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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2008-08-19

노을도 없이 땅거미가 지는 도시의 밤은 아름답다. 태양 대신 거리를 밝히는 네온사인, 가로등, 유독 밝게 느껴지는 불빛들. 어지러운 불빛들이 서로 뽐내는 도시의 밤은 어른 흉내를 내고 싶어 엄마의 화장대에서 찾은 립스틱을 엉터리로 바르고 웃는 계집애 같다.

에디터 | 정윤희(yhjung@jungle.co.kr)

사각형 사무실을 나서면 땅거미가 보인다. 약속이 있어도 약속이 없어도 권태로운 여름의 저녁 하늘은 파랗게 빛나고, 하나 둘 빛을 켜는 글자들이 낮의 등을 떠민다.

혼자 사먹을까, 텅 빈 집에서 컵라면을 먹을까, 누구든 불러내 무엇이든 먹을까. 그런데, 나와 줄 사람이나 있을까? 열려 있어도 열려 있는 게 아니고, 들어오라는 데는 많아도 들어갈 수가 없다. 마침 도넛 가게의 네온 사인이 눈에 들어온다. 네온 사인이 켜져 있는 동안만 받을 수 있는 공짜 도넛을 놓칠 수야 없지.

전화를 받고 흔쾌히 나와 준 친구녀석과 밥 대신 술을 먹기로 한다. 여름 밤엔, 퇴근 후엔, 치킨에 맥주가 제격이라는데 나도 친구도 동의한다.

배는 부르고 집에 가기는 싫은데 남자 둘이 할 만한 게 없다. 노래방도, DVD방도 30대 남자 둘이 가고 싶은 곳은 아니다.

역시 술이다. 사람이 많거나 적거나, 친하거나 친하지 않거나, 피곤하거나 피곤하지 않거나, 즐겁거나 우울하거나 술 한 잔이면 금세 즐거워진다. 물론 다음 날이 피곤하긴 하지만 마실 때만큼은 다 좋다. 너도 좋고 나도 좋고, 다 좋다.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가는 길. 만나면 좋은데 헤어지고 나면 후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이브 바에서 틀어놓은 음악이 자꾸 파고든다. 혼자서 한 잔 더 할까?

가벼운 주머니 덕분에 얌전히 집으로 가기로 한다. 아무일 없이 그냥저냥 지나가는 것 같아도 치열한 경쟁, 경쟁, 경쟁… 사막을 건너는 낙타만큼 힘들까. 정글의 왕 사자라고 해도 힘들까. 되는 대로, 떠오르는 대로 노래를 흥얼거린다. 아침 8시까지 영업합니다. 아침 8시에 퇴근하는 기분은 어떨까. 그래도 아침 8시에 퇴근하는 것보다 출근하는 쪽이 조금은 낫지 않을까. 지친 어깨에 애써 달아놓은 날개는 힘 없이 쳐지기만 한다.

멀리 집이 보인다. 어둠 속에서 달처럼 두둥실 떠오른 네온사인 덕분에 길 잃는 일은 없다. 어느새 내일이 코앞이다. 어서 가서 자야지. 반짝반짝 작은 집에서, 텅 비어있어도 달콤한 나의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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