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23
1980년대 중후반 시작된 자동차 대중화의 원인은 자동차 가격의 실질적인 인하와 중산층의 형성에 따른 것이었다. 자동차는 생산 수량의 증가에 따라 생산 비용이 감소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규모의 경제에 지배받는 산업으로, 80년대 중반 이룩한 대량 생산 체제는 차량 가격의 실질적인 인하를 가져왔다. 이러한 양산 효과로 차량 가격은 큰 폭의 인상 없이 유지될 수 있었고, 그 인상폭마저도 다른 물가 상승률이나 임금 상승률에 비해 현저히 낮아 실질적으로는 차량 가격이 인하된 것과 같았다.
글 | 이옥분 디자인학 박사
에디터 | 최동은(dechoi@jungle.co.kr)
디자인 | 임보경
경제 성장으로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자동차를 살 수 있는 계층이 늘어난 것 또한 자동차의 소비를 이끈 원인이었다. 72년에만 해도 국민소득의 15배에 달했던 자동차의 평균 가격은 이후 점차 낮아져서 76년에는 6배, 79년 이후에는 국민소득 대비 약 3배 정도의 가격을 유지했다. 그리고 88년을 기점으로 자동차 가격은 국민 소득의 1.4배 수준으로 대폭 낮아졌다. 이렇게 소득에 비해 차량 가격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자동차는 드디어 일반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소비 품목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자동차를 구매하는 사람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온 것에 비해, 자동차 보유대수는 80년대 초반까지도 인구수에 비해 상당히 낮았다. 81년 승용차 1대당 인구수는 144.7명으로 이러한 낮은 보급률은 높은 차량 가격에 있었다. 소형차의 가격(과세전)은 한국보다 국민소득이 월등히 높은 일본에 비해 4%, 미국에 비해 16%가 비쌌으며, 레코드 급의 중형차는 일본보다 31%, 미국보다 45%정도 더 비쌌다. 당시 포니의 국산화 비율은 96%에 달했지만, 고급차일수록 국산화율은 60% 내외로 떨어져 수입하는 부품 비용 때문에 차량 가격이 더 높을 수밖에 없었다. 공업화의 수준, 차량 가격, 소득, 관세율, 도로, 기타 주차시설 등 자동차의 대중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격은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위의 표에서 보듯이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자동차는 GNP의 몇 배에 달하는 고가의 물건이기 때문에 일부 상류층만이 구매할 수 있었다.
생산비뿐만 아니라 세금도 자동차의 비싼 가격에 한 몫을 했다. 사람들은 자동차 자체의 가격보다 차량 구입에 따른 세금을 더욱 부담스럽게 여겼다. 자동차를 구입하기 위해서 내야하는 세금만 해도 특별소비세, 방위세, 부가가치세, 취득세, 등록세, 자동차세, 지하철공채, 면허세 등 그 세액은 일본의 6배, 미국의 30배에 달했다. 81년도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370만원의 포니 1400DLX(옵션포함)를 구매하는 데 드는 총 비용이 4백30만원이었고, 이중 31.5%인 1백35만원은 제세공과금이었다.
당시 신문은 이렇게 세금이 비싼 이유가 자가용을 사치품으로 보는 고정관념 때문이라고 분석하였다. 자동차를 사치품으로 여기면서 배기량을 기준으로 하는 과세의 기본틀이 형성되었으며, 이에 따라 승용차는 중과세, 영업용 차량은 생산적 재화로 간주하여 경과세한다는 것이다. 승용차 중에서도 2000cc이상 고급차는 일반차량의 2-3배에 달하는 세금을 매겨 고소득층의 고급 자동차 구입과 유류 사용을 억제했다. 이런 정책은 자동차를 부동산과 같은 자산으로 보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대토지 소유나 다주택 소유에 대한 비판적 입장이 사회적으로 공감을 얻듯이, 배기량이 큰 자동차나 2차량 이상을 보유하는 것을 과소비로 보며 중과세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이와 같이 높은 세금은 자동차를 생활필수품이 아닌 자산 또는 사치재로 보고 재산세의 과세 대상으로 간주하는 당시의 정서를 보여 주었다.
80년대 초반 만해도 GNP의 3배에 달하던 소형차의 가격은 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중산층이 구입할 수 있는 가격대로 대폭 낮아졌다. 양산효과로 차량 가격이 낮아졌고, 적지만 세금인하도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세금 인하는 품질문제로 수출이 부진하자 내수를 확대하고 덤핑 시비와 같은 무역마찰을 완화하려는 정책적 차원에서 추진되었다. 한시적인 조치였을지라도 이러한 세금 인하는 자동차 가격의 양산 효과를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87년 차량의 판매 가격은 100만원 내외의 세금을 포함해 프라이드가 330만원~400만원, 엑셀은 450만원~500만원선이었다. 등록에 드는 세금을 고려하더라도, 이 정도 가격이라면 생활수준이 좋아진 사람들이 마이카(My car) 장만을 고려해 볼만했다. 게다가 자동차업체가 내수수요를 촉진하기 위해 새로운 영업 전략을 경쟁적으로 강화하여, 자동차 가격을 3% 정도 인하했고, 60개월까지 장기할부판매를 실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업체의 판촉 노력도 사람들의 마이카 구입을 촉진했다. 한시적으로 인하되었던 세금은 곧바로 다시 회복했고, 91년에는 동급기준 일본의 2.4배, 미국의 8배를 유지했다. 대중화가 무르익어가는 이 시기에도 세금은 여전히 비쌌고, 사람들은 여러 세금과 공과금이 포함된 비싼 자동차 가격과 유지비를 부담스럽게 여겼다. 이렇게 자동차 대중화는 자연스럽게 유지비를 줄일 수 있는 경제성 좋은 차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 참고문헌
윤진호외,『한국 자동차 산업의 구조 변화와 과제』, 새날, 1998
조형제,『한국 자동차 산업의 전략적 선택』, 백산서당, 1993
2004 자동차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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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1981/11/17
김재만 전 기아자동차부사장 인터뷰 2009.10.27
박병재 전 현대자동차부회장 인터뷰 2009.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