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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시대의 자동차 산업과 디자인

2012-04-19


1980년대 중반부터 세계는 개방화, 세계화의 시대적 흐름 속에 놓였다. 중국과 러시아는 서구와의 이데올로기 경쟁에서 벗어나 개혁과 개방정책을 실시하며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했고, 유럽은 EU로 통합하면서 국경의 벽을 헐고 거대한 경제 공통체로 다시 태어났다. 세계 경제가 WTO의 새로운 무역질서로 재편되면서 사람과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워지고, 기업은 세계 어디든 가리지 않고 들어가 공장을 세우고 상품을 팔게 되었다.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하는 무한 경쟁의 시대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총성 없는 전쟁의 시대’로 표현되는 경제 전쟁의 흐름 속에서 자동차 산업도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글 | 이옥분 디자인학 박사
에디터 | 길영화(yhkil@jungle.co.kr)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미국, 독일, 일본이 서로 분배하고 있던 자동차 산업은 80년대 말에 이르러 확연하게 달라졌다. 이러한 변화는 고급 브랜드의 역사와 전통이 없는 일본이 높은 품질을 바탕으로 프리미엄 브랜드를 출시하면서 촉발되었다. 일본은 소형 대중차 중심 체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제품 컨셉과 스타일 전략으로 셀시오(도요타, 해외 브랜드명은 ‘렉서스’)와 인피니티(닛산)를 개발하여 그 동안 독일 기업의 독무대였던 고급차 분야에 진입했다. 89년 처음으로 미국시장에 들어간 일본의 고급차들이 벤츠와 BMW, 캐딜락을 누르고 수위에 오르면서, 위기감을 느낀 벤츠는 오히려 소형차 A클래스(97년)와 2인승 초콤팩트카 스마트(98년)를 생산하여 대중차 분야로 진출했다. 전통적인 고급차 기업에서 소형차까지 생산하는 풀라인 생산업체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었다. 자동차시장은 일본의 강세를 계기로 고급차와 대중차로 양분된 기존 구도에서 벗어나 서로의 시장에 파고드는 경쟁이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자동차업체들은 합병과 제휴를 통해 풀라인 생산체제로 빠르게 전환하며 시장 경쟁에 대응했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서로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라인업을 갖추는 전략이었다. 이러한 합병의 기운은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전통적인 자동차로 유명한 영국 업체들을 흡수하면서 시작되었다. 94년 BMW는 로버를, 98년에는 폴크스바겐이 롤스로이스를 인수했고, 이후 벤츠는 크라이슬러와 합병하고, 르노와 닛산이 제휴했다. 전 세계에 30여개나 되던 주요 자동차업체들은 몇 개 업체로 통합하여 규모의 거대화로 생산단가를 내리며, 연구개발비의 공동 투자로 비용 부담을 줄여 경쟁력을 강화했다.

이러한 자동차 산업의 변동은 새로운 소비 태도에 대처하는 전략적 대응이었다. 소비자 시장이 확장되고 빠른 유행과 취향을 반영하는 소비 태도가 나타나면서 기업은 비용을 높이지 않으면서 소비자의 요구에 훨씬 더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의 개발이 필요했다. 이에 디자인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스타일과 질적 측면에서 차별화된 제품을 신속하게 생산하는 시대로 이동했다. 포스트포디즘으로 불리는 이러한 변화는 기능적 미학에 따른 표준화된 제품을 안정적으로 생산하여 규모의 경제를 성취하는데 초점을 둔 포디즘과는 전적으로 다른 시대로의 전환이었다. 생산설비와 체계, 인적 조직의 전반에 걸친 재조직이 시도되었고, 생산라인은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빠르고 저렴하게 처리할 수 있는 로봇 시스템과 신기술이 결합한 자동화 흐름으로 교체되었다. 신속하고 상호연관적인 자동화 흐름과 전문성에 따라 수평적으로 조직된 의사결정구조 속에서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는 유연성이 증가했다. 이러한 생산 방식은 ‘JIT(Just in time) 경영’이라 불리며 다품종 소량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유연한 시스템으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플랫폼(platform)의 통합과’ ‘모듈(module)방식의 부품지원 시스템’은 생산 현장의 유연성을 증가시키는 방안이었다. 플랫폼이란 신제품개발의 핵심요소로 스타일링의 영향을 받지 않는 구동, 차축, 연료체계와 같은 차의 기본을 이루는 구조를 말한다. 플랫폼 통합은 이러한 중요한 기본 구조물을 동급의 여러 모델에 공동으로 사용하여 플랫폼 개발에 따른 비용과 일정을 절약하는 것이었다. 플랫폼의 통합과 함께 주요 부품의 모듈화도 유연생산시스템으로 넓게 확산되었다. 모듈이란 개인용 컴퓨터의 부품처럼 서로 호환할 수 있는 표준화된 부품 단위로, 자동차 업계에서 모듈생산은 부품 업체가 완성차 업체와 지리적으로 근접한 장소에서 부품을 중간 조립하여 모듈의 형태로 지원하는 공급 시스템을 말한다. 모듈생산은 완성차업체가 수요 변화에 맞춰 신속하게 다양한 종류의 부품을 지원받아 제품을 생산하면서 부품의 개발비용과 일정의 단축, 조립의 효율성과 인건비 등의 여러 면에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편이었다.

디자인은 세계적인 자동차산업계의 변동에 맞추어 동일한 차대에서 다양한 차종을 소량 생산하기 위한 비용 절감의 측면에서 그리고 라인업을 정비하기 위한 전략에서 더욱 강조되었다. 플랫폼과 엔진 같은 기본적인 차량의 부품 공유로 인해 비용과 노력이 최소화되면서 자동차의 전체적인 형태와 크기가 유사해졌고, 이러한 이유로 차량들을 효과적으로 차별화하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었다. 외관 모양이나 기능을 차별화하여 다양한 차종으로 분리할 필요에서 디자인이 부각되었고, 이러한 노력은 기술적으로 점점 동일해지는 현상을 스타일로 달라 보이게 하는 전략이 되었다.

