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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전세계를 휩쓴 자동차 디자인 트렌드

2011-08-23


1980년대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비약적인 양적 성장을 거두게 한 주역은 외국의 기술을 지원받았거나 이미 개발된 차량을 들여와 생산한 차량들이었다. 국제적인 생산력과 품질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였던 이 시기에, 이미 안정적인 품질을 확보한 외국 디자인을 도입하는 것은 목표를 달성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외국업체와의 협력관계에서 수출전략차종으로 개발된 엑셀, 프라이드, 르망의 디자인에는 이 시대 자동차 디자인의 일반적인 트렌드가 담겨 있었다. 이들 디자인은 70년대 석유파동을 겪으며 나타난 연료절약형 차량의 요구와 함께 대중적 삶의 환경과 안전에 관여하는 여러 조건들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글 | 이옥분 디자인학 박사
에디터 | 최동은(dechoi@jungle.co.kr)


연비효율성과 공기역학 연구

세계의 자동차 개발 환경은 80년대 들어 여러 요구에 직면해 있었다. 차량의 성능과 강도를 보강하면서 자원을 절약하고, 환경오염과 안전문제 등을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이러한 요인들은 차량의 동력기관을 정밀하게 제어하기 위한 전자장비와, 승객의 안전과 운전 편의성을 위한 에어백과 ABS 장치의 개발을 이끌었다. 배기가스와 연비, 안전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새로운 장치들이 탑재되었다. 그러나 차량의 중량이 늘어나 오히려 연비는 불리해졌다. 따라서, 자동차의 중량을 늘이지 않으면서도 소모되는 연료와 유해한 배기가스를 적게 하고, 내구성을 확보하며, 충돌 사고시의 안전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의 연구가 불가피해졌다.

디자인은 이러한 복잡한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해결하는 임무를 맡았다. 차량의 중량 증가에 따른 문제를 해결해 연비와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스타일과 재료의 경량화 연구가 활발해졌다. 1970년대 불어 닥친 석유위기는 이와 같은 자동차 디자인의 새로운 방향이 양산차에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계기가 되었다. 연비와 성능 향상에 주력한 디자인은 차량의 새로운 형태로서 공기와의 마찰을 줄여 속도와 연비를 향상시키는, 일명 공기역학적 스타일을 낳으며 80년대 자동차 스타일링을 이끌었다. 공기역학적 스타일은 일반적인 플라스틱을 보완하여 내열, 내마모, 내충격성 등을 높인 엔지니어링 플라스틱과 같은 보다 가볍고 강해진 새로운 재료의 개발을 통해 현실화되었다. 자동차를 구성하는 금속 재료들 중 일부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으로 대체되면서 경량화에 따른 연료절감이 가능해진 것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플라스틱은 사출성형 방식으로 복잡하고 굴곡진 형태 가공이 수월하고, 착색과 도장 또한 용이하여 디자인의 가능성을 넓혀 주었다. 80년대 공기역학적 스타일은 첨단기술과 신소재를 적용한 새로운 자동차의 스타일링으로 유행하며 실용성과 효율성에 중점을 세계 디자인 트랜드의 중심에 있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디자인의 개발도 70년대 자동차디자인 전문업체 중심의 발전 패턴으로부터 대규모 생산업체 안에 설치된 디자인부문이 주도하는 패턴으로 전환되었다.

에어로다이나믹 스타일 혹은 에어로폼이라 불리는 공기역학적 스타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주행하는 자동차에 미치는 바람의 힘을 분석, 측정하는 과정이 스타일 개발의 기본적인 프로세스로 자리 잡았다. 자동차에 미치는 여러 방향의 바람 중에서 차를 뒤에서 잡아 끌어당기는 듯한 항력(drag)은 공기저항을 높이는 주된 요인으로 이 항력은 자동차의 스타일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항력의 크기는 Cd(drag coefficient)계수로 표현되며, 자동차의 길이와 폭이 클수록 항력은 낮아지고 높이가 커질수록 높아진다. 항력 수치가 낮을수록 자동차는 같은 연료를 가지고 더욱 멀리, 더 빨리 주행할 수 있다. 또한 바람의 영향을 적게 받음으로, 주행안정성이 좋아지고 고속주행시의 중절음(바람을 가르는 소리)을 줄일 수 있다. 공기역학적 자동차는 이외에도 윈도우와 램프 등에 흙먼지가 붙는 것을 억제하고 와이퍼가 떠오르는 것을 막아준다.


