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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감성으로 만든 디자인 문구

2011-07-07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은 예술이 미메시스(mimesis), 즉 모방에서 시작된다고 믿었다. 감각적인 표지 디자인으로 유명한 열린책들의 홍지웅 대표도 그랬다. 모방이 창작의 본질이라는 생각 아래 그는 열린책들의 예술 전문 출판사 이름을 미메시스 디자인으로 정했고,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을 지었으며, 1년 전부터는 디자인 문구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미메시스라는 디자인 철학은 이제 책을 넘어 건축과 문구에도 심어졌다.

에디터 | 최동은(dechoi@jungle.co.kr)
사진제공 | 미메시스 디자인

미메시스 디자인은 기획자인 홍유진 팀장과 디자이너인 석윤이 팀장이 주축이 되어 이끌어 가고 있는 회사다. 이들은 파주출판단지에 위치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 열린책들과 함께 일하며 독립적이고 유기적인 도움을 주고 받고 있다. 지난 6월, 2011 서울국제도서전을 막 끝내고 온 두 사람을 만났다.



출판사 + α

Jungle : 얼마 전 2011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하셨었는데 분위기가 어땠나요?

석윤이(이하 석)_ 열린책들과 함께 참여했는데 예상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굉장히 좋았어요. 저희 제품이 온라인에서 보여질 때는 컬러로만 보여져서 좋은 줄 잘 모르시는데, 직접 보면 품질이 좋다고 말씀들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무슨 종이 쓰냐고 물어보시고, 재질에 비해서 가격이 싸다고도 하시고요. 실제로 고객의 얼굴을 마주보고 판매하다 보니 배운 것도 많고, 저희가 한 일에 대해 보람도 많이 느꼈고요. 열린책들의 이미지를 살려준 것 같아 뿌듯했죠.


Jungle : 문학과 디자인의 연결고리가 그렇게 쉽게 떠오르지는 않아요. 출판사에서 디자인을, 그것도 디자인 문구를 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석_ 브랜드 이야기에도 나와 있듯 저희의 목표는 ‘문학적 품격과 예술적 감수성이 담긴 문구’를 선보이는 것인데요. 이건 예전부터 대표님께서 계속 추구하셨던 것이었어요. 예를 들어 책 표지에 아티스트의 작품을 사용하거나, 외국에는 알려져 있지만 아직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은 아티스트들과 계약을 맺기도 하기도 했고요. 책에 감각적인 포장을 함으로써 예술성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키는 작업을 했던 거죠. 그렇게 모은 이미지 중에 아직 사용되지 않은 방대한 이미지들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문구에 사용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아직은 많이 내지는 못했지만 작가 시리즈, 디자이너스 시리즈처럼 시리즈 별로 노트를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Jungle : 그렇다면 거기서 얻는 시너지 효과는 무엇인가요?

홍유진(이하 홍)_ 굉장히 많아요. 제작 노하우가 있으니까요. 열린책들에서 매년 발간하는 편집 매뉴얼이라는 책에 제작의 기초라는 챕터가 있어요. 제작 용어나 인쇄 방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있어서 저같이 처음 출판업계나 문구업계에 뛰어든 사람도 쉽게 배울 수 있죠.
또 저희 출판사와 오랜 인연을 맺고 있는 인쇄소들도 많은 도움을 주세요. 저희가 노트 제작에서궁금한걸 물어보면 아는 사람을 소개해 주시고, 간단한 수작업은 그냥 해주시기도 하고, 원래 잘 보여주시지 않는 제작 과정이나 인쇄 과정도 견학시켜주시고요. 이런 과정을 직접 보고 나면 확실히 느끼는 바가 있거든요. 다음에는 어떻게 만들면 제작비가 더 줄겠구나 하는 것들이요. 상품을 기획할 때 많은 도움이 되죠.



