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6-18
돈이 뭐든 걸 말해줄 순 없지만, ‘피 너츠’의 작가 찰스 슐츠는 엘비스 프레슬리에 이어 ‘죽어서도 떼돈 버는 스타’ 2위에 랭크 되었다는 기사에 솔깃해지는 건 왜 일까요..
배우나 가수가 아닌 만화 작가에게 그만큼의 부와 명성이 안겨질 수 있다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위치나 가치의 중요성을 직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 일 듯 싶습니다.
어린이 동화작가 딕 브루너 나 만화 작가 찰스 슐츠는 그들의 작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캐릭터 그 자체의 개발에만 몰두한 작가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감성과 간결하면서 상징적인 그림 체,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작가의 ‘그 림 철학’ 등이 일관성을 유지하며 전 세계적으로 그들의 스토리를, 캐릭터를 알려 왔습니다.
만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이제 지면에만 머물지 않고, 애니메이션으로 디지털 영화로, 팬시 상품으로 영역을 확장해 가며 데뷔를 하고 있습니다. 종이와 펜 만으로도 그 표현이 가능한 만화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캐릭터의 성격을 뚜렷이 규명하고 생명력 있는 존재로 만들어 내는데 아주 기본적인 레이아웃만을 필요로 합니다. 독자와의 일대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캐릭터에 대한 인지도를 강하게 이끌어 내기도 하구요.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아기공룡 둘리는 만화가 김수정씨의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입니다. 둘리는 공룡에 대한 만화적 상상력과 캐릭터들 간의 가족적이고 인간적인 관계 설정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80년대에 등장한 둘리가 캐릭터 산업의 붐을 타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토종 캐릭터로써 성공 사례를 이끌어 낸 데는, 둘리의 엉뚱한 상상력과 따뜻한 마음씨,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지닌 다분히 인간적인 모습까지, 말 그대로 살아 숨쉬는 뚜렷한 캐릭터 설정이 이미 출판 만화에서 표현되고 대중에게 흡입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시마로나 졸라맨처럼 대중적인 인기와 인지도를 동시에 확보한 경우를 볼까요? 토끼 이미지를 전면적으로 부정한 마시마로의 독특한 캐릭터 설정이나 졸라맨의 소시민 적인 성격은 이질감과 동질감에 대한 신선한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선사하며 색다른 묘미를 안겨 주었습니다. 물론, 뚜렷하고 명확한 캐릭터의 성격이 전면에 부각된 경우 입니다.
이처럼,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 개성 있는 목소리로 캐릭터 파급력을 보여주는 작품 활동이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예는 속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재미동포 2세 릴라 리는 ‘ 성난 아시아의 소녀 ‘ (angry little asian girl) 라는 만화를 통해 인종차별에 대한 이슈를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도 인종차별의 메카라 할 수 있는 미국 내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통용된다는 데에 더욱 각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성난 아시아 소녀
<킴>
은 자기 주장이 강한 당찬 소녀입니다.
동양인으로 불려지기 보다 아시아 인으로 불려지길 원하고, 인종적 성적 차별을 가져오는 온갖 편견과 선입견에 당당하게 맞서는 등 당당한 여성으로써 아시아인으로써 나아가 주체적인 한 인격체로써의 자의식을 보여줍니다. 까만 생머리와 작은 체구의 다소곳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던 아시아 여성의 이미지를 단박에 능동적인 캐릭터로 탈 바꿈 시키는데 성공한
<킴>
은 한때 하루 접속자수만 백 만명에 이를 정도로 센세이션을 몰고 왔습니다. 릴라 리의 자의식을 대변하는 킴은 세상의 모든 편견과 선입견에 당당하게 맞서는 이미지로 의식 있는 캐릭터로써의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킴>
킴>
만화가 안겨줄 수 있는 보고 읽는 즐거움과 동시에 작가의 냉철한 의식을 내포한 킴의 캐릭터는 여성으로써 아시아 인으로써 세계적으로 산재한 소수 민족의 정체성과 상실된 주체성을 동시에 회복시키는 메타포를 지니게 된 것입니다.
슈퍼맨이나 베트맨 류의 미국 패권주의나 영웅주의를 답습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새로운 영웅상을 그려 낼 수 있다는 것을 성난 아시아 소녀 킴이 보여준 것입니다.
