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8-19
전쟁 후 일본이 혼돈과 질타의 시기에도 꿋꿋이 산업부흥을 이뤄낸 중심에는 기술력과 정신력, 그리고 디자인이 있었다. 일본 산업 디자인의 대표적 인물 에쿠안 겐지의 산업디자인 스토리를 통해 넘쳐나는 물자시대에 중요한 디자인의 요소는 무엇이었는지 그 초심을 되짚어 본다.
글, 사진 l Jun (de_sugnq@naver.com)
전쟁이 끝나고 복구에 온 힘을 쏟으며, 삶의 터전을 닦기에 바빴던 시대. 물자부족으로 인해 고된 나날이 계속되고 미국의 문화에 대한 동경과 함께 4륜구동 지프차나 초콜릿에 마냥 손을 내밀던 그때의 모습. 이는 익히 들었던 전쟁 그 후의 지옥이기보다 삶을 유지하는데 기본적으로 필요했던 물자를 향한 동경과 희망을 담고 있었다.
당시에는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정착되거나 그 가치에 대한 인식조차 없던 시대였지만, 어떤 물건을 만들어내는데 대한 동경이 있었고, 이를 흉내내기보다는 기존 자신들의 민족이 가지고 있는 미의식과 문화에 기반해 ‘없이 사는 시대’에도 더 나은 물건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꿈틀대고 있었다. 이는 목적과 아름다움을 염두한 산업디자인의 첫 걸음이었다.
많은 상업디자인의 심볼로 여겨지는 롱 셀러 상품, 킷코만의 간장병이1961년 그렇게 탄생했다. 당시 크게 흥행한 이 간장병은 ‘간장=킨코만’이라는 브랜드 마케팅의 개념도 만들었다. 디자인이 직접적으로 장기적인 이윤창출로 이어진 것이다. 이것은 후에 비지니스 세계에 ‘디자인’이라는 요소가 중요시 되는 계기가 됐다.
킷코만의 간장병 디자인으로 유명한 GK그룹은 에쿠안 겐지(榮久庵 憲司 1929년9월11일~)를 필두로 한 디자인 그룹으로 그가 동경예술대학 재학시절 아르바이트의 일환으로 친구들과 결성한 것이 그 시초다. 비지니스 모델로 적합한 ‘기능성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디자인에 주력하던 이들은 폭넓은 디자인에 주력했다.
야마하(YAMAHA)의 Vmax부터 산요(SANYO)의 밥솥에 이르기까지 생활 밀접형 디자인은 물론이고 건축물에도 그 영향을 미쳤다. 근래에는 한국의 화장품 브랜드 헤라(HERA)의 패키지 디자인에서도 그들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GK디자인이 중요시 하는 부분은 일본의 상업디자인의 특성이기도 한 기능성을 중시하되, 인간의 선을 떠올리게 하는 심플하고 부드러운 형태다.
과거 그들의 디자인이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생각하는 디자인의 근본은 인간공학이나 과학적 근거보다 그들이 기초에 둔 정신적 근원이 불교였다는 것이다. 불교가 인간에게 주는 평안함과 안정감, 온화함 등이 주는 부드러운 이미지는 디자인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좋은 디자인은 기능이 중요시 되어야 한다는 점은 상업디자인뿐만 아니라 어떤 디자인에도 모두 부합되는 중요 요소다. 앞서 언급된 에쿠안 켄지나 의자와 주전자 디자인으로 익숙한 야나기 소리가 그 대표적인 예로, 초기 디자인에서 큰 변화 없이 현재까지도 원활하게 제품이 판매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의 디자인 회사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듣게 되는 말이 “미대에 다니며 잔뜩 들어간 어깨의 힘과 허세를 털어내라”는 것이다. 그것은 촌스럽고 볼품 사나운 것을 만들라는 의미가 아니다. 무엇을 위한 디자인인지 그 목적을 먼저 분명히 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 그러나 맛이 좋지 못한 떡은 한 입에 손길이 끊기기 마련이다. 올드하지 않고 변치않는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 기초가 사용자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기능성을 우선으로 한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모든 요소에 군더더기가 없이 아름다워 굳이 변화가 없는 디자인, 이는 상업디자인의 가장 이상적인 완성이라 할 수 있다.
* 세타가야 미술관에서 실물로 제품을 접할 수 있으며(http://www.gk-design.co.jp), 관련서적으로 ‘GK의 세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