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5-14
소년, 외계인 만나다는 디자인과 만화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키치적으로 그려낸 실험적 아트북이다.
외계인 우유도둑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소년의 황당무계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 글. 정진열 / deoglory@empal.com
→ 취재. 김미진 기자 /nowhere21@yoondesign.co.kr
우리 나라에 아트북이라는 개념이 들어온지는 꽤 되었지만 아직도 아트북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작업을 찾아보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워낙 시장이 좁다 실제적인 아트북의 컨셉보다는 실용성을 겸비한 다이어리나 스테이셔너리 쪽으로 디자인적인 시도가 많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컨텐츠를 만들고 그것을 담아내는 디자인 아트북은 접하기 힘들다. 또한 사회에서는 여전히 마케팅적인 서비스로서 장식적인 역할로만 디자인을 인식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실제로 디자인상품에 있어서 컨텐츠는 아직도 디자이너의 몫이 아니다.
우리나라 디자인 아트북의 경우에는 많은 부분이 '리스트 북'의 형태를 띄고 있다. 디자인적인 발상의 모음이라는 측면이 강조된 이런 스타일의 작업들은 독자들에게 무겁지 않게 그리고 쉽게 다가갈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아트북 프로젝트는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컨텐츠를 디자인 내부에서 만들어내야 한다는 디자인의 역할과 자리매김에 대한 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소년, 외계인 만나다’의 작자들은 생산의 주체로서 디자이너의 가능성을 모색해보고 있다.
자기의 목소리를 가질 수 있는 디자이너, 그것이 꿈일까?
이번에 두 번째 나오게 된 '소년, 외계인을 만나다.'는 또한 시나리오에서부터 촬영, 소품, 디자인, 편집에 이르기까지 컨텐츠 전부를 디자이너가 만들었다는 데 의의를 가진다. 특히 이번 작업은 대중적인 접근을 위한 표현방법을 모색했으며 선명한 이야기와 만화적인 상상력을 디자인과 접합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새롭다.
2000년 출판디자인의 과제로 시작했던 이 책의 가장 큰 컨셉은 ‘재미있는 책을 만들자’였다. 재미있는 책이란 무엇인가에 골몰하던 우리는 보는 사람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책은, 우선 만드는 사람책을 기획하고 만들어지는 과정을 스스로 즐겨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즐기며 만든다는 그 과정은 기존의 있는 컨텐츠를 재배열 또는 재편집하는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우리만의 독특한 컨텐츠를 만들기로 했다.
그 컨텐츠를 표현하는 모든 이미지들까지도 스스로가 만들어 내어 책의 전 과정을 놀이로써 즐기기로 했다.
의기투합한 두 명의 작가는 좋아하는 모든 요소들(키치,만화,소년,외계인,달동네와 서울 곳곳의 풍경)을 현실과 만화, 실사와 그래픽 이미지를 넘나들며 아무 제한 없이 표현해 보기로 했다. 주된 표현은 키치지만 그 키치는 기존의 통상적인 의미의 키치가 아닌 한국적인, 우리만의 키치적 표현이길 바랬다.
책 전체가 유기적인 커다란 하나의 스토리에 의해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연관성 있는 흐름으로 완성시키려 했다.
어느날 달동네에 사는 한 소년(일상)이 외계인(상상)을 만나고 그 외계인을 추적한다는 음모이론에 기초한 황당하고 유치한 기본 스토리를 짰고 그 과정의 연결고리로 퍼즐이라는 것을 넣었다.
이 퍼즐이란 요소는 황당무계한 스토리에 미스테리적 재미를 줄 뿐 아니라 가장 적극적으로 독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이다.
독자 스스로가 퍼즐을 풀어가며 주인공 소년이 되어, 외계인과 지구의 비밀에 다가가도록 했다.
달동네,재래시장, 동네이발소, 중국집, 용산전자상가, 동네문방구, 종로의 빌딩 숲, 정육점, 윤락가, 명동 등 일상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거대한 서울이라는 도시를 다양한 형태의 12가지 퍼즐을 풀며 하루 동안의 여행을 한다.
