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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이 정도면 한 번 아파 볼까?

2003-06-22

살다 보면 많은 장소를 가게끔 되더군요. 자의든 타의든 새로운 장소를 갈 기회가 생기는데 그 중에서 인상 깊게 남는 공공장소가 몇 군데 있습니다.
전국이 데모로 들끓던 10여년 전쯤, 얼떨결에 끌려 갔던 남대문 경찰서. 좋은 일로 가던 나쁜 일로 가던 찝찝한 곳입니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운동권 동생을 둔 탓에 자주 갔던 ‘구치소’라는 험한 곳도 있습니다. 물론 갈 데가 못 됩니다. 기분도 안 좋고 죄 없이 죄인 된 듯 살벌 하죠.
또 한 곳은 병원입니다. 어느 방향 문으로 나가느냐가 생사의 기로에 놓인 중환자실. 요란한 엠블런스가 도착하는 응급실. 천태만상의 환자들과 가족 친지들, 그리고 아픔과 슬픔…생로병사의 인간사가 어우러진 곳입니다.
세 곳의 공통분모라면, 안 갔으면 하는 기피 장소이자, 어쩔 수없이 끌려가는(?) 장소란 점이죠. 경찰서 가면 온 국민이 범죄자 같고, 교도소가면 왜 이리 죄인이 많은지… 병원도 마찬 가지입니다. 세상은 환자들 천지 입니다…

병원하면 어떤 생각이 떠 오르세요? 어른이 돼도 무서운 주사바늘, 수술실, 하얀 백의의 천사, 병원냄새… 아픔과 병을 치료 하긴 하지만 이미지는 좋을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경제적인 아픔까지 고려 한다면 정말 골치 아픈 곳이죠.

한 때 기업마다 유행 했던 단순한 [이미지 통합(Corporate Identity, Brand Identity) ]의 개념을 넘어서 지금은 그 상위 개념으로 [Brand Management]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각 기업은 저마다의 통합된 Brand Equity창출에 몸부림 치고 있습니다. 회사의 얼굴을 바꾸고 컬러를 통일하고 홍보와 광고에 열을 올리며 회사와 상품의 값어치를 높이기 위한 막대한 비용을 들이고 있습니다.
‘포돌이, 포순이’라는 귀여운 캐릭터로 이미지를 바꾼 경찰서, 하얀 가운을 다른 컬러로 바꿔 친근감을 강조한 병원의 유니폼 등이 그런 노력의 예가 될 것입니다.

가까운 나라인 일본의 우메다병원(梅田病院)의 CI를 한 번 볼까요?

원래 병원이라는 장소는 언제나 무섭고 두렵고 불안한 곳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쓰다듬듯, 구석구석까지 챙기는 따뜻한 배려가 보는 이를 편안하게 합니다.
눈으로 보여주고 가슴으로 느껴지게 만든 사인물들- 너무나 간단하고 심플한 아이디어가 기존의 병원 이미지를 전혀 다른 분위기로 보여 줍니다. 이런 간단한 아이디어를 왜 생각 하지 못했을까? 짜증이 날 정도 입니다.

네모난 나무판이나 아크릴 판 혹은 차갑고 딱딱한 금속제의 안내 사인물 대신 부드러운 천을 사용한 것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지요?
하지만 환자나 방문객들이 좀더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디자이너의 역량만큼은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 입니다.
더군다나 천을 소재로 할 경우 부드러움과 아름다움을 주지만 쉽게 더러워 지는 결점이 있는데,
세탁이 용이한 착탈식 디자인으로 이런 문제점까지도 명쾌하게 해결한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한 10년을 재사용을 할 수 있다고 하니, 지워지고 더러워진 기존 방식으로 인쇄 된 사인물보다
경제적이기도 하답니다.
크리에이티브의 위력은 이런 곳에서 발휘 되는 듯 합니다.

누구나 한 번은 가야 하는 병원이라는 가기 싫은 곳. 이왕 갈 곳이라면 기분이라도 좋아 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두말 하면 잔소리 이지요.
어렵게 만든 BI, CI가 이미지 통합이라는 본래의 임무를 뛰어 넘어, 보는 이를 행복하고 하고, 즐겁게 한다면- 그보다 더 큰 보람과 만족도 없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아트디렉터는 Kenya Hara(原硏哉)씨이고, 디자이너는 Yukie Inoue(井上幸惠)입니다.
어떤 디자이너들인지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얼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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