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17
에코라이프는 이제 우리 삶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1980년대 이후 커지기 시작한 환경에 대한 관심은 지구의 자원을 아끼고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애쓰는 사회 풍조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2000년대에 들어서 이러한 ‘환경 운동’과 함께 ‘디자인’이 우리 생활을 바꿔 나가는 중요 키워드가 됨에 따라 환경에 대한 고민과 디자인 개념이 결합된 ‘에코 디자인’이 주목 받고 있다. 환경을 생각하면서도 심미적인 기능을 고려하는 에코 디자인은 시대의 큰 물결이 되었으며 기업들은 앞다투어 친환경적인 제품들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에디터 | 차고운 객원기자(caligoun@gmail.com)
어느 집에나 ‘에코백’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몇 개쯤은 있을 것이다. 마트에 갈 때 에코백, 흔히 장바구니라 불리는 것을 가져가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심지어 마트 계산대 옆에서 몇 가지 종류의 에코백을 판매하기도 한다. 플라스틱백 사용을 줄여 환경을 보존하자는 생각에서 시작된 에코백 사용이 이제는 시대의 트렌드가 되었다.
그런데 간혹 에코백의 경계가 애매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환경에 유해한 잉크로 인쇄한 시장 가방이 과연 에코백인가? 플라스틱백의 대용으로 쓰여 자원을 보존하니 에코백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환경 친화적인 잉크 사용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또한 최근 친환경 제품에서 자주 사용되는 베지터블 가죽을 살펴 보자. 분명 그 가공 과정에서 가죽을 식물성 오일로 가공하여 환경을 지키는데 도움을 주지만 과연 동물의 가죽을 친환경이라고 할 수 있는가? 동물 애호가의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사항이다.
에코백은 에코 디자인의 가장 대표적인 상품이다. 2007년 영국의 디자이너 애냐 힌드마치(Anya Hindmarch)가 “I'm not a plastic bag” 이라는 구호와 함께 처음 사용한 개념이지만 이제 누구나 친숙하게 사용하는 아이템이 되었다. 그렇다면 2012년, 과연 어떤 가방을 에코백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형태, 재료, 과정 등에서 환경 친화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는 상품들이 에코 상품이라 정의된다. 간혹 형태에 있어서도 만드는 재료와 과정에 있어서도 오롯이 환경 친화적인 상품들도 존재할 수 있지만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은 그저 한 가지 이상의 조건을 갖춘 채 에코백이라 불려지며 이 최소한의 조건으로 소비자들을 유린하기도 한다. 에코백의 조건에 따라 그 종류를 살펴 보고 정확한 에코백의 의미를 되새겨 보도록 하자.
첫 번째 군은 형태에 의해 에코백이라고 불리는 종류이다. 보통 면이나 마, 폴리에스테르로 만들어지며 직사각형 형태에 손잡이가 달린 형태, 또는 아주 얇아서 가볍에 접을 수 있는 형태로 되어 있다. 흔하게 시장에 들고 가는 장바구니 형태의 에코백들이 이 그룹에 속한다. 형태가 단순하여 만드는 과정에 많은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가볍고 가격이 저렴하여 대부분의 국민들이 하나 이상 가지고 있음직할 에코백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장바구니 형태의 에코백들의 실제 면모는 어떠한가? 주로 사용되는 재료를 살펴 보자. 면이나 마는 식물 성분으로 환경 친화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폴리에스테르는 보통 친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뿐만 아니라 에코백에 쉽사리 프린트 되는 잉크 역시 환경에 유해한 경우가 많다. 보통 나염이라고 불리는 프린트 방식이 환경에 특히 유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 따라 요즘은 환경에 조금은 보탬이 되는 디지털 프린팅을 선호하는 추세로 바뀌어 가고 있다.
다음 그룹은 재료에 의해 에코백이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재료는 폐기물이다. 버려지는 현수막, 신문지, 과자 봉지 등을 재활용하여 가방을 만드는 경우들이 모두 포함된다. 일단 폐기물을 수거하여 재활용하는 자체에서 많은 돈과 수고가 필요하며 겉으로 보았을 때 가장 환경친화적으로 보이는 상품들이다. 그 외에 오가닉 원단과 천연 염색한 직물 등으로 만든 가방도 이 그룹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재활용 가방 역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먼저 그 소재가 온전히 재활용된 폐기물인지 완제품만 보고는 판단이 어렵다. 산업 폐기물이 제품 생산을 위하여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며 막상 폐기물을 수집한다 해도 세척하는 데에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 그래서 일부 회사에서는 원래 있는 깨끗한 재료를 구입하여 알게 모르게 재활용한 것처럼 속이기도 한다. 또한 무자비하게 재생산된 폐기물들이 결국 2차 쓰레기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버려진 현수막으로 만들어진 에코백을 공짜로 얻었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결국 이용하지 않고 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만드는 과정에 의하여 에코백이라고 불리는 그룹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공정무역에 의해 탄생하는 가방이다. 공정 무역이란 국가 간 동등한 위치에서 이루어지는 무역을 말하며 가난한 제3세계 생산자가 만든 환경친화적 상품을 직거래를 통하여 공정한 가격으로 구입해 가난 극복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다. 주로 커피 등 농산물 거래에 많이 활용되던 공정 무역이 최근에는 가방과 액세서리 거래에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공정 무역 사례에서도 많은 문제들이 보고되고 있다. 실제로 제 3세계 사람들이 약간의 수입을 얻는 대신 공정 무역의 희생양이 되어 노동력 착취를 당하기도 하고 그 지역의 열대 우림이 파괴되어 간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또한 노동력의 대가가 높게 책정되어 상품 가격이 올라감에 따라 상품이 재고로 남는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에코백’ 이라는 이름을 가지기 위해서는 사실 고려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형태와 재료, 과정을 모두 고려한 에코백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에코 디자인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기업들이 너도나도 친환경 제품을 내놓고 있지만 그 제품들의 면모를 하나하나 따져 봤을 때 실제 친환경적인 부분은 극히 일부인 경우도 많다.
분명 쉽지 않겠지만 똑똑한 소비자라면 환경 친화적인, 진실된 상품을 알아보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하겠다. 그리고 진정한 친환경 상품을 인정하고 사랑해 주어야 하겠다. 그렇게 스마트한 소비자들의 평가를 바탕으로 기업들의 에코 프로덕트가 나날이 진화해 갈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에코백의 양적인 성장을 넘어서 질적인 향상을 간절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