중요한 것은 이 퍼즐이 전혀 어렵지 않으며 때론 이미 풀어놓은 상태의 퍼즐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퍼즐을 다 풀고 밝혀지는 비밀도 무척 썰렁하고 황당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실소를 자아내는 우리들의 가벼운 농담이다.
책의 전 이미지는 최승선, 박현수 두 명이 모두 만들었다. 소년과 외계인의 사진이미지는 서로가 가면을 만들어 서로를 찍으며 만들었고, 인형들 또한 직접 제작했으며, 모든 만화와 일러스트는 두 사람이 각기 파트를 나누어 만들어 내었다. 다 큰 어른 두명이 이상한 옷과 가면을 쓰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서로를 찍어주는 장면 자체가 키치였다.
정사각 판형의 커버는 하드커버이며 가운데 천공으로 구멍이 나있다. 뭔가 독특한 커버를 원했었고 원안은 커버가 종이가 아니라 패턴이 있는 천이었다. 하지만 아무 곳에도 까다로운 작업을 해주는 데가 없어 결국 포기해야 했다. 또한 ‘원을 좋아해서 그렇게 했다’는 작가의 개인적 기호와 더불어 구멍을 통해 소년의 캐릭터를 부각시키고 있다.
소년캐릭터가 갖는 아이덴티티는 한국적인 토박이의 모습이다. 멋지게 꾸며진 서양이나 일본의 캐릭터와 달리 평범한 얼굴, 체육복바지, 운동화는 키치스러우면서 정감이 느껴진다.
자세히 살펴보면 외계인의 가면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
바로 펭귄 인형을 이용한 것! 거꾸로 보면 펭귄 모양임을 알 수 있다.
전체적인 흐름을 고려하여 복잡한 이미지와 단순한 이미지, 실사와 만화, 원색과 흑백, 퍼즐의 페이지수 등을 조절했다. 우리는 이 책이 아주 리드미컬하게 흘러가길 원했다.
보강 작업을 하면서 기존 이미지들의 흐름을 위해 상당수 교체했다.
작은 책이 갖고있는 시각적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기 위해서 하일라이트 부분들은 펼침 페이지가 되게 만들었다. 정사각 판형을 x택한 이유중 하나는 이렇게 펼침면이 되었을때 와이드한 장면을 연출할수 있다는 이유도 있었다.
또한 완전히 펼쳐져도 안 찢어지도록 보통 많이 쓰이는 공제본 방식이 아니라 양장식을 사용해 책이 잘 펴지도록 했다.
이 책은 크게는 퍼즐북이지만 중간중간의 퍼즐과 내용을 연결시켜주는 것은 작은 재미요소들이다.
외계인의 해부도, 외계인 옷입히기, 외계인 눈 뚫기, 문방구 내부 모습, 중간중간 등장하는 단발머리 청년's 등 커다란 퍼즐과 다른 작은 재미를 위한 놀이들이 숨어있다.
출판이 되면서 원본에는 없던 세 파트의 메모지가 중간중간 삽입되었다. 이는 일종의 쉬는 시간으로 스토리 중간에 환기를 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앞쪽의 두개의 메모지 파트는 독자가 스스로 상상의 낙서를 하라는 의미로,
마지막의 하나의 메모지 파트는 책 속의 책 형태로 이 책이 외계인의 책을 표절하며 만들어 졌다는 뒷얘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소년... 외계인을 또 만나다'라는 다음 후속편의 예고페이지가 있다. 또한 외계인은 또 다른 음모를 거론한다. 마치 이어질 내용이 더 있을 듯...
하지만 아직까진 후속편 계획은 없다. 이것 역시 농담이다.
정글 : 이번 만화 아트북의 제작 동기는?
