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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시각문화 실험집단, 그들의 새로운 외침

2005-07-26


너무나 분주하게 주어진 일만 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디자인에 대한 생각들을 빼놓고 살아왔다면 모두 여기를 주목해보자. 포스터, 설치, 만화, 영상 등 여러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통해 대중과 호흡해 온 창작 그룹 '진달래'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더 깊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출판한 책이 디자이너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진달래 도큐먼트 01'은 책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진달래 멤버들이 힘을 합쳐 만든 첫 번째 출판서이다. '진달래'는 1994년 결성된 학연, 이데올로기, 매체, 형식 등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늘 꿈틀대려 하는 '시각문화 실험집단'이다.
지금까지 이들이 포스터를 디자인하고, 전시하고, 우편으로 띄움으로써 목소리를 내던 것을 책으로 바꾼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의 진달래가 사람들의 시선에 호소하는 '선언'을 하고 싶었던 반면, 지금의 진달래는 독자를 앉혀 놓고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시도로 표현된, '진달래'의 새로운 외침 속으로 함께 떠나보자.

취재 | 권영선 기자 (happy@yoondesign.co.kr)

책을 내고자 마음을 먹고 맨 처음 한 일은 기존에 진행해 왔던 전시를 되풀이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새로운 방식으로 책을 엮을 수 있을까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1인이 주체가 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작업물을 완성해 하나로 모으는 것이었다. 이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책이 출판이 되기까지의 많은 과정을 생략하고, 그들이 원하는 최적물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뽑아 낼 수 있는 것이라고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인쇄를 각자 진행하고, 비용을 각자 부담하는 것이 가장 힘든 결정이긴 했지만, 간단명료한 이런 과정이 출판의 실현 가능성을 높여주기에 그들이 모인지 6개월만에 작업을 일사천리로 완성할 수 있었다. 실제로 9명이나 되는 대식구가 많은 회의를 거치지 않고, 최종과정에서 단 3번의 만남으로 출판에 이를 수 있었다.

‘뼈’, ‘집단 정신’,’대한민국’, ’도시와 영상’, ’저공비행’, ’호호’. 그 동안 디자인 그룹 ‘진달래’가 참여 또는 제작했던 전시 또는 포스터의 키워드들이다. 이들은 언제나 생활의 안일함을 벗어나 디자이너로써 진정한 창작정신을 발휘할 수 그런 소통창구를 원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시각 이미지를 절대적으로 만들어 내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었다.
개인 또는 공동으로 제작한 이미지들을 갤러리에 전시하기도 하고, 스스로 클라이언트가 되어 포스터를 제작해 일상의 공간에 무작위로 붙이거나 우편으로 발송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는 생산물의 성격을 전시공간에 가두지 않고,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커뮤니케이션 하기를 원하고 있다.

여지껏 책이 시중에 나오기까지 출판사의 역할이 80%였다면, 그들의 이번 작업물은 출판사의 역할은 단지 1%이고, 그들의 역할이 99%이다. 상상력의 단가를 제작단가로 셈하기 보다는 그들이 직접 자신이 원하는 인쇄방법을 진행함으로써 지질, 가공 방법 등의 페이지에 대한 차별화된 표현력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출판사는 출판된 책을 배포하고 홍보하는 역할을 지녔을 뿐이다.

이번 책의 주제는 ‘시나리오(scenario)’이다. 영화의 시나리오는 글자에 의하여 영화의 시청각적인 묘사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면, 여기에서 의미하는 시나리오는 작품을 통해 각각의 디자인을 독립적으로 표현하는데 그 의미를 두고 있다.
여기에 모인 아홉 명의 디자이너들은 ‘시나리오’라는 주제답게 각자의 디자인 대본에 맞게 그들의 이야기를 재미나게 풀어나가고 있다.

이렇게 ‘시나리오’와 같이 매 호의 주제를 선정해 진행하는 이유는 상업적인 비즈니스의 결과물이든 개인 작품 활동의 결과물이든 간에 작품이나 이미지의 나열이 아닌, 자신의 견해나 사고 체계를 보다 직접적으로 나타내고자 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라는 하나의 통일된 주제를 가지고,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아홉 명의 디자이너들이 책 안에 펼쳐놓는 방법들은 각양각색이다. 표현하는 이미지에서부터 그것을 담는 인쇄방법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것이 없다.


디자이너들은 늘 새로운 것에 목이 마르다. 특히 디자인을 시작한지 10년이 넘은 베테랑이라면 더욱이 그들이 만들어내는 작업물에 더 애착이 갈 수밖에 없다.
일에 쫓겨, 가정에 쫓겨 디자인을 시작한 의미가 희미해 질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디자인을 시작했던 그 열정과 창조정신이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 앞에 그것도 그들과 같은 동년배의 디자이너들과 같은 자리에서 작품을 선보인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혼자 아닌 여러 사람이 함께하기에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경쟁심도 생겼고, 이번 기회를 통해 같은 처지에 있는 디자이너로써 서로를 독려하고 격려하는 끈끈한 우정도 맛볼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이 살아가는 재미라면,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말을 한다. 일상에 쫓겨 바쁘다고 푸념만 할 것이 아니라 이들과 같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 보는 것은 어떨까?

