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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비주류(?) 디자이너1

2005-04-26

디자이너세요? 그렇다면 정말, 안녕하십니까?
비주얼 ‘비주류 디자인’은 없지만, ‘비주류(?) 디자이너’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다소 주관적인 감정과 단편적인 넋두리 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디자이너들이 과연 디자인지상주의(?)을 외치는 오늘날 그에 걸맞게 ‘주류’로 살아가고 있는지, 혹은 ‘비주류’로 생활하고 있는지 스케치해봄은 어떨까요? 디자이너라 하더라도 다양한 직종, 직급에 따라서 혹은 개인의 상황이나 성향에 따라 받아 들이는 느낌의 강도는 천차만별 일 것입니다. 대다수를 차지하는 비주류(?)디자이너 입장에서 이런 저런 것들을 둘러보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디자인 선진국 이탈리아에선 한 해 2만 명의 디자이너를 배출합니다. 인구가 3배나 되는 일본에선 2만 8천 명, 5배의 인구를 가진 미국에선 3만 8천 명이 디자이너의 이름을 달고 사회로 나옵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한 해에 무려! 3만 6천명의 디자이너가 태어난답니다. 사오정, 삼팔선, 이태백, 이구백, 십장생 등 요즘 우리 사회를 어둡게 하는 온갖 말들이 무색할 만큼, ‘숫자상의’ 디자인 시장은 화려합니다.
그러나 디자이너 여러분 – 정말 안녕하신 겁니까?

2003년 12월. ‘참여정부 디자인산업 발전전략’이라는 장황한 디자인 보고서가 발표 되었습니다.
5년간 100명의 스타 디자이너 발굴 육성, 지역디자인센터 설립, 디자인체험박물관 건립을 비롯하여, 현재 한국의 디자인 상황점검과 참여정부의 디자인산업 비전과 발전전략, 세부추진전략, 향후 추진계획 등이 포함된, 그야말로 장미빛 청사진이 제시됐습니다.

2005년 1월에는 ‘차세대 디자인리더 6인’을 선정하였으며, ‘남북디자인교류진흥원’과 ‘디자인클러스터’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대통령 신년회견에서 금융, 연구개발과 더불어 디자인 지식서비스 사업을 키울 것이라는 강력한 언급도 있었습니다.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핵심산업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은 정말 고무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일부 분야의 소수 수혜자를 제외하고는 과연 얼마나 많은 디자이너가 그 많은 수혜(?)를 피부로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디자인’을 ‘도안’, ‘의장’이라고 호칭하던 시절부터 디자인의 중요성을 말한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꽤 오래 전부터 디자인을 생존의 필수조건으로 꼽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에 걸맞게 디자너인 당신의 현재 가치와 위상, 결과에 따른 보상, 작업환경 등은 얼마나 격상 되어 왔습니까? 디자이너인 당신의 미래는? 비전은? 디자인 선진강국과 견줄 진정한 준비와 마인드, 그리고 그에 따른 노력이 지금, 함께 가고 있는 겁니까?

디자인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결국, 디자이너의 가치를 높이는 데서 시작한다고 저는 믿습니다만 – 당신은 어떻습니까?

어느날 천재 디자이너가 나타났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눈에 보이는 생활 속 디자인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는 수준만큼, 그리고 경제적 문화적 여유만큼 디자인의 수준은 올라가기도, 내려가기도 하니까요.

90년대나 혹은 그 이전의 80년대 디자인을 지금과 비교한다면 그 차이는 누가 봐도 명백합니다. 부지불식간에 디자인이 발전해 온 셈이지요. 그만큼 우리의 의식과 안목이 높아진 덕이고, 더 많은 투자와 디자이너의 계속되는 노력이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이처럼 발전해 왔고, 어떤 형태로든 발전할 것이 디자인이지만 지금의 우리 상황과 환경은 ‘디자이너 날씨 맑음’만은 아닌 듯 합니다.