카림 라시드, 알바로 시자, 알렉산드로 멘디니



열린책들의 디자인 남다른 감각은 세계적 디자이너를 기용해 만든 ‘디자이너스 시리즈’로 더욱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들은 2006년 세계문학 시리즈를 출시하며 당시 국내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스타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를 초청했다. 그가 만든 신호등처럼 올록볼록한 유선형의 책장은 당시 출판계에서는 획기적인 작업이었다. 2009년, 세계적 건축가인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이 파주출판단지에 완공되었고 2010년, 세계 3대 디자이너 중 한 명인 알렉산드로 멘디니 역시 미메시스 디자인과 함께 탁상용 펜꽂이를 만든 것이다.

홍_ 사람들이 소규모 출판사에서 어떻게 이런 스타 디자이너들과 일할 수 있었냐고 많이 물어보세요. 다들 저희가 돈을 많이 줬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반대로 저희는 처음부터 돈 많이 못 드린다고 했거든요. 가격도 비싸지 않고요. 대표님의 철학도 ‘좋은 디자인은 사람들 사이에 널리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아도 가격 때문에 못 사는 사람이 많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고요. 책, 건축, 문구도 마찬가지에요.

선_ 알렉산드로 멘디니에게도 저희 그냥 겁도 없이 연락을 드려서 의뢰를 했던 거거든요. 그런데 흔쾌히 해주겠다고 하셨어요. 나중에 들었는데 본인은 이런 소소한 작업을 매우 즐겁게 하셨다고, 출판사가 자신에게 펜꽂이 디자인을 의뢰했다는 것도 재미있었다고 말씀하셨더라고요. 거장의 그런 면이 같은 디자인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참 친근하게 느껴졌어요. 일하는 내내 그런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했죠.


이렇게 탄생한 것이 멘디니 타이디. 화이트, 그린, 오렌지의 세 컬러로 사선 모양, 굴곡진 표현을 하려다 보니 기술의 한계에도 부딪혔다.

석_ 멘디니쪽에서 시안을 많이 보내주셔서 직원들끼리 투표를 통해 하나를 골랐어요. 빨리 보여드리고 싶어서 서둘렀는데도 출시까지 1년이 걸렸죠. 볼 때는 쉬워 보였는데 실현 불가능한 것들이 많았거든요. 독특한 곡선 모양을 표현하는 것도 어려웠는데, 색상을 내려고 했더니 사람이 일일이 칠해야 하는 거라 기대했던 만큼 잘 안 나오더라고요.


컬러의 탄생


Jungle : 제품에 사용하는 비비드한 컬러는 어떤 기준으로 고르시나요?

석_ 저희는 처음부터 컬러에 집중을 했어요. 어떤 형태로 디자인을 만들어가야 하나 고민을 했는데, 요즘 나와있는 디자인 문구를 살펴보니 의외로 심플하고 강한 디자인이 많이 없더라고요. 아기자기하고 독특한 그림은 많은데 말이죠. 또 아직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색상도 너무 많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수입 브랜드처럼 느낄 수 있는 세련된 스타일로 가자고 했어요. 심플한 컨셉이면 남녀노소 다 좋아하시잖아요. 대신, 저희는 색상마다 타겟을 다르게 설정하는 거죠. 예를 들면, 여자,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좋아하는 형광색과 그 중간쯤 되는 보라색, 주황색을 사용한다던지.
요즘 대중들의 감각이 날로 발전하고 있잖아요. 예전에는 녹색이나 파란색 원피스는 세련된 사람들만 입는 옷이었는데 지금은 어딜 가도 다 입고 있어요. 저희도 이런 변화에 맞춰서 컬러 배합에 초점을 맞춘 거에요.

홍_ 하지만 사실 컬러 선정이 제일 어려워요. 특히 기획자 입장에서는요. 색깔이 너무 많으면 제작하기가 어렵고, 타겟층을 하나만 해도 안 되고. 각자 예쁜데 모아 놓아도 예쁜. 하여튼 복잡해요(웃음)

Jungle : 클로스라는 재질도 촉감이 독특한데요.

