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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Best Cover 20

2008-02-19


한 권의 책은 어떻게 하나의 이미지로 응축되어 현현하는가! 그 예로, 지금까지 출간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9권 가운데 베스트 커버 20권을 골라봤다.

글 | 이상현 기자 (shlee@jumgle.co.kr)
자료제공 | 민음사


1984
소설 <1984>에서 영감을 받은 화가 데일 오델의 그림 ‘빅 브라더’가 표지를 장식했다. <1984>에서 빅 브라더는 절대 권력으로 상징되는 독재자로서, 텔레스크린이나 도청장치를 이용해 대중을 감시하고 이데올로기를 강요한다. 감독자의 커다란 눈과 표준화된 시민의 이미지를 병치한 그림이 소설의 내용을 압축한다.

구운몽
현실에서 꿈으로,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환몽 구조를 바탕으로 한 몽자류(夢字類) 소설의 효시인 <구운몽> 의 표지는 몽환적인 분위기의 동양화다. 전통적인 화법을 탈피하고 자유롭게 흐르는 붓 터치가 인상적인 이 그림은 인생무상, 일장춘몽, 즉 인생의 덧없음이라는 주제를 나타내는 주인공 성진의 하룻밤 꿈 속 같다.

그 후
하얀 빛 무더기가 쏟아지는 저 너머를 향해, 어깨가 큰 코트를 입은 여자가 우산을 쓰고 계단 끝에 서있다. 얼굴을 볼 수 없는 뒷모습의 여자…. 일본 근대 문학의 아버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그 후> 의 표지는 한 장의 흑백 사진으로 채워져 있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본다는 건, 사건이 끝난 ‘그 후’의 일일 것이다. 남겨진 자가 떠나는 자의 발걸음을 세며 지나간 시간을 반추한다.


돼지꿈
70년대 산업화 시대의 어두운 이면과 착취당하는 일용 노동자의 모습을 그린 <객지> , 오랜 떠돌이 생활을 벗어나 고향을 찾아가는 이들의 여정을 그린 <삼포 가는 길> , 그리고 공장 노동자와 철거민의 삶을 다룬 <돼지꿈> 등이 포함된 황석영의 소설집이다. 눈 쌓인 하얀 길을 신명 나게 걷고 있는 세 남녀의 모습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귀향길'을 표현하고 있다.

마사 퀘스트
소녀 마사 퀘스트가 사춘기를 거치면서 느끼는 불만과 불안, 그리고 더 큰 세상을 향한 갈망과 좌절을 포착해낸 소설 <마사 퀘스트> .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국 인습과 전통에 지배당하는 자신과, 거기서 벗어나려는 자신 사이를 오가면서 점차 성장해 가는 한 마사 퀘스트의 삶이 모딜리아니의 화폭에서 가져온 그림 속 여성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특히 여자의 긴 목과 아몬드 형의 눈에서 진한 애수가 묻어난다.

맥베스
야망의 늪에 빠진 정직한 영혼이 악의 화신으로 파멸해 가는 이야기를 다룬 셰익스피어의 고전 <맥베스> 의 표지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그림을 가로지는 하얀 십자가다. 운명을 개척하려 했지만 결국 운명의 굴레에 갇히고 마는 주인공 맥베스의 운명이 인물을 드리우는 십자가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백년의 고독
곤히 잠에 빠진 남자의 뒤 편, 찢어진 벽 너머 달이 떠있다. 저 달은 백년동안 뜨고 졌을까. 죽음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다시 살아나고 유령과 대화하며 돼지꼬리를 단 아이가 태어나는 등 거짓말 같은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현실로 그려지는 서술기법이 매력적인 소설 <백년의 고독> 은 ‘고독’을 대물림하며 번영과 몰락을 거듭한 부엔디아 가문의 100년 역사를 통해 라틴 아메리카의 슬픈 운명을 그린다.

버스 정류장
200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중국 대표 문인 가오싱젠의 희곡 작품을 모은 책이다. <버스 정류장> 의 표지는 수묵화 기법을 활용했지만 지극히 현대적인 느낌을 자아내는데, 동양의 전통 사상과 정서를 현대 부조리극으로 형상화하는 작가 가오싱젠의 필치를 표현하고 있다. 특히 전봇대 위의 까만 새가 중국 정치 현실에 맞서야 했던 망명 작가의 향수와 상실의 고통마저 담아내고 있다.

밤으로의 긴 여로
그림 속 왼쪽 창 밖에는 태양이 빛나고, 오른 쪽 창에는 달이 기우는 것일까. 비현실적인 그림 한 장을 통해 밤으로까지 가는 여로가 얼마나 긴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이 책은 늙은 무대배우인 아버지 제임스 티론, 마약중독자 어머니 메리, 알코올 중독의 형 제미, 병약하고 시인 기질을 가진 동생 에드먼드 등 가족 4명이 애정과 증오의 교착 속에서 서로 공격하고 마음을 상하게 하면서도 이해하고 용서하는 어느 하룻동안의 허무한 심리적 갈등을 묘사한다.