디자인과 품질로 승부해야 한다는 말들은 여전하지만, 통신, 전자, 자동차등 잘 나가는 일부 업종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종에서는 한 명의 직장인, 디자이너라도 줄이는 일이 대세입니다. 디자인 기획실도, 제판, 인쇄소, 광고회사… 어디를 봐도 어렵다는 말 뿐 입니다.


경제적 어려움에서 오는 결과는 제쳐 두고라도, 몇몇의 제품디자인과 일부 디자인 업종 외에 그래픽이든, 일러스트든, 포스트든, 광고든, 디자인이 사회의 커다란 이슈가 될 정도의 사건은 보기 힘든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상적인 디자인의 꿈과 현실적 괴리는 더욱 커지고 있는 듯 합니다.

어쩌면 요즈음 디자인은 수준 이하도 수준 이상도 없는 고등학교마냥 평준화가 되어서인지, 아니면 순전히 경제적 어려움에 기인해서인지, 혹 디자이너의 열정이 식은 이유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디자인이 인구에 회자되는 경우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어딜 둘러봐도 디자인으로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 뿐입니다.

최고의 디자인을 표방하는 소수의 정예 디자이너들과 작가, 실력과 명성을 가진 교수 들을 제외한 스페셜리스트는 얼마나 계신지요? 그나마 그런 분들의 작품이란 것도 인사동 유리진열장 속이나 알음 알음 소문 속에서나 존재하는 게 아닌지… 그저 일부 극소수 매니아들의 눈과 손에서만 존재하고 있지는 않은지… 강남을 주름잡는 고가 브랜드는 몽땅 외국의 제품으로 채워져 있고, 아직도 대기업의 주요 디자인 프로젝트는 외국의 손에 넘어가고 있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디자인도 그렇고, 디자이너의 근성마저 색이 바래지고 있지 않은지 안타깝습니다. 수많은 학교, 학원에서 디자이너가 양산되고, 빌딩마다 널린 곳이 디자인 사무실이지만, 정작 프로다운 디자이너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지금도 대기업이든, 일반 회사든, 디자이너 출신이 이사나 임원으로 발탁 되면 뉴스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디자이너는 많은 기업에서 예술나부랭이(너무 심했나?)나 도안을 하는, 혹은 마케팅의 저 밑에서 일하는, 여차하면 감원대상 0순위의, 있으나 마나 하는 여유인력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디자이너가 회사에서 ‘디자인 마인드’ 대신 ‘영업마인드’를 택한다면, 현실적으로 훨씬 빨리 출세 할 수 있고, 오래 버틸 확률도 높아질 겁니다. 기업 안에서 목소리 크고 영업력 뛰어난 사람만큼 빛나는 사람도 없으니까요. 물론 디자인이란 게 영업적이고 전략적인 마인드 없이 이뤄질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디자인 교육 커리큘럼에 의한 한계나, 지금까지의 정서 등의 문제때문에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디자이너가 디자인 버리고(?) 훌륭한 영업맨이 되어(?) 디자인 고유감각을 무시하고, 회사도 디자인 마인드보다는 영업과 전략에 치우쳐 반(反) 디자이너(?)만을 원한다면 제대로 된 디자인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 가요? 말들은 너도 나도 잘합니다. 전략적 마인드 가진 디자이너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전략적 마인드를 가진 디자이너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이 땅에 50대 이상의 현역 디자이너가 얼마나 있습니까? 아니 40대라도 있기나 하는 건가요?
물론 우리의 짧은 디자인 역사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경제개발 시기에 한창 주가를 올리며 활동하던 선배들은 다들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신지… 혹, 디자인이 무엇인지 잊지나 않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기껏해야 학교를 끼고 있는 교수라는 직함을 가진 일부만이 디자인을 이야기하고, 간혹 자문을 하는 정도이고, 나름대로 디자인으로 청춘을 보낸 이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아무리 현역 디자이너로 활동 하기가 짧은 이 땅이라고 하지만 안타까운 일입니다.

