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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mim 김의래

2011-05-17


디자이너가 스스로 선택한 글꼴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은, 요리사가 재료에 대한 이해 없이 무턱대고 요리부터 시작하려는 것과 같다. 요리에서 재료의 선택이 음식 맛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듯 그래픽디자인에서 글꼴의 선택은 작업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에디터 | 지콜론 이상현


서체 사용에 관한 스튜디오 mim의 원칙은 무엇인가
암묵적인 원칙이 존재한다. 작업에 사용하는 글꼴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디자이너가 스스로 선택한 글꼴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은, 요리사가 재료에 대한 이해 없이 무턱대고 요리부터 시작하려는 것과 같다. 요리에서 재료의 선택이 음식 맛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듯 그래픽디자인에서 글꼴의 선택은 작업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글꼴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겉보기에 아무리 좋은 글꼴이라도 최대한 사용을 자제하는 편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글꼴을 사용하든 글꼴에 대한 충분한 이해만 있다면 사용에 큰 제한을 두고 있지는 않다. 보통 작업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각각 용도에 맞는 글꼴들을 선택하게 되는데 이 과정부터 디자이너들끼리 글꼴의 선택 이유를 묻고 답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디자이너는 본인이 선택한 글꼴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해를 하고 있는지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검증의 기회를 갖게 된다.


현재 맡고 있는 <1/n> 잡지에는 무슨 서체가 사용되고 있는가
<1/n>의 본문은 명조와 고딕 계열에서 선택하고, 제목용 글꼴은 최근에 출시된 나눔명조와 고딕 계열의 글꼴을 주로 사용한다. 본문용 글꼴을 명조와 고딕계열에 한정 짓는 것은 잡지의 특성상 텍스트가 많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익숙한 글꼴을 선택하여 가독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본문용 고딕은 윤고딕500 시리즈를 주로 사용한다. 이는 글꼴의 형태가 글줄의 형태를 더욱 명확하게 규정지어 레이아웃 전체가 로만 글꼴로 조판했을 때처럼 정렬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레이아웃을 돋보이게 하며 전체적인 레이아웃의 개성을 독자에게 더욱 명확히 전달한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은 곧 단점으로도 작용하는데 글줄의 명확성에 중점을 두다 보니 각각의 글꼴을 나눠 보거나 큰 포인트로 작업하다 보면 간혹 자소의 기형적인 꼴들이 눈에 띄는 것이다. <1/n>의 제목용 글꼴에는 일반적인 꼴의 명조보다 현재 네이버에서 무료로 배포되고 있는 나눔명조를 즐겨 사용하는데, 이 서체가 일반적인 명조의 건조하고 지루한 느낌을 보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글꼴의 성격이 <1/n> 잡지 성격과 잘 맞닿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2호부터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1/n> 잡지가 디자인에 대한 어떤 규정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나눔명조의 개성을 전체의 구성에 최대한 녹여 내려고 노력한다. 나눔명조는 본문용으로 사용하여도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 있어 최근 스튜디오의 여러 작업에서도 즐겨 사용하고 있다.


새로운 서체 사용 시 부딪히는 걸림돌은 무엇이며,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우선 얼마나 검증된 글꼴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꼴의 완성도와 기술적 오류, 그리고 인쇄 상태 등에 문제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글꼴에 대한 디자이너의 이해 정도이다. 충분한 인쇄 테스트와 적응 시간을 갖지 않고 사용된 글꼴은 최종 결과물에서도 그 구성의 부실함이 드러난다. 타이포그래피의 ‘단단함’이라고 할까. 그런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새롭게 출시된 글꼴의 경우에는 인쇄 상태를 기존 작업들에서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사전에 충분히 테스트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다. 서체를 크기 별로 프린트 해보고 자간의 상태나 크기별로 갖는 꼴의 문제점, 그리고 디자이너가 장점을 분석하여 글꼴을 최대한 이해하도록 한다. 결국 글꼴의 의미적 완성은 타이포그래퍼의 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아무리 글꼴 디자이너들이 재료를 잘 만들어 주어도 요리사가 형편 없다면 재료를 너무 익히거나 덜 익혀 그 재료의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


