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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외제차와 티코의 시대

2011-12-01


글 | 이옥분 디자인학 박사
에디터 | 최동은(dechoi@jungle.co.kr)


최고급 외제 자동차의 수입

1987년부터 국내에서도 외국산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국내 경제의 눈부신 성장과 자동차생산체제가 안정화되면서 미국의 수입 개방 압력과 더불어 수입제한이 통상마찰요인으로 작용하는 등 국내외 여건이 변화함에 따라 외국산 자동차의 시장 개방이 추진되었던 것이다. 수입 첫해에는 유럽 메이커인 벤츠230E 1대, 300SEL 9대, 아우디200 1대가 들어왔고, 이후 구미 메이커들이 합류했다. 89년에 기아에 판매를 위탁한 포드 세이블은 가격이 저렴하고 A/S가 편리해 인기를 끌었고, 미국차 다음으로 독일의 BMW와 벤츠, 스웨덴의 볼보가 잘 팔렸다.

고급차 중심의 수입자동차들은 최고의 국산차보다 성능이 월등했고 가격도 높았다. 개방 초기 배기량 2천cc 이상의 수입차 가격은 관세가 60%에 세금까지 포함되어 도입가의 3.5배 수준이었다. 2천 40만원에 들어온 GM 캐딜락의 시판가격은 7천만 원 정도였고, 여기에 등록비와 옵션들이 추가되면 8천만 원 안팎으로 올라갔다.

초기 국내에 수입된 외제차들이 고가의 중대형차를 중심으로 운행되면서 자연스럽게 외제차는 좋은 차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조성했고,‘수입차’라는 단어 자체에 ‘귀한 차‘라는 이미지가 담겼다. 저가형의 미국차의 판매가 줄어들면서, 벤츠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고급 수입차의 대명사가 되었고, IMF 이후에는 BMW, 2001년 들어서는 렉서스가 여기에 가세했다. 특히 BMW는‘자존심 마케팅’을 통해‘성공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타는 차’라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젊은 사업가들이 가장 선망하는 차량이 되었다. 따라서 성공을 꿈꾸는 남자들은 “나는 BMW를 탈꺼야”라는 말로 자신의 성취욕을 표현하며, 자동차를 미래 성공의 가늠자로 바라보았다.

수입 초기에 외제차는 과소비를 조장한다거나 사회 계층간 위화감을 자극한다는 등 표면적으로는 기피의 대상인 것처럼 회자되기도 했지만, 이러한 사회적 정서는 오히려 외제차에 대한 질시와 선망의 의식을 배태하고 있었다. 외제차는 주변 가까이에 있었으나, 보통 사람들은 접근할 수 없는 사회적인 성공을 이룬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존재로 자리하며 한국의 자동차문화의 일정부분을 차지했다.


94년 <자동차생활> 에서 여성 오너 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수입차 의식 조사’에서는 이러한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조사결과에 의하면 대상자의 43명이 수입차가 국산차보다 튼튼하며, 30명은 성능이 뛰어나다고 응답했다. 수입차의 가격은 차량 자체도 고가이지만 세금 때문에 더욱 비싸며, 만약 세금이 국산차와 같아진다면 응답자의 70%인 35명이 당장 사거나 여유 있으면 사겠다고 대답해 적극적인 구매 의사를 표시했다. 값이 비싸 사지 못할 뿐, 수입차는 성능이 뛰어나고 안전하여 구매하고 싶은 차량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임을 알 수 있는 조사였다.

한편 이 조사에서 수입차 매장에 가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14명이었고, 응답자의 72%에 달하는 나머지 36명은 매장조차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즉 이들은 차량의 성능과 품질에 대한 정보 없이 외제 브랜드에 대한 지명도와 가격, 배기량, 크기 등의 외형적인 기준에서 막연히 수입차를 좋게 평가한 것이다. 조사 결과에서 보여진 외제차는 비싼차, 남이 알아주는 차라는 인식은 초기 중대형 중심으로 고가에 책정된 수입 차종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컸다. 이들은 국산차보다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치를 높이며 그 품질 여부나 차격에 관계없이 고급차라는 이미지를 만들었고, 그와 함께 상대적으로 국산차는 저렴하고 품질이 낮다는 선입견을 형성하는데 일조했다.