안개
없는 것을 마치 있는 것처럼 표현하는 판토 마이머의 손바닥 위에 거짓말처럼 환한 불빛이 밝아온다. 존재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이 책의 표지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20세기 스페인 문학의 선구자 미겔 데 우나무노는 소설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너는 내가 만든 환상적 산물에 불과해. 그렇기 때문에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죽을 수 없지."

양철북
세 살 생일에 성장을 멈추기로 결심한 주인공 오스카, 고작 97센티미터에 불과한 키 때문에 누구도 그에게 책임을 묻는 일이 없다. <양철북> 의 원제인 'Die Blechtrommee'가 적힌 이 그림은 주인공 오스카를 형상화한 북치는 소년이 두 명 등장하는데 이는 겉모습은 어린아이이지만 속은 이미 다 자란 어른인 그의 이중적인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위대한 개츠비
도회적인 감수성으로 도시인의 폐허와 같은 내면 풍경을 그려온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표지로 가져온 <위대한 개츠비> . 소설 역시 주인공 개츠비의 사랑과 낭만적인 삶을 통해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사회상과 무너져가는 아메리칸드림 등을 묘사하고 있다.


제49호 품목의 경매
사물의 한 단면을 빅 클로즈업 한 듯 도무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이 표지는 어쩌면 난해하기로 유명한 작가 핀천의 작품 세계를 그대로 표현하는지도 모르겠다. 핀천은 시대를 앞서 1960년대에 이미 ‘매트릭스적 상상력’을 제시하면서,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세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질투
아내와 이웃집 남자의 관계를 고집스럽게 추적하는 한 남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질투에 찬 남편의 고통스러운 관찰의 기록이자 자폐적인 중얼거림이다. 질투라는 불안한 감정이 정점을 향해 차오르고 결국 명확하지 않은 계기로 의심스러운 소강상태에 접어든 남자의 내면을, 라 프레네의 작품 '앉아있는 남자'이 압축하고 있다.

춘향전
우리 서사 문학의 전통이 탄생시킨 고전의 백미인 <춘향전> 의 현대 역본이다. 현장감 있는 대사, 장면을 꾸미는 문장과 어휘에서 생동감을 맛볼 수 있는 이 책의 표지는 한국화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통해 고전의 정취를 한껏 고양시킨다.


페르디두르케
이 그림의 주인공이 누구일까. 아마도 정면을 보고 걸어오는 남자일 것이다. 그 사이를 지나치는 다양한 인간 군상, 남자는 현실에 '개입'하는 상태다. 소설과 에세이의 경계를 횡단하는 <페르디두르케> 의 저자 곰브로비치가 저 남자같다. 저자 자신이 끊임없이 개입하여 역사와 문학, 정치와 예술 전반에 대한 논평을 일갈하는 남자.

푸른 꽃
현실과 꿈의 경계를 넘나드는 낭만주의 문학의 대표작이다. 유복한 가정의 아들로 자라난 주인공 하인리히가 어느날 나그네에게서 푸른 꽃에 대한 전설을 듣고 이를 찾아서 여행을 떠난 그는 도중에 만나는 상인, 광부, 기사를 만나며 그들의 삶과 전설 등 여러 이야기들을 듣는다. 소설 속 한 장면을 그려낸 듯한 표지가 어딘가에 있을 푸른 꽃을 찾아나선 사람들의 모습을 낭만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피츠제럴드 단편선
<위대한 게츠비> 와 마찬가지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이 책은 1920~1930년대 미국이라는 구체성과 특수성이 비교적 강하게 드러내는 피츠제럴드의 160편의 단편을 수록하고 있는데, 표지 속 여자는 삶의 약속과 희망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꿈과 환상을 가지고 있는 피츠제럴드의 주인공들 가운데 한 명처럼 다가온다. 교통사고를 당한 남편을 매일같이 기다리는 단편 <기나긴 외출> 의 여자처럼 말이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아메리칸 고딕’으로 유명한 미국의 화가 그랜트 우드의 작품 ‘돌의 도시’는 소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의 배경 이미지로 상정해도 괜찮을 만큼 작품의 내용과 썩 어울린다. 리얼리즘 화법을 구사하는 반면 화면 너머의 시대적 공기까지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한 화가의 그림은, 평온하고 단정한 농촌 마을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과 음모의 비밀을 이야기하는 소설의 분위기를 묘하게 환기시킨다.

다섯째 아이
불투명하게 덧칠한 흰색 벽에 어른거리는 검정 자국의 정체는 무엇일까. 완벽한 일상을 영위하던 한 가정이 다섯째 아이를 출산하며 겪는 재앙을 다룬 도리스 레싱의 소설 <다섯째 아이> 는 심상한 풍경을 낯설게 표현한 그림을 통해 불안한 기운을 예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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