처음 책이 제작된 것은 The D의 김성학 대표가 국민대에서 강의를 맡고 있었던 출판 디자인 수업에서였다. 당시 수업에서 ‘소년 외계인 만나다’가 좋은 평가를 받았고, 이후 책의 내용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왔다. 그렇게 스폰서를 알아보다가 The D를 만났고 소량이지만 책이 출간되어 대중들과 소통하게 되는 계기를 맞이한 것이다.
정글 : 책을 제작하면서 가장 염두하고 있었던 컨셉은 무엇인가?
보통 아트북하면 뭔가 예술적이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무엇보다 재미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소년, 외계인을 만나다’는 가벼운 조소를 즐길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소 황당할 수 있는 만화적 상상력이나 캐릭터, 중간중간 이야기를 끌고 가는 퍼즐은 보다 일반적인 독자들을 상정하고 접근한 장치들이다.
특히 이번의 아트북은 갈수록 그 의미가 증대되어가는 캐릭터의 의미를 만화와 디자인의 양면에서 조율하려고 했다는 점이 돋보이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정글 : 외계인 우유도둑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소년의 이야기라는 기본 스토리는 어떻게 설정한 것인가?
X-file 형식에 거짓말을 섞어서, 일종의 재미있는 백과사전을 만들자는 것이 처음의 기획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내용을 훨씬 체계적이고 풍부하게 끌고 가기 위해 내러티브를 설정했다.
다양한 얘기가 나왔지만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서울은 다양한 문화가 혼재되어 있고 역동적인 도시이지만 그 만큼 모두가 일류이길 갈망하는 3류들의 도시이기도 하다. 때문에 우리는 이 시대의 서울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서민의 현실을 ‘쌈마이스러운’ 모습으로 디자인했다. 우리는 서울의 모습은 ‘키치스러움’이라고 생각했다. 편집에 신경을 써서 제작했지만 결국 그러한 서울의 솔직한 모습을 담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서울에 대한 장난스러운 애정을 황당무계한 SF적 상상력으로 담아낸 것이다.
정글 : 책에 사용된 사진이 독특하다. 제작한 소품을 입고 직접 촬영했다고 들었는데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었나?
다양한 오브제를 이용해서 소년과 외계인의 소품을 제작했다.
초기 소년의 얼굴은 종이죽으로 만들어진 탈이었다. 그러다가 곰팡이가 나서 안타까운 마음에 팡이제로를 뿌리는 일도 있었다. 또 세상에서 가장 촌스러운 소년의 체육복을 사기 위해 동대문에 들렸을 때는 물건을 파는 매장직원마저 이상했는지 웃음을 참지 않았다.
외계인의 경우, 초안은 쫄티에 삼각 팬티였으나 도저히 그런 모습으로 촬영을 할 수가 없어서 바지는 검도복으로 수정했다.
직접 사진을 찍고 연기까지 했기 때문에 둘이서 나오는 장면은 없다.
컨셉이 ‘즐겁게 작업하고 재미있는 책을 만들자’인 만큼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유쾌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다 큰 어른 두 명이 이상한 옷과 가면을 쓰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서로를 찍어주는 장면이 떠오르는데 민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래서 얼렁 사진을 찍고 서로 모르는 척 하는 비책으로 순간을 모면하기도 했다.
정글 : 아쉽게 반영되지 못한 것들이 있다면?
처음 수작업으로 완성한 한 권의 책은 출판용으로 기획한게 아니었기에 많은 제작상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전부 500권을 만들었는데 하드커버 양장에 구멍을 뚫어 일일이 손으로 접는 수작업이 감행되기도 했다. 또한 속지의 접힘 페이지 역시 모두 수작업을 거쳤다.
그냥 재미로 책을 만드는 것과 실제 하나의 책이 나오기까지는 상당히 다르다. 원래의 책만으로는 분량이 부족해서 메모 페이지를 추가하기도 했고 양장본으로 작업하다 보니 페이지가 맞지 않아 수정되기도 했다. 애초 출판을 염두하고 만들었다면 훨씬 많은 시도들을 반영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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