이와 같이 고급차에 대한 소비심리를 부추기는 외제차는 고급 편의 장비를 장착한 대형차의 개발경쟁을 이끌어서, 4기통 2천cc를 만드는 기술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국산차의 고급화를 촉진시켰다. 자동차업체들은 6기통 3천cc 이상의 엔진과 ABS, 에어백 등 전자화된 첨단안전장비들을 장착한 고급차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런 면에서 수입자동차는 안전의식과 품질 고급화에 대한 기업 의식의 향상을 가져온 긍정적인 역할도 했다.


국민차 ‘티코‘


1991년 국내 최초로 800cc 경차가 탄생했다. 대우조선이 일본 스즈끼사와 기술제휴를 맺고 550cc 알토(ALTO)를 기본으로 디자인한 경차 티코였다. “기다렸던 국민차 티코”, “작은 차, 큰 기쁨”이라는 광고 카피처럼 티코는 온 국민 누구나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국민차에 대한 요구가 결실을 맺은 것처럼 보였다. 원래 800cc~1,000cc의 저렴한 국민차에 대한 요구는 70년대 후반부터 지속적으로 거론되어 왔었지만, 차가 없어서 팔지 못할 만큼 호황인 국내 시장에서 이 계획은 뒷전에 밀렸었다. 게다가 88년부터는 엑셀, 르망, 프라이드로 마이카에 대한 욕구를 채운 사람들이 중형차로 옮겨가면서 국민차 개발은 아예 후퇴해 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차의 기치를 걸고 티코가 탄생한 것이었다. 하지만, 대중화는 엑셀과 같은 소형차 주도로 이뤄지고 있었으며, 소형의 국민차는 다시 중형으로 옮겨가는 시점에 있었다. 그리고 외제차에 비해 국산차가 튼튼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퍼져있던 상황에서 티코가 출시되면서 사람들은 티코의 작은 차체와 그 안정성을 불안하게 여겼다. 이처럼 큰 차에 대한 욕망이 팽배했던 상황에서 출시된 티코를 두고 대중들 사이에서는 재미있는 유머가 유행했다.


“신호등에서 티코가 다시 출발하려는데 꼼짝도 하지 않아서 보니 이유는 바퀴가 껌에 붙었기 때문이었다.”

“고속도로에서 티코가 그랜저를 앞질러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이유는 바람에 날려갔기 때문이었다.”

“티코가 진창에 빠졌는데 모기란 놈이 나타나서 “Who are you?" 하기에 티코가 “전 자동차예요”라고 했더니 모기가 비웃으며 “네가 자동차면 나는 독수리다, 짜샤!”라고 했다.”

“네모반듯한 외관은 흰색은‘각설탕’빨간색은 ‘깍뚜기’”

“기름 냄새만 맡아도 가는 꼬마 자동차’라는 애칭”



김수환 추기경을 소재로 ‘티코를 타는 추기경님을 놀라운 모습으로 그려 놓은' 광고도 당시 경차에 대한 태도의 일면을 보여 주었다.



자동차 산업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등장한 경차 티코는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불러왔고, 티코 유머는 이를 반증했다. 이 유머는 자동차를 과시적인 자기 표시의 대상으로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동차를 소유자의 인격과 사회적인 위치와 동일시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었으며, 특히 <추기경님 이야기> 는 ‘차격은 곧 인격’으로 대비되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처럼 80년대 중후반부터 90년대로 넘어가며 자동차의 대중화가 이루어지던 시대에 자동차는 성공과 인격의 지표로 통용되었다. 티코 유머는 차량의 크기에 집착하는 풍조가 만연한 당시의 사회상을 재치 있게 반영하는 것이었으며, 반대로 중대형차에 집착하는 풍조에 자각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 참고문헌

강준만/전상민,『광고, 욕망의 연금술』, 인물과 사상사, 2007
한국자동차공업협회 「한국자동차산업50년사」, 2005
현택수,「자동차 문화」,『일상속의 한국 문화』, 나남출판, 1998
「교통신문」,1987/2/16
「이코노미스트」, 2002/09/03
「CAR LIFE」, 1987/9, 1994/9, 1994/10, 19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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