한편 상표만 다르고 자동차 자체에는 차이가 없는 차량을 생산하는 것은 회사의 이미지를 떨어트리는 것이었다. 자동차회사들은 디자인과 마케팅을 이용하여 각 브랜드의 고유한 이미지를 형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였고, 여기에는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반영되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캐딜락은 크고 웅장하며, 스웨덴의 볼보는 안전한, 일본의 도요타는 간결하고 아담한 이미지로 디자인의 고유한 특징이 있었다. 그러나 세계적인 네트워크 속에서 자동차가 생산되면서 지역과 디자인의 관계가 무의미해졌고, 이에 따라 새로운 고유성을 모색할 필요에 직면하게 되었다. 2000년을 전후하여 BMW, NISSAN 등이 적극적으로 글로벌 브랜드 전략의 수립에 나서면서, 브랜드의 고유성은 역사와 전통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 아닌 차별화를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계획되기 시작했다.

전략적으로 개발한 스타일은 브랜드를 대변하는 미적 정체성을 구성했다. 기업은 새로운 조형 개념과 형태를 실험하고 컨셉트카를 제작하여 시장의 반응을 살폈다. 또한 전체 생산 차종을 새로 개발한 스타일로 동일하게 처리했다. 차량 전면부의 라디에이터 그릴, 전조등, 범퍼의 스타일을 유사하게 처리하는 전통적인 방법에서 더 나아가 전체적인 차체의 조형감, 즉 균형감과 비례, 면과 선 처리에서 독특함을 강조한 새로운 스타일의 패밀리룩을 강조했다. 이러한 조형 요소들은 브랜드의 시각적이며 감성적 이미지를 형성하였다. 이러한 흐름의 대표적인 사례는 2004년 발표된 BMW의 ‘불꽃 조형’이었다. 불꽃조형은 흔들리는 불꽃처럼 차체면의 굴곡을 강조한 입체감있는 스타일을 말하였다. 전통적으로 유지해 온 기존의 스타일에서 벗어난 BMW의 스타일은 불꽃처럼 역동적이고 과감하며 혁신적인 느낌이었다. 새로운 스타일은 독특한 이미지를 형성하며 경쟁 브랜드와 구별짓는 역할을 했다. 이처럼 세계화 시대의 디자인은 다품종 소량생산이 가져오는 개발비용과 일정의 문제를 해결하고, 브랜드의 이미지를 조직하고 확산하는 상품개발의 핵심 부문으로 자리했다.

한국의 자동차산업계는 90년대 세계적인 생산 시스템의 변화를 빠르게 도입했다.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에 입각한 중저가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우위로 하는 성장 패턴에서 벗어나기 위한 체제 전환이었다. 91년에 준공한 현대의 울산 2공장의 차체라인은 기존의 자동화와는 구분되는 유연자동화로 추진된 첫 사례였다. 2공장은 통신네트워크를 통한 정보제어시스템 기반을 구축하고 소량 생산되는 고급차와 스포츠카를 같은 라인에서 생산하여 투자비용을 최소화했다. 유연자동화를 통해 대형, 준대형, 중형, 준중형, 소형 등 전 차종에 걸친 풀라인업을 구축하였고, 이와 같은 생산 방식은 선두업체인 현대자동차를 필두로 일정한 시차를 두고 다른 업체로 확산되었다.

현대자동차의 본격적인 유연 생산방식의 도입은 기아와의 통합을 계기로 이루어졌다. 20여개에 달했던 두 회사의 플랫폼수를 6-7개로 줄여 규모의 경제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었다. 현대차의 소나타와 기아차의 로체, 아반테와 세라토, 투산과 KM스포티지는 통합 이후 처음으로 같은 플랫폼을 공용하여 개발한 차량이었다. 현대와 기아는 플랫폼을 통합하여 내부 구조의 공동화를 이루면서 외관에서는 스타일의 차별화를 위한 브랜드 전략을 새로 마련했다. 합병 이후 지속적으로 거론되어 오던 양사의 차별화에 대한 문제를 결론짓고, 각 사의 주요 생산 차종, 목표 고객, 스타일의 핵심 이미지를 설정하여 전략적으로 두 회사 간에 명확한 차이를 두는 작업이었다. 현대는 기아에 비해 높은 인지도와 품질 수준을 바탕으로 과감하고 혁신적으로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태도를 강조하며 이에 따른 고급화 전략을 마련했고, 기아는 봉고 신화를 만든 상용차 메이커의 이미지를 계승하여 젊고 스포티하며 신뢰감을 주는 이미지로 방향을 설정했다. 이러한 전략에서 현대는 고급차 브랜드인 제네시스를 생산했고, 기아는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하여 그를 통해 독일 자동차의 견고한 이미지를 도입했다.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외환위기를 계기로 고도성장을 주도해온 대량생산방식에서 벗어나 산업구조조정과 생산합리화의 커다란 변화를 겪었고, 이러한 변화 속에서 디자인 부문의 기능과 영역이 확대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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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rt Moser, 김태희/추금환역,『자동차의 역사-시간과 공간을 바꿔놓은 120년의 이동혁명』, 뿌리와이파리, 2007
Steven Miles, 박형신외,『현실세계와 사회이론』, 일신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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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선진메이커의 디자인 전략」, 2004.3
중앙일보, "기아차 디자인 아우디 닮았다고 하는데...”, 201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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