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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브랜드가 산다 ②

우승우 브랜드 컨설턴트 | 몰스킨(http://www.moleskine.com) | 2015-06-10


마릴린 먼로가 잠자리에 들 때 사용한 샤넬 No. 5 향수나 예순이 넘어 창업한 KFC 창업자 커넬 샌더슨 이야기, 우리 할머니의 할머니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름 모를 브랜드 식기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 생활 속에는 어떤 브랜드가 존재하고 있는지 되짚어본다. 나와 동떨어진 공간이 아닌 ‘우리 집’ 브랜드는 해당 브랜드를 알아가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글 | 우승우 브랜드 컨설턴트
사진 | 몰스킨(http://www.moleskine.com)
 

우리 집에 있는 수많은 브랜드 중 두 번째 ‘우리 집 브랜드’로 선정한 브랜드는 바로 ‘몰스킨(Moleskine)’이다. 첫 번째 브랜드로 ‘탐스’를 선택한 이유는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몰스킨’은 매일 매일의 일상을 기록하는 도구로서, 우리 가족이 오랜 기간 꾸준하게 써왔고 앞으로도 계속 쓸 브랜드라는 이유로 선택했다.
 

책상을 본다. 몰스킨 다이어리가 많다. 눈에 띄는 몰스킨만 여러 권. 매일 매일(Daily) 주요 일정을 기록하는 빨간색 몰스킨과 프로젝트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이슈별로 정리해 놓는 검은색 몰스킨은 기본이다. 주변 분들에게 선물 받은 핑크색과 노란색 몰스킨이 두 권이나 있고 스누피와 레고 커버의 스페셜 에디션. 읽은 책 감상을 기록하는 전용 다이어리(Book Journal)도 있다. 스티커를 모아 받은 스타벅스(Starbucks) 다이어리와 행사에 참여하고 받은 예거르쿨트르(Jaeger lecoultre) 선물 역시 몰스킨이다. 물론 특정 기간에 상관없이 쓸 수 있는 다이어리가 대부분이라 사용에 문제는 없지만 ‘우리 집에 몰스킨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생각해 보니 올해 초 회사에서 나눠준 다이어리 역시 몰스킨이었고 새롭게 자기 비즈니스를 시작한 친구 회사의 선물 역시 몰스킨이었다. 마음에 드는 브랜드를 발견하면 특별한 이유 없이 바꾸지 않는 나는 진즉 몰스킨 만의 매력에 빠졌다. 무엇인가를 기록하고 펜으로 남기는 것에 관심이 많은 것도 한몫했다. 우리 집에 이렇게 많은 개수를 보유한 브랜드가 또 있을까.
 

몰스킨은 겉보기엔 아주 단순한 다이어리에 불과하다. 어떤 화려한 장식도, 디자인적인 요소도 없다. 검고 단단한 커버, 책이 벌어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엘라스틱 밴드, 둥글게 처리된 모서리가 디자인의 전부이다. 다이어리를 펼친다고 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특별한 내용이나 일러스트 없이 오로지 미색 속지만 존재한다.

원래 몰스킨은 1800년대 프랑스 제본업자들이 서점에 납품해서 팔던 수첩으로, 당시엔 이름도 없이 지금처럼 단순한 디자인이 전부였다. 그런 몰스킨의 진가를 알아차린 건 아티스트들이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등 내로라하는 아티스트들이 몰스킨에 자신들의 생각과 그림을 기록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브랜드 관리가 안 된 몰스킨은 1980년대 생산 공장이 문을 닫고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몰스킨의 불씨를 살려낸 건 두 명의 이탈리아 사업가였다. 몰스킨을 둘러싼 흥미로운 역사와 이야기를 알아차린 이들은 1997년 몰스킨에 'The Legendary Notebook'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본격적인 브랜딩을 시작했다. 그렇게 몰스킨은 아티스트들이 즐겨 사용하는 전설적인 다이어리로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몰스킨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디자인을 고수한다. 시대에 따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블랙으로 일관한 커버 컬러에 레드를 비롯한 다양한 컬러를 추가한 것과 사이즈가 다양해진 정도.
 

많은 사람이 몰스킨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오랜 전통과 역사성. 심플하면서도 강력한 디자인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뭔가를 기록하는 행위에 몰스킨 특유의 감성을 더했기 때문이 아닐까. 일반적인 다이어리가 쓰고 싶은 내용을 적는 기능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면, 몰스킨은 기록을 남기고 창조적인 시도를 하는 감성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췄다. 즉, 단순히 메모하고 스케줄을 관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기록하는 또 하나의 ‘책' 역할을 지향한다. 몰스킨이 문구점이 아닌 서점 위주로 제품을 공급하고, 책에서 볼 수 있는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를 붙인 이유가 그 때문이다.

광고 또한 이를 강조한다. 피아노가 그려진 몰스킨, 사진 필름을 그려 넣은 몰스킨, 노트북 자판이 새겨진 몰스킨 등 ‘창조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몰스킨을 사용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암시적으로 전달한다. 또한 몰스킨이 흥미로운 건 사용자 스스로 가치를 매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다이어리 앞에는 몰스킨을 잃어버렸을 때를 대비해 주인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사례금을 적는 'In Case of Loss'를 표시해 놨다. 이는 몰스킨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가치 척도가 되는 셈이다. 사람들은 몰스킨을 자신만의 지적 생산활동을 위한 도구로 인식한다. 결국 몰스킨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자신만의 '이야기'가 살아있는 브랜드가 되었다.
 

하루라도 디지털 기기 없이 생활할 수 없는 요즘, ‘누가 종이에 글을 쓰냐’며 아날로그 기반 다이어리는 조만간 사라질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그 브랜드가 몰스킨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몰스킨을 사용하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고 있고, 다이어리 관련 상품 판매에 따른 매출 또한 최근 들어 더욱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콜라보레이션 파트너를 선정하는데 까다롭기로 유명한 글로벌 커피 브랜드와 크리에이티브 및 트렌드에 민감한 브랜드 컨설팅 회사가 몰스킨을 선택하는 것만 봐도 그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가장 가까이는 점점 늘어나는 우리 집 몰스킨 숫자만 봐도 알 수 있다.

문득 새로운 다이어리 구매 시기가 빨리 다가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년에는 다른 색깔로 바꿔볼까. 내년에는 뭔가 특별해 보이는 스페셜 에디션을 써볼까. 내년에는 전용 볼펜을 함께 써야지.’ 벌써부터 마음이 흐믓해진다. 물론 내년에도 올해와 똑같은 색깔, 똑같은 디자인의 다이어어리를 사용하고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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