공기역학적 스타일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인 쐐기형 스타일은 원래 속도경쟁이 치열한 스포츠카에서 유래했다. 1967년 생산된 람보르기니(Lamborghini)의 미우라(Miura)는 쐐기형 스타일의 스포츠카로 V12 4.0리터 370마력의 고성능 엔진을 차체 뒤에 얹고 최고시속 277km로 달렸다. 미우라에 이어 쐐기형 스타일이 독특하게 표현된 차종은 마치 장갑차처럼 각진 형태를 가진 카운타크(Countach, 72년)였다. 이 차는 기하학적인 면과 각진 모서리의 쐐기형으로 기계적인 이미지를 주었다. 카운타크의 스타일은 유럽의 다른 자동차업체에 영향을 주어 쐐기형 스타일의 유행을 가져왔다.


양산차에서 쐐기형 스타일은 주로 중소형의 차종에 활발하게 적용되었다. 양산차는 중소형 차량의 기능적, 구조적 특징을 따르면서 풍동실험을 통한 공력특성의 연구 결과를 결합한 형태를 띠었다. 전체적으로 쐐기형의 모양을 기본으로 차체에 부딪히는 공기의 흐름을 부드럽게 하는 곡면의 차체와 둥근 모서리, 돌출되는 부위를 줄인 하나로 통합된 모습이었다. 이러한 스타일의 유행으로 80년대 세단은 공기저항계수가 낮은 4/5인승의 해치백 스타일에 완만한 쐐기 모양의 디자인으로 모두 비슷해졌다. 미국 포드의 토러스(Taurus,86년)와 GM의 유럽 자회사인 오펠에서 개발한 카데트(Kadette, 84년)는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에어로다이나믹 스타일의 대표적인 차량이었다. 이 두 차종은 석유 파동이후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한 연구에서 개발된 형태로 80년대 중소형 자동차 스타일의 모델이 되었다. 토러스는 공기저항을 줄일 수 있는 스타일에 대한 연구결과를 “프로브(Probe, 84년)”라는 컨셉카로 제작하여 실험한 후에 이를 통해 얻어진 데이터를 양산차에 적용하면서 탄생하였다.


카데트는 대우의 월드카 르망으로 한국에서도 생산되었다. 르망은 80년대 한국자동차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에어로다이나믹 스타일로 공기역학 연구와 경량화 설계를 반영하여 0.32의 낮은 공기저항계수를 실현하였다. 르망의 스타일은 역동적이고 진보적인 느낌이었다.

엑셀의 기본 디자인도 미래지향적인 공기역학적 스타일로, 진동과 소음을 최소화하며, 편리성과 안전성을 극대화했다. 또한 넓고 유용한 실내공간을 확보하며, 중량감소와 연비향상 등의 경제성을 추구하고자 했다. 엑셀은 미쓰비시의 기술 지원으로 개발되면서 80년대 유행한 첨단 장치를 모두 탑재할 수는 없었지만, 스타일과 공간 효율성 면에서는 일반적인 소형차 디자인의 경향을 반영하였다. 쥬지아로의 스타일과 해외연구소의 풍동실험지원을 통해 세계적인 디자인 경향을 일정 부분 반영한 것이었다. 엑셀은 포니에 비해 모서리를 곡면 처리하여 공기역학적 연구를 반영한 스타일로 보였으며, 전륜구동방식으로 실내공간이 보다 넓어졌다.


공간효율성과 인간공학 연구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생활 패턴이 변화하면서 자동차는 더욱 사람들의 일상 생활과 밀접해졌다. 사람들이 차량의 실내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높아진 공간 활용도와 편의성에 대한 요구는 80년대 실내 디자인의 방향을 이끌었다. 실내 디자인은 평균적인 인체의 치수와 실내에서의 활동 내용을 기준으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각종 장치를 편리하게 사용하며 실내를 넓어 보이게 하도록 했다. 이는 운행 중 사람의 심리적/생리적 변화와 피로도의 측정, 행동범위와 내용을 토대로 한 인간공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하였다.

