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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새해’에 보는 ‘낡은’ 아름다움

2004-01-27

이미 쉰세대(?)가 되어버린386세대가 젊었을 땐, ‘음악’이라고 하면 외국의 팝송부터 떠올렸었습니다. 밤이면 밤마다 라디오를 향해 귀를 쫑긋거리고, 팝송 한 두 곡쯤은 (어설프게라도) 따라 부를 수 있어야 감각 있는 사람이란 대접을 받을 수 있었죠. 영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시로 잘리고 편집되었지만 볼 만한 영화라고 회자되는 건 외국영화가 거의 전부였고, ‘방화’라 불리던 국산영화는 촌스러움의 대명사로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팝송이 나오는 라디오 프로는 자꾸 줄어들고 있고, 시간대도 밀려나는 형편입니다. 거기다 국산영화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50% 전후의 관객점유율을 가질 정도로 사랑 받고 있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창덕궁, 수원화성, 석굴암 불국사, 해인사장경판전, 종묘, 경주역사유적지,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되었고, 훈민정음을 비롯해 4가지의 세계기록유산과 종묘제례, 제례악이 세계무형유산으로, 그리고 안동하회마을과 설악산 등 8곳이 세계유산잠정목록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우리 것’의 득세는 비단 문화적인 측면에서만 두드러진 현상이 아닙니다. 반도체, 휴대폰, 자동차는 선진국에 꿇리지 않게 되었고, 국산 농산물은 가격이 비싸고 귀해서 함부로 먹지 못할 정도로 고급상품이 되었습니다. ‘국산품을 애용하자’, ‘우리의 것은 소중한 것이여!’ 외치지 않더라도 우리 것에 대한 이미지가 날로 좋아지고 있습니다.

먹고 살만 하니깐 우리의 것을 돌아보고 있는지, 아니면 우리의 숨은 아름다움을 모르고 있다가 지금에야 보게 됐는지, 혹은 외국 것들이 너무 식상해서 우리의 맛과 멋을 찾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잊었던 우리의 아름다움이 하나 씩 하나씩 부각되고, 되살아 나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인 듯합니다. 이와 같은 상승분위기에 힘입어 다음으로 빛이 날 우리의 것으로 ‘한국적인 디자인’을 꼽아본다면… 어떤가요, 너무 시기상조일까요?

보잘 것 없던 보자기 디자인의 아름다움에 새삼 놀란 적이 있으실 겁니다. 늘 보던 한복이 이상스레 화려하고 아름다워 보인 적도 있으실 겁니다. 그에 비견할 우리의 것이 또 있습니다. 혹 여행을 다니다 보셨는지 모르지만 오래된 사찰의 문짝을 유심히 보신적이 있으신지요? 색이 바래서 낡고, 형태도 일그러졌지만 수 백년 전 무명 디자이너의 손에 디자인된 아름다움은 전혀 바래지 않았습니다. 오래 될수록 더 진하게 묻어나는, 예사롭지 않은 아름다움… 그런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이 알고 보면 우리 주위, 아주 가까운 곳에 숨어있습니다.



무조건 새 것이 善이고, 낡은 것은 부수고 버려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지만, 오래된 집과 창 속엔 획일적으로 지어진 오늘날의 집과 창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세월의 깊은 멋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디자이너라면 한 번 정도 관심과 애정을 가져 봄직한 이 땅의 아름다운 옛 디자인입니다.

TV드라마 ‘대장금’과 ‘다모’, 영화 ‘스캔들’이나 ‘황산벌’에 매료된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묻혀있던 우리 것의 아름다움이 제 빛을 찾는 것 같아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합니다. 오랜 무관심과 무시의 굴레를 벗고, 2004년엔 또 어떤 ‘우리 것’이 새로운 옷을 걸치고 사랑을 받게 될지 – 자못 기대가 큽니다.

동남아나 유럽의 이국적인 정서와 문화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디자이너라면) 도처에 산재된 아름다운 옛 디자인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새해엔,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돌아보지 않던 것들을 하나하나 돌아보고 찾아보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04년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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