제작된 서체 외에 글자를 직접 만들 때 유의하는 점은
서체를 직접 제작하는 경우는 로만 글꼴에만 해당하는데 이는 두 가지 경우다. 하나는 글꼴의 제작이 작업이 목표하는 방향에 좀 더 부합하는 합의점을 찾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미리 작업해 둔 서체가 작업의 목적에 부합하는 경우. 전자와 같이 작업에 더 어울리는 글꼴의 형태가 떠오르는 경우는 우선 작업 전체의 시간을 고려한다. 직접 글꼴을 제작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다반사이기 때문에 작업하는 글꼴을 처음부터 다시 손 봐야 하는 경우들이 생기곤 한다. 이럴 때는 의도치 않게 실제 본 작업 시간보다 글꼴을 제작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에 늘 계획을 철저히 세워 시간을 관리해야 한다. 특히 글꼴 디자인은 감각에만 의존해서 작업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평소에도 늘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용도에 따른 서체 사용의 차이점과 이를 혼용하는 노하우가 있다면
각각의 용도에 따른 글꼴의 선택은 각 글꼴 크기별 인쇄 상태에 따라서 결정한다. 각각의 글꼴들은 최고의 완성도를 보여주도록 의도된 크기가 있지만 가끔은 제목용 글꼴도 본문 크기로 사용하였을 때 재미있는 결과를 얻는 경우가 있어 직접 테스트 후 용도를 결정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앞서 말한 것처럼 제목용 글꼴에 나눔명조를, 그리고 본문용 글꼴에 윤명조 400과 윤고딕 500을 주로 사용한다. 특히 윤고딕 500과 나눔명조의 혼용은 두 글꼴의 개성이 두드러져 조화를 이루기 쉽지 않은 면이 있었지만 오히려 이런 부분이 조판할 때 재미를 느끼게 한다. 이는 쉽게 검증된 글꼴들을 혼용하여 사용할 때보다 형태적으로 이질감 있는 글꼴들의 궁합을 만들어 낼 때 느끼는 쾌감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어렵게 얻어진 궁합일수록 결과물은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글꼴간의 혼용은 레이아웃과 함께 작업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글꼴의 선택에 신중을 기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글꼴을 선택하는 기준에 있어 관습 및 습관은 큰 적이기에 익숙한 것도 낯설게 보는 시선으로 글꼴을 평가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클라이언트와의 조율 과정에서 서체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 어떻게 대처하나
클라이언트와의 의견 조율 과정에서 가장 많은 이의 제기를 받는 부분이 제목용 글꼴이다. 특히 작업과정에서 제목용 글꼴 선택은 많은 부분에서 결과물의 분위기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제목용 글꼴의 선택은 마찬가지로 클라이언트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클라이언트가 거부감을 표시하거나 그럴 것 같은 경우 일반적으로 익숙한 레이아웃의 글꼴 조합과 처음에 의도된 글꼴 조합 모두를 보여주고 선택하게 한다. 이는 클라이언트에게 디자이너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할 뿐만 아니라 충분히 대화할 수 있는 시간도 만들어 우리의 의견을 관철시킬 수 있는 확률을 높인다. 클라이언트가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일 경우 최소한의 합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보수적인 클라이언트를 만났을 때 새롭게 제안하는 것을 포기하고 요구하는 대로 따라가려는 디자이너들이 가끔 있다. 분명 구제불능의 클라이언트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클라이언트의 뒤를 따라가기만 하면 작업 결과물에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 모두가 실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인내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 최소한의 합의만이라도 이끌어낸다면 디자이너 스스로는 불만족스럽겠지만 적어도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킬 수 있는 확률은 있게 된다.


역사 상 가장 훌륭한 서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훌륭한 글꼴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어떤 글꼴의 형태는 선행하는 글꼴들의 형태적 노력과 실험이라는 피라미드에 돌 하나만 얹은 격이니까. 다만 최근에 가장 주의 깊게 보는 로만 글꼴 디자이너는 독일의 ‘안드레아 티네스(Andrea Tinnes)’이다. 글꼴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그녀의 글꼴들 또한 형태적으로 굉장히 우수하다. 선행하는 글꼴들의 형태에서 큰 진화를 이끌어 낼 줄 아는 디자이너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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