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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대중의 생활양식을 변화시킨 ‘마이카 붐’

2011-11-02


1980년대 이후 한국은 본격적인 대중소비시대로 접어들었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산업기술의 고도화, 개인소득의 향상으로 소비영역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대중의 소비패턴과 생활양식은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81년 들어선 5공화국이 실시한 통행금지해제, 교복자율화, 프로스포츠구단의 창단, 컬러TV의 방송과 올림픽 유치 등의 정책들은 서비스산업이 확대되고 대중문화와 소비주의가 사회전반에 급속도로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

글 | 이옥분 디자인학 박사
에디터 | 최동은(dechoi@jungle.co.kr)


특히 저유가, 저금리, 저환율의 3저 효과로 인해 86년에서 89년까지 연 12%가 넘는 고도성장을 기록하면서 대한민국은 경제적 호황을 누렸고, 이로 인해 확산된 중산층이 소비시대로의 전환을 이끌었다.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대형 가전제품과 텔레비전, 자동차 판매가 급속히 늘어났다. 또한 외국 여행의 자유화와 수입 개방으로 외국의 유명 상품과 고급 자동차를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는 계기가 열리면서 한국은 소비 시대로 빠르게 변화했다.

국내의 자동차는 매년 20% 이상 증가해오긴 했으나, 88년에는 그 증가 속도가 폭발적이었다. 86년만 해도 국내의 승용차의 판매 대수는 15만 여대에 지나지 않았으나, 88년에는 32만대, 89년에는 51만대를 넘어서게 되었다. 85년부터 87년까지 엑셀과 르망, 프라이드가 연속적으로 출시되면서 자동차를 처음으로 갖는 사람과 핵가족용 소형차로 불티나게 팔려 나간 덕이었다. 급증하는 자동차 소비는 소비문화의 확산과 깊은 관련을 맺으면서, 외식문화, 여가 시대로의 변화를 이끌었다. 이렇게 소비가 팽창하면서 80년대 중후반의 한국 사회는 생활양식 자체가 이전 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졌고, 대중 소비가 경제 성장을 유지하는 대중 소비 사회로 접어들었다.


신도시 중산층이 주도한 마이카 붐


88서울올림픽은 한국 사회의 전반에 걸쳐 획기적인 전환점을 가져왔다. 이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국제화와 강남개발의 새로운 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관련된 새로운 문화를 이끌었다. 정부는 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국립현대미술관, 예술의 전당, 독립기념관, 국립국악당 등 국제적 규모의 대형문화시설을 건설하고 공공 공간과 공원 녹지도 조성하면서 강남의 도시 미관을 개선하였고, 강북 소재 학교의 강남 이전을 유도하여 인구와 시설을 분산시켰다. 이러한 정책 결과 강북에 거주하던 많은 중산층이 강남의 아파트 단지로 이주하면서 강남은 중산층의 거주지역이 되었다. 강남 아파트를 필두로 아파트가 대도시의 주거형식으로 자리 잡고, 서울 근교에 분당, 산본, 일산 등의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본격적인 아파트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강남을 필두로 이러한 신도시는 중산층의 거주 지역으로 승용차의 소유를 부추겼다.

마이카 붐 속에서 ‘집 없이는 살아도 자동차 없이는 못 산다’는 풍조가 번졌다. 아파트 주차장과 골목길은 자동차로 넘쳐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마이카에 대한 소망을 해소하고자 하였다. 마이카 붐이 이루어지면서 운전 면허 취득 바람도 일어났다. 80년대 초반만 해도 오너드라이브는 꿈같은 일이었지만, 82년 공무원의 손수운전제도가 도입되고 기업에서도 이같은 조치가 실시되면서, 그동안 면허 없이 운전사를 고용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면허 취득붐이 일었다. 그러던 것이 8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서 오너드라이브는 당연한 일이 되어, 운전학원마다 면허증을 따려는 수강생들로 북적거렸다. 당시에는 면허시험을 보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할 뿐 아니라 시험 자체도 어려워 면허를 따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다.



