제는 현대자동차 ‘코티나’의 사례에서도 잘 드러났다. 현대자동차는 유럽의 포드 자회사에서 개발한 코티나를 들여와 1968년부터 조립생산을 시작했다. 코티나는 1966년 영국에서 개발하여 영국 내 판매대수 2위를 차지한 인기차종이었고, 국내에서도 경쟁사인 신진자동차의 코로나보다 시트가 넓고 배기량도 높았으며 안전장치와 최대속도 등의 성능도 우수하고, 포드가 만든 차라는 명성과 현대자동차의 할부금 제도 덕분에 호응도 좋았던 차량이었다.

출시 초기 코티나는 차량 자체의 성능과 편의성이 좋아 코로나가 독점하고 있던 시장에서 현대의 인지도를 높이며 상승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개발된 코티나는 선진국의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차량이었기 때문에 도로 포장률이 20%도 안됐던 한국의 도로 사정에 맞지 않아 문제가 자주 발생했다. 이러한 차량의 성능 결함은 코티나를 ‘고치나’, ‘코피나’, ‘골치나’ 등으로 불리게 할 만큼 심각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디자인을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한 채 공업화를 이루어 가던 과정에서 생겨난 문제들이었다. 자발적 기술 축적의 토양을 잃은 상태에서 정부 주도의 급박한 공업화는 디자인의 수입을 강행했고, 이에 따른 부작용은 자동차의 제작 능력과 사용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성급한 공업화와 양적 확장에 치중한 결과로 나타났다. 이 문제들은 자동차 디자인에서 한국적인 현실의 반영이나 고유성의 문제를 거론할 여지도 없이, 단지 근대적인 양산 체계를 빠르게 갖추어 나가야 하는 시급함만이 목전에 있었을 뿐이라는 당시의 현실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중대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수입차는 한국 자동차업체들이 자동차 디자인의 언어를 빠르게 습득하고 이해하는 통로가 되었다. 업체들은 조립 생산차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자체적인 기술을 쌓아 나갔고, 디자인의 환경적, 물리적 조건을 이해해 나갔다. 또한 디자인을 도입하고 조정하면서 서구 디자인의 언어와 감각을 습득하기 시작했다. 비록 자체적인 조형 언어를 발굴하지 못했고, 미적 감각을 개발할 수 있는 맥이 단절 된데다 성장주의 이념 속에서 서구적 가치가 내면화되어 갔을지라도, 수입 디자인은 세계적인 조형의 흐름을 가장 쉽게 보여주는 완벽한 모델로 조속한 디자인 체제의 마련을 도와주었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서구의 디자인은 선진 기술이 이루어낸 현대화의 표준으로 이해되었으며 자동차디자인의 인식적 기초를 형성함으로써 한국의 자동차디자인은 서구 편향적 시각, 특히 유럽 디자인의 세계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게 되었다.


* 참고문헌
Michael Bowler, 『자동차의 역사』, 위즈덤하우스, 2007
손정목,『한국도시 60년의 이야기 1』, 한울, 2005,
한국자동차공업협회, 『한국자동차산업50년사』, 2005


* 지난 기사 보기
한국 자동차 디자인 탐구 ① - 한국 자동차 디자인의 첫 시도 "시발자동차"
한국 자동차 디자인 탐구 ② - 시발 자동차의 새로운 디자인
한국 자동차 디자인 탐구 ③ - 자동차 산업정책과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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