이처럼, 자의식이 뚜렷한 작가의 캐릭터가 만화와 만나면서 새로운 언어를 만든 경우는 국내에도 그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박광수씨의
<광수 생각>
은 감성적인 문체와 독자의 허를 찌르는 작가의 짤막한 코멘트가 어우러져 그림과 에세이가 결합된 만화의 새로운 트랜드를 보여줍니다. 신뽀리는 그 이미지부터 전형적인 키치 성향을 드러내며 만화 캐릭터 임에도 불구하고 다중 매체의 스타 플레이어로써의 한 전형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광수>
마시마로와 졸라맨이 이미지와 캐릭터 컨셉 면에서 기존의 가치관에 순응하지 않고 자유분방한 이미지로 대중에게 재기 발랄함을 선사했다면, 도날드 닭과 존나깨군의 작가 이우일은 자신의 만화를 통해 캐릭터의 도발적인 혁명을 가져 오기도 했습니다.
그린 듯 만 듯 자유분방한 스케치, 현란한 칼라 테크닉, 그리고 무엇보다 예쁜이 캐릭터의 전형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작가의 삐딱한 상상력이 스타일리쉬 캐릭터의 트랜드를 선보인 것입니다. 직선적인 화법, 예쁜척 귀여운척 하지 않는 캐릭터들의 도발적이고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은 기득권층의 가식적인 이데올로기에 의해 양산되는 불완전한 자의식에 반해 이우일 매니아들로 하여금 자유 분방함과 통쾌한 오르가즘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그 선두 주자인 존나깨군 같은 경우 검열의 대상이 되기도 한 걸 보면, 이우일 만화의 캐릭터들이 풍자와 독설로 무장한 문화 게릴라로써의 자의식을 얼마나 강렬하게 뿜어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입니다.
만화가 정연식씨의 또디 같은 경우는 이우일의 존나깨군 보다는 훨씬 소프트하지만, 만화 캐릭터로써 그 인지도와 생명력에 있어서는 대단한 파급력을 보여주는 또 다른 화법입니다.
정연식 씨는 자신의 만화에서 가족을 내세워 386 세대의 일상과 애환을 이팔육씨와 애완견 또디를 통해서 그려 냅니다.
1000회가 넘게 연재된 또디는 386세대에게 만화 오락으로의 귀환과 키덜트 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며 그들의 일상과 닮아있는 이팔육씨 캐릭터에 열광하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또디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어 공중파 방송 방영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캐릭터 소비와는 직접적인 영향력을 맺기 어려울 것처럼 보였던 세대가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는 것도, 그들이 즐기고 향유할 만한 컨텐츠 개발이 다양하게 선보이지 않았었기 때문이란 걸 프로바이더(provider)들 조차 간과했을 뿐이었던 것 입니다.
만화는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보는 즐거움 읽는 즐거움에 대한 매력적인 기능마저 상실된 채 그 동안 저급의 이미지로 치부되어 왔던 게 사실입니다.
한마디로, 만화는 선비사상이 전통사상으로 깊게 뿌리 박힌 우리나라 같은 현실에선 백수와 저학년 등 특정 계층의 비생산적인 유희로 이유없이 낙인 되어 왔던 것이지요. 물론, 만화에 대한 시각은 세대를 거듭하며 변화된 시선으로 향상되어 가고 있습니다.
잘 그리는 것과 못 그리는 것에 대한 차이를 논하기 이전에 캐릭터 프로바이더(provider)로써 신지식인이 되고 싶다면, 캐릭터를 얼마나 매력적이고 효과적으로 드러나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끊임없이 이어져야 합니다. 그러한 고민은 곧, 각각의 캐릭터만이 뿜어낼 수 잇는 스토리를 구성하고 그 안에서 캐릭터가 얼마나 흡입력 있는 개체로써 트랜드를 가져올 수 있느냐에 대한 것과 직결 됩니다.
김춘수님의 시 < 꽃 >과 쎙떽쥐뼤리의 어린왕자와 여우처럼, 의미 부여와 존재에 대한 주체적인 각인은 캐릭터를 캐릭터 답게 구성하는데 결정적인 구실을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
자유로운 발상으로, 느끼는 그대로 틀에 얽매이지 맙시다.
만화적 상상력만을 빌려 하얀 지면에 캐릭터를 걷게도 하고 뛰게도 하고, 친구를 만들어 말을 붙여 주거나, 적을 만들어 싸우게도 해보는 겁니다. 그러므로, 복제나 소장품으로써의 마스코트가 아닌 살아 숨쉬는 생명력을 부여해 주는 겁니다.
찰리 브라운, 스누피, 미피, 성난 아시아 소녀 킴, 그리고 신뽀리와 도날드 닭.
언젠가는 우리 자신의 캐릭터가 스누피를 애견으로 입양하고 찰리 브라운을 만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신뽀리와 도날드 닭의 손을 잡고 성난 아시아 소녀 킴에게 이런 은밀한 제의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우리. . . .심심한데 다같이 CF나 찍어볼까? “ 라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