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6-18
여러분은 현재 뉴욕의 티파니에서 보석을 고르고 있는 헵번처럼 생기 발랄한 여성이거나, 정열 하나로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클라크 케이블처럼 멋진 콧수염을 기르고 계신가요?
아니면, 여자의 마음을 돈으로 흥정하는 배짱 두둑한 사람이거나, 사람의 진심을 볼 줄 아는 인디 밴드의 키보디스트 처럼 살고 계신가요?
난데없이 이게 무슨 소리냐 구요?
우리가 허구라고 명명하는 다양한 매체 속의 캐릭터들은 곧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거나 무지막지한 질투심을 유발시키며 어느 한 시점의 지향하고픈 이상향을 나타내곤 합니다. 반면 대중은, 그것이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이미 가상과 현실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그들 스스로가 공동 출자한 문화마저 스스로 사이버 테러를 가하는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느 무명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타블로이드 한 귀퉁이의 만화 주인공이 세계를 누비며 우유와 함께 우리의 아침을 깨우거나 잠자리에 버젓이 누워 우리와 함께 잠들기도 합니다. 무방비 상태로 있다보면 난데없이 순한 동물로만 알았던 토끼가 자음하나만 바뀐 도끼를 들고 나와 곰을 위협하고, 그러한 일들이 가능한지 현실적 설득력을 실험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심장은 아마 천만 겹으로 쌓여져 있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지루한 수학시간을 피해 옆에 짝꿍과 히히 덕 거리며 어설픈 막대 인간을 그려 교과서에 손수 애니메이션을 만들던 위대한 우리들은 육 두 문자를 거리낌없이 이 시대의 영웅으로 추켜세웠고, 외식 문화의 큰 기둥이었던 자장면마저 이젠 너무나 보편화 된 벤치 마킹으로 탈바꿈해 본토 중국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가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고리타분한 매뉴얼과 관습화 된 요점정리를 뒤적이지 않아도 여러분과 제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엔 무엇보다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메커니즘도 위협하지 못할 사람의 두뇌엔 이성과 감성의 호르몬이 너무나 적절하게 한 자리씩을 꿰차고서 우리의 오장 육 보를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사람의 뇌에서 나오는 다양한 가치관과 직관력, 그리고 대상을 인지하는 복잡 다중 한 감성체계가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만든 셈이지요.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은 자신의 감성 훈련에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투자하고 계신가요?
거기에 보태, 그 감성의 골격을 체계화 시켜 나갈 이성의 알고리즘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계신지요. 이러한 문제는 저 자신 또한 제 자신을 향해 매일 반복처럼 외치는 주문이나 마법과 같은 질문이기도 합니다.
대중과의 밀접한 호흡을 간과할 수 없는, 스타 시스템의 이미지 메이킹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치밀한 계산과 끊임없는 재해석을 통해 이루어내는 혁신적인 통찰력이자, 트랜드라는 것을 만들어 왔습니다.
대중은 그것을 모방하거나 대중 스스로의 힘으로 사장시키기도 하며 가끔은 속수무책으로 역설적인 기만을 당하기도 합니다. 자본이 이끌어내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가 그러한 냉철한 이성을 가능케 한 것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들 스스로의 묵시적인 선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배경을 무시할 수도 없거니와 그럴 수 없기에, 과감하게 호랑이 굴속에 들어가야 한다면, 개발자들은 스스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는 대담성을 기르거나, 쌍 코피가 터지도록 방울 다는 연습을 연구해야 하는 것은 개발자들 스스로가 프로페셔널이 되기 위한 진지하고도 고독한 싸움일 것입니다.
로맨스의 김하늘은 푼수 끼 어린 김채원에 녹아 들지 않고서는 피아노의 수하를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성공적인 변신이라고 평하기도 합니다. 초지일관 공주 풍 캐릭터로 승부하는 김희선은 변신의 문제에 고답적인 대안을 내놓는다 해도 그것이 이미지 메이킹에 독보적인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다면, 대체 메타포가 등장하기 전까진 그것이 김희선의 아우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중요한 것은, 몰입 혹은 집중력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문화를 생산해 내고 그것을 소비 가능한 상품으로 재해석 해내는 데는 그만큼 끈질긴 이미지 메이킹과 지치지 않는 창작 욕구가 뒷받침되어야 할 테니까 말이죠.
캐릭터 산업의 인프라 구축을 위한 다각적인 접근이 짜임새 있게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서 IT시대의 거품 생산에 편승해 캐릭터를 컨텐츠로 만 초점을 맞추려는 장사꾼의 자세는 분명 적지않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스킬의 문제에 앞서, 이성과 감성의 알고리즘 문제를 접근해 가는 캐릭터 개발자들의 적극적이고 진지한 마인드 컨트롤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월트 디즈니는 교육과 대중 오락의 절묘한 배합을 위해 미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르는 키워드로 순수함을 내세워 왔습니다. 디즈니가 양산 해내는 천문학적인 자본 창출은 디즈니의 모토인 순수함에 반하여 적지않은 비판과 지탄을 받고, 그 사회적 파장력에 대한 연구가 각계 각층에서 연구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개발자들이 캐릭터 개발에 미치는 영향력의 한계가 어디쯤인지 대충은 가늠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중요한 것은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그 어떤 매커니즘 보다도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쩌면 우리에겐, 가공할만한 핵과 같은 무기가 우리의 머리 속에 심장 속에 우리 자신 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깊은 심연에서 자라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 무기란 바로, 우리가 만들고픈 역사일 수도 있고, 문화 일 수도 있고, 이상일수도 있고 꿈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내부의 파워를 이끌어 내려면 우리의 사고가 멈추어 있어서는 안되겠지요. 비현실적이고, 불가능하게만 여겨지는 저와 여러분 주변의 그 모든 것. 그것이 우리에겐 동화가 되고 이상이 되고 꿈이 되어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번쯤은 동화책 속의 달콤한 크림 같은 유혹에 빠져, 깊은 눈망울에 순수한 마음을 가득 담고 피터팬과 같은 기분에 빠져 보았던 추억이 있으신가요?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 .마음으로 볼 수가 있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은 사람, 바로 우리들 자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