이번 호를 맡게 된 민병걸 편집장은 여기에 소개된 작품들이 디자인이라기 보다는 ‘표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말을 한다.
가령, 작품을 표현하는데 방한지를 사용한다거나, 보다 효과적인 표현을 위해 코팅지 등을 이용하는 것은 작품을 예쁘게 보이기보다는, 보다 효과적으로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표현’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여기에 참여한 아홉 명의 작가들은 표현하는 형식적인 주제가 모두 다르다. 어떻게 보면 하나하나 뭉칠 수 없든 개성강한 불협화음이 커다란 덩어리가 되어, 하나의 큰 화음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Jungle : 책의 컨셉을 '시나리오'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각 호의 주제는 편집장이 전권을 행사하여 결정 짓는 것으로 되어 있다. 모든 사람이 모여 회의를 거쳐 정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렇게 하면 모든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기가 힘이 들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모든 사람이 한번씩 편집장이 될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시나리오로 책의 컨셉을 지은 이유는 표현의 형식이 책이라는 것에 중점을 두어, 디자인이 만들어지는 다양한 프로세스를 한 곳에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존에 우리가 만들어왔던 것들이 결과중심의 작업물이라면, 이번 작품은 그 결과물들이 만들어지기 위한 여러 가지 프로세스들을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목소리로 표현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Jungle : 제작기간은 얼마나 되었나?
작년 7월부터 진행 예정 사항 등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고, 실제 시작한 것은 10월쯤이 되어서야 진행할 수 있었다. 편집장으로 결정되고, 본격적인 개인작업들을 시작한 것은 올해 초부터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차기 편집장과 파트너가 되어 함께 일을 진행하였다.

지금까지 진달래는 '전시'를 통해 많이 알려져 있는데, 이번에는 전혀 다른 방식인 '책'을 통해서 일반인들과 소통을 꿈꾸고 있다.
일반적인 전시를 한다는 것은 기존에 해 오던 우리의 방식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느꼈다. 습관적으로 하고 있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생각한 것이 포스터를 만들어 무작위로 우편을 발송하는 것이었다. 그 후에 생각한 것이 바로, 책을 만들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집중도 있게 바라보도록 하는 지금의 방법이다. 물론, 이번 책 작업의 경우에 전의 포스터 작업물과 같이 일회성으로 끝내지는 않을 예정이다. 1년에 두 번 정도 진행할 예정이며, 회원 모두가 편집장이 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작업을 함께 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Jungle : 다음 주제에 대하여 혹시 알고 있는가?
차기 편집장인 김경선 디자이너가 생각해 둔 것이 있다고 들었지만, 아직은 공개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추석을 전후해서 '진달래'의 또 다른 책이 여러분들에게 소개될 예정이다.

Jungle : 책 표지의 경우, 편집장의 전권이라고 들었다. 이번 표지의 컨셉은 무엇인가?
개성이 강한 여러 갈래의 작업물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묶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였다.
빛은 여러 색들이 모이면 점점 투명해진다. 여러 색이 합쳐지면 단순한 하나의 색이 나오는 것처럼 표지를 표현하고자 했다. 이러한 빛과 같은 디자이너들의 작업물들의 색이 바래지 않고, 각자의 목소리를 내도록 컨셉을 잡았다. 표지는 무색무취의 상태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지 때문이다.
이미지는 작은 요소들의 결합이다. 점, 선, 면 등 작은 이미지들의 조합이 모여 만들어 질 수 있는 이미지들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여러 조각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개념적인 요소들을 표지뿐만이 아니라 이번에 선보인 작업물의 연장으로 소개하고 있다.


Jungle :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크게 어려웠던 점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나하나의 프로세스가 사전에 계획되고, 진행이 되었기 때문에 순차적으로 프로세스를 진행하는데 문제될 것은 거의 없었다.
각자가 자신의 작업물에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을 져야 했고, 나는 마지막에 있어 그것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단지, 마지막 단계에 있어서 모든 작업물을 취합하여 제본소에 맡겨 하나의 완성물로 만들어 질 때, 육체적으로 힘이 들기는 했다.

Jungle : 이번 작업물의 의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작업을 하는 모든 디자이너들은 책의 일관성이나 통일성에 관한 의식은 거의 없었다.
상식적인 '책'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 아니라, '책'이라는 매체를 단지 작업의 틀 정도로만 생각하고 작업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할애된 부분을 자신의 의지대로 꾸미는 이 일련의 과정은 책 자체가 나왔다는 것보다 더욱 값진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수익성을 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작업들을 접근 할 수 있었고,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진행해오던 책들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클라이어트의 요구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작업물에 가장 가까운 형태가 바로 이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Jungle : 이러한 생각들을 가지고 출판사를 찾았을 때,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속마음이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크게 반대하지는 않았다. 책을 거의 다 만들어 온데다가 크게 리스크가 있는 상품은 아니었으므로 위험부담은 적었을 것이다.
출판사에서 큰 이익이 생긴다거나, 큰 손해를 끼칠 작업물은 아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출판사의 적극적인 협조에 더욱 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Jungle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밥만 먹고 살 수가 없는 사람이 디자이너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원하는 작업물들을 해야 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자 이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음,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열정을 가지고 노력했던 그때를 생각하면서 끊임없이 우리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것이다. 지금은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소통하고 있지만, 다음에는 어떤 소재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한가지 자신 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도 '진달래'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꾸준하게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 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아직은 우리가 많이 부족하지만, 열정 넘치는 디자이너들이 하는 '작은 잔치'라고 생각하고 꾸준한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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