석_ 이게 원래 책 양장할 때 쓰는 재질이에요. 예전에 독자들 요청으로 양장본을 백지 노트로 만들어서 판매한 적이 있었는데요, 고가였는데도 순식간에 다 팔리더라고요. 그 때, ‘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문학적인 감성은 감촉, 무게, 소장하고 싶은 느낌에서 나오는구나’ 하고 느꼈고요. 그래서 책 만드는 것처럼 똑같이 양장을 하고, 속만 노트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뭔가 쓰고 싶은 노트를 만들려고 했죠.
홍_ 사실 클로스가 컬러를 정말 예쁘게 잘 표현해주는 재질이에요. 서걱서걱한 촉감이 옛날 책을 연상케 하는 아날로그적 감성도 있고요. 입점해있는 곳 MD분들도 이 재질이 어떻게 이 가격에 나올 수 있냐고 물어보시곤 하거든요.

버려지는 것에 새생명을

최근 미메시스 디자인에서는 또 한번 책과 문구의 튼튼한 연결고리를 확인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작은 무지 메모지 ‘슬라이스 메모’가 바로 그것이다. 열린책들의 베스트 셀러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을 인쇄하고 남은 종이를 모아 만든 이 메모지는 한 묶음에 7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과 예쁜 포장으로 2011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Jungle : 이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오게 됐나요?

홍_ 사실 이건 예전부터 저희가 하고 싶어했던 것이었어요. 처음에는 쓰다 남은 공책을 모아서 만들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수거도 어렵고, 재단하는 것도 문제고.
석_ 그래서 그 다음 아이템을 찾다가, 책을 찍어낼 때 버려지는 아까운 종이들이 보였어요. 특히베르나르의 책은 대부분 베스트셀러라서 대량으로 찍거든요. 인쇄소에서는 그런 부분을 모아서 메모지로 쓰고 계시더라고요. 또 이 종이가 아직 많이 사용되지 않은 실험적인 종이인데 거칠면서 가볍고, 그러면서 결이 성기지 않아요. 그래서 해보자고 하고 부랴부랴 계산기를 돌렸죠.
홍_ 사실 저희에게는 팔수록 손해인 제품이에요. 저희는 재단하고 풀칠만 하면 되니까 돈이 안들겠지 생각을 했는데, 종이를 모아서 자르는 작업이 다 수작업이더라고요. 사람이 일일이 두께와 크기를 맞춰야 되는 거라 재단비만 예상 금액의 3배 이상이 들었어요. 보통은 유통마진도 있기 때문에 다른 업체에서는 제작비의 3~4배정도를 가격으로 책정하는데 저희는 2배도 안 나와요. 이런 착오 덕분에 다행히 정말 좋은 의미만을 담을 수 있었죠. 저희 입장에서는 굉장히 뿌듯해요. 사람들도 관심을 많이 가져 주시고, 쇼핑몰 MD들도 먼저 나서서 이 제품을 홍보해주시고요. 그래서 다음은 무슨 아이템을 할지 행복한 고민 중이에요.

Jungle : 앞으로의 계획은?

홍_ 일단 수출을 해보고 싶어요. 저희는 디자인과 품질에는 정말 자신 있거든요. 또 멘디니 때도 그랬던 것처럼 저희는 무작정 지르고 보거든요. 독일에 페이퍼월드라는 큰 문구 박람회에 참가했을 때도 참여업체도 아닌데 리플렛을 뿌리고 다녔는데 좋은 반응을 얻었었고요. 이번에도 하다 보면 잘 될 거라고 믿고 있어요.
두 번째는 소비자와 함께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고 싶어요. 저희 소비자들과 이야기 하면서 우리 디자인에 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도 듣고, 기획에도 함께 참여해서 같이 만들어가는 그런 소통의 통로를 만들고 싶어요. 미메시스 디자인을 사람들과 소통하는 허브로 만드는 것, 그것이 저희의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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