레저 문화의 탄생


서울 근교에 과천대공원과 동물원, 미술관 등이 조성되었고, 호텔과 백화점, 스포츠레저시설이 한 곳에 집중된 복합 소비 공간이 새로 생겨났다. 주말이면 교외의 놀이공원이나 백화점 등으로 여가와 쇼핑을 즐기러 가는 가족들이 증가했다. 근교로 떠나는 가벼운 여행을 일컫는 ‘드라이브’라는 말이 생겨났고, 여름이면 일가족이 자가용을 타고 떠나는 ‘피서’라는 말도 유행했다. 이러한 대규모 위락시설과 여가 문화의 형성은 모두 자동차가 개인들의 이동시간을 단축시켰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가문화가 형성되면서 라면, 자판기 커피, 나무젓가락 등 일회용품의 사용이 증가했고, 패스트푸드점이 늘어났다. 맞벌이 부부가 중심인 핵가족이 늘어나고 이들의 여행이 증가하면서 일회용품이 확산된 것이었다.

가족 여행의 증가는 새로운 자동차 스타일의 유행을 가져왔다. 세단형 보다는 한 가족이 타기에 공간이 충분하고 짐도 실을 수 있는 원박스카, 봉고붐의 탄생이었다. 봉고는 기아자동차가 자동차합리화조치로 인해 상용차 중점 업체로 전화하게 되면서 개발한 차량이었다. 첫 원박스카인 봉고 코치(81년)와 봉고(83년)는 넓은 실내공간만이 아니라 디젤엔진으로 유지비도 적게 들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봉고는 놀러 가는 차”라고 할 만큼 레저용으로도 이용되고, 유치원, 음식점 등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폭넓게 사용되면서, 이후 출시된 모든 원박스카를‘봉고차’라고 불리게 할 만큼 성공을 거두었다.


교통 질서 캠페인의 대두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데 비해 도로와 교통에 관한 행정체계, 대중의 의식이 미흡하다보니 무질서와 교통사고 등으로 심한 몸살을 앓았다. 주차 문제는 하나의 전쟁이 되었고, 배기가스로 인한 대기 오염만이 아니라 세차로 인한 하천 오염, 노후 차량의 폐차 문제 등 자동차와 교통에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이 생겨났다.


이런 가운데 초보 운전자가 알아야한 기초적인 차량 운행과 자동차의 사용 및 관리, 도덕의식과 교통사고 방지를 강조하는 캠페인이 벌어졌다. 특히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의 유치 이후에는 질서 있는 사회 구현을 위한 의식 개혁을 강조하고, ‘교통사고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교통과 안전, 오염과 질서에 관한 캠페인이 연일 펼쳐졌다.



“질서는 한 나라의 민도를 가장 잘 나타내는 척도이며, 무질서한 사회는 미개사회다.”
“교통질서는 생활이다.”
“질서의식의 생활화 추진 운동”
“질서.... 편한 것, 자유로운 것, 아름다운 것”




이러한 캠페인을 계기로 교통시설과 질서가 향상되기는 하였지만, 88년 총 22만 5천 16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하고 1만 1천 5백 63명 사망, 28만 7천 7백 39명 부상을 기록하며 교통사고 사망률 세계1위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기본적인 도로교통구조가 미흡한 상황에서 벌어진 것이지만, 물리적인 요인보다는 방어 운전과 양보 운전을 하지 않는 시민정신의 결여에서 비롯된다고 인식이 강했다.

교통사고와 무질서의 원인은 운전자의 난폭운전 때문이라며 사람들은 그 난폭함을 “곡예운전”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리고 “운전은 인격”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이 말은 많은 사람들이 운전을 ‘인격에 비유’할 만큼 개인적인 인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여기며, 공격적인 운전을 삼가하고 양보심을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 말처럼 폭력적인 교통 환경 아래에서 사람들은 러시아워와 상관없이 온종일 교통체증에 시달렸고, 꽉 막힌 도로에서 빠져 나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당시만 해도 자동변속기는 일부 고급차에 선택사양으로 장착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동변속기 차량을 타고 다녔다. 초보운전자는 무엇보다도 거리로 차를 몰고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 이유가 살벌하고 위험한 교통 환경 때문이었다고 말하기도 할 만큼 이 시대에 운전을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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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은,『서울 20세기 공간변천사』, 서울시정개발연구원, 2001
임영태,『대한민국 50년사』 2권, 들녘, 1998
전국진,『거꾸로 달리는 한국의 운전문화』, 고려원미디어, 1994
정재정,『서울 20세기 생활, 문화변천사』, 서울시정개발연구원, 2001
「자동차생활」, 84/9, 85/9, 89/12, 86/9
「교통신문」, 82/1/1, 92/12/28
전 기아자동차 김재만 부사장 인터뷰, 2009/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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