일반회사에서라면 일찍부터 디자인과 거리가 먼 관리자가 되셨을 터이고, 개인 사무실을 하던 분들도 ‘내가 언제 디자이너 였나’를 생각하는 처지가 되어 있지나 않은지… 디자이너로 평생 현역에서 밥 먹고 살기에는 아직도 풍토가 덜 익은 탓인가요? 제대로 틀이 만들어 지지 않아서인가요.? 어쨌든 지금 같은 슬픈 우리의 현실이 미래 자화상이 되지 않기를 기대해 봅니다.

70, 80넘은 원로가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유럽이나 미국, 일본의 디자인 선진국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런 분위기라도 조금씩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숙련공이 되기도 전에 사라지는 디자이너의 구조적인 문제는 어디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 일인지…

전략과 제작은 같은 맥락에서 나오는 원인과 결과이기도 하지만, 기본 개념 상 정반대의 성향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냉철한 전략과 감성적인 디자인은 ‘물’과 ‘불’ 같아서, 근본적으로 부합하기 힘든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훌륭한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선 어떻게든 두 개의 선이 만나는 지점을 찾아야 합니다. 시너지가 나야 하죠.

그러나… 현실과 이상이 다르듯, 서로를 존중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어느 한 쪽의 의견이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죠. 그래서일까요? ‘기획’, ‘전략’, ‘디자인’ 파트로 서로서로가 알아서 금을 긋고, 알아서 책임과 의무를 전가하고, 가끔은 삿대질도 오가는 험악한 분위기도 연출됩니다.

이쯤에서 팔이 안으로 굽는 소리 한번 해볼까요? ^^ 해가 갈수록 전략과 컨셉 쪽에 힘이 더해지고 있다지만,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전략과 명쾌한 컨셉이라도 훌륭한 디자이너들이 없다면 ‘좋은 디자인’은 절대로! 절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맥 (Mac) 만능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맥켄토시 컴퓨터 없이 디자인은 존재할 수 없으며, 맥이 없는디자이너는 맥도 못 추게 되어버렸습니다. 그 현란한 테크닉이라니… 이제 맥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맥이 등장하면서부터 농업적 근면성을 요구하던 디자인 작업 시간이 엄청나게 줄어들었습니다. 너무나 편하고 쉽게 모든 프로세스가 진행 되었습니다. 단가를 세이브를 시켰고,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에 맥이라는 괴물은 디자인의 기본 틀을 완전히 재편해 버렸습니다. 기본적인 퀄리티도 많이 업그레이드 시켰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날고 뛰어도, 맥은 컴퓨터입니다. 전원이 꺼지는 순간 맥도 눈을 감는 거죠. 모든 작업이 올스톱입니다.

디자이너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표현하는데 있어 맥은 분명 훌륭한 도구가 되어주었지만, 반대로 아이디어의 편식을 가져왔습니다. 인쇄물을 보십시오. 지면을 온통 덮어버린 맥의 휘황찬란한 장식과 테크닉을 보십시오. 일은 편해졌고, 표현은 다양해 졌지만 인간의 오감으로 끌리는 멋과, 포근한 맛을 간직한 자연적인 디자인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디자인을 위한 맥이 아니라, 맥을 위한 디자인이 된 건 아닌지…

수만 년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만큼을 살아갈 인간에겐 자기만의 본질이 있습니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디자인이든, 첨단문명의 이기든 간에, 인간의 본질과 닿아있지 못하면 그 디자인과 기술은 오래 갈 수가 없습니다. 획일적인 맥에만 의존하기 보다 사람의 손맛을 찾아나서는 건 어떨까요. 손맛이 살아있는 도구와, 손맛이 살아있는 재료로, 손맛이 살아있는 디자인을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새롭게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요? 디자인 선진국이라고 불리우는 곳에선 아직도 그런 바보(?) 같은 방법들이 통한다고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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