공간효율적인 디자인을 위해서 인체 치수의 통계를 토대로 자동차 내부의 여러 가지 장치들, 운전대의 지름과 굵기, 계기판의 위치와 각도, 시트의 형태, 천정의 높이, 여러 종류의 스위치의 위치 등 모든 장치의 디자인에 인간공학이라는 학문이 접목되기 시작하였다. 인간공학은(human engineering, ergonomics) 자동차와 같은 기계를 손쉽게 사용하도록 인간의 감각과 지각 기능이나 운동 기능과 연결하여 연구하고 조작성이 높은 인터페이스를 설계하는 것에 목표를 둔 학문 영역이다.

실내의 각종 장치들이 운전자가 사용하기 쉽도록 설계하는 개념은 랩어라운드(Wrap Around Style) 스타일이라는 새로운 용어의 유행을 가져왔다. 이는 각종 장치(도어트림, IP패널, 콘솔박스 등)들을 조작이 용이하도록 운전자를 중심으로 둘러싸는 스타일을 말하며, 따라서 전체적으로 실내 부품의 형태가 일체감 있게 구성된 느낌을 주었다. 특히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각종 조작 장치가 집중 배치된 이 스타일은 이전의 IP패드를 따라 수평으로 길게 배치한 단순한 스타일에 벗어나 운전 공간의 집약적, 역동적 이미지를 높여 주었다. 이러한 자동차의 설계는 자동차에 여러 가지 기능이 많아지면서 다양해진 조작 장치를 운전자의 신체적, 물리적인 특성과 운동수행 특성에 기초하여 설계함으로써 운전능력의 향상에 초점을 둔 것이었다. 랩어라운드 스타일은 이러한 운전자 사용성을 높여 주는 설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용어였다. 또한 비행기의 운전석을 연상하게 하여 첨단 기능을 탑재한 고성능 차량으로 연상하게 하는 시각적인 역할을 하였고, 이러한 의미에서 콕픽(Cockpit) 스타일이라고도 불렸다. 르망은 외장에서만이 아니라 실내 디자인에서도 운전자 중심으로 조작 장치를 배치하여 전체적으로 젊고 활동적이며 진보적으로 보였다.


더 넓은 실내 공간을 확보하려는 연구는 차량의 외형에서도 새로운 트렌드를 낳았다.‘캡포워드 스타일(Cab-Forward Style)’이라 불리는 형태는 카울을 앞쪽으로 이동시키고 후드와 데크의 길이를 짧게 하여 객실을 실제보다 훨씬 넓어 보이게 한 것이다. 각진 계단 모양의 노치백의 세단 이미지에서 확연히 달라진 캡슐 모양의 캡포워드 스타일은 실내 공간을 넓게 하려는 이 시대의 디자인 경향을 함축하며, 실제 차량의 구조적 변형 보다는 객실이 확장되었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이 스타일은 특히 넓은 공간이 필요한 가족용 세단에 유행하였다.

공간효율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연구는 1박스 자동차의 증가를 가져왔다. 구동장치에 필요한 공간과 엔진후드의 길이를 줄여 실내 공간을 극대화한 1박스 자동차의 구조는 내부공간의 변형이 가능했다. 좌석을 분리하고, 뒤로 눕히거나 돌릴 수도 있으며 좌석을 테이블로 변형하거나 다양하게 배치하여 고정시킬 수 있는 방안이 접목된 것이다. 이렇게 내부공간을 변형시킬 수 있는 자동차가 증가하면서 더욱 효율적이고 편리한 공간 설계를 위한 공학적 연구가 활발해졌다. 84년 르노의 에스파스(Espace)는 이러한 공간효율적 1박스 자동차의 전형이었다.


1980년대 세계의 자동차산업은 전자기술을 바탕으로 자동차의 연비향상에서 배기가스의 정화, 안전도향상에 이르기까지 고도의 기술 혁신을 이루었다. 이러한 기술에 의해 자동차는 70년대의 자동차에 비해 연료소비는 절반으로 줄고 배기가스는 10분의 1 수준으로 감소되었다. 또한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을 비롯한 신소재와 전자기술이 응용되어 70년대의 자동차보다 무게와 크기는 훨씬 작아졌는데 비해 제반성능과 안전도는 크게 향상되었다. 80년대는 이러한 기술 진보에 따라 외형와 공간에 관한 공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자동차의 스타일이 주류를 이루었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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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서 전 현대자동차디자인연구소장 과의 인터뷰 2009.10.3.
교통신문, 86/4/21, 86/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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