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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재미와 유머가 넘치는 광고

2005-08-11

“어떤 모임에서든지 가장 인기가 많은 사람은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란다. 너도 적절한 유머를 사용할 줄 아는 재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 보렴. 우선 그런 사람 주위에는 친구들이 많이 모인단다.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늘 유쾌하고 즐겁지. 늘 웃음이 넘치는 사람들이 모이면 자기들만의 언어를 사용하고, 자기들만의 행동을 하게 되면서 그 모임에 대해 소속감이 생기는 거야….” <아버지가 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 (국민 출판사)

그렇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세상은 더 각박해지고, 더 빠르게 돌아가므로 우리에게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바로 재치와 유머가 그런 여유를 만들어 주지요. 쓸데없이 근엄한 사람과도 무장해제하고 금방 친하게 해 주거든요.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다짜고짜 “내 광고 좀 봐 주세요!”라고 말을 건네면 누구도 즐거워 할 사람이 없습니다. 이는 비단 바쁘게 걸어가는데 코앞에 전단을 불쑥 내미는 것과 같습니다. 적개심을 갖지 않으면 다행이지요. 그럴 때 재치와 유머를 써 보는 건 어떨까요? 그러면 경계심이 슬그머니 사라지면서 여유가 생겨서 내 아이디어를 들어줄 자세를 취하게 되거든요. 바로 그 순간 짧게 내가 누구라고 이야기하고 빠지는 것이 고수들의 비결입니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도는 세상에서 “지구야 멈춰라. 내리고 싶다”고 외치지 말고, 한 호흡 쉬어가는 여유를 되찾을 때입니다. 재치와 유머를 가미한 말 건네기로 말입니다.

이번 달에도 재치가 살아 있는, 그래서 슬그머니 미소 짓게 하는 광고 몇 편을 소개해 드립니다.

광고의 면이 하얗게 비어 있습니다. 시원해서 좋군요. 일단 눈길을 잡은 후 아래 부분에 작은 글씨로 된 카피가 이어집니다. 비주얼이 없으니 그걸 읽지 않을 수가 없군요. “광고의 규칙을 적은 책에서는 로고 없이 절대로 광고하지 말라는 말이 나옵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당신의 회사 이름을 기억할 수 있게 로고를 크게 넣으라고 합니다. 훌륭한 논리입니다.

회사 로고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들이 당신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만 뺀다면 말입니다. 만일 그 중 하나가 돈이라면, 저희 벤추라 보증회사를 만나십시오. 저희는 기업재정, 펀드관리, 재산 물건의 조사와 중개, 인수 합병 등을 하는 회사입니다. 팩스 번호 265-3179로 연락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로고 없음.” 그렇군요. 비즈니스에는 이름보다 중요한 것이 있지요. 특히 돈을 다루는 비즈니스에서는 돈만 잘 키우면 되지 이름 따위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겠네요. 광고 만드는 이들은 광고를 조금이라도 단순하게 만들려고 자꾸만 요소를 줄여봅니다. 그러다가 로고까지 없앨 수 있다면 국제 광고제에서 상을 받기가 쉽다고 제게 말해준 유명한 영국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있었지요.

역시 하얗게 비워놓은 두 면의 중간에 깨알 같이 작은 글씨로 뭐라고 쓰여 있습니다. “아아아아아아하! 아아아아아아하!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아아아하! 오우! 아우치! 노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이이이이이이아아아아아아아하! 노! 노! 그것뿐이야! 아아아아아하!(오는 4월, 채널 KTV가 위성을 통해 중국, 대만, 홍콩의 수백만 가구에 논스톱 노래방을 선보입니다.) 아아아아아하! 야익스! 후우우아아아아아! 이제 그만!(그래, 그래. 조금 더 하자).” 아, 노래방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군요. 카피 참 쉽고 길게 썼지요? 그런데 카피 쓸 때 누가 옆에 붙어 앉아 옆구리라도 꼬집은 건 아닐까요? “아아아아아아하”만 길게 쓰고 돈 받았네요. 카피를 무심코 읽어나가다 보면 멜로디가 되고 노래가 됩니다. 이 광고 역시 제작비 안 들이고 재미있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누군가가 옆에서 뭐 씹은 표정으로 “그나마 재미는 있는 것 같은데, 이런 아이디어가 방송과 무슨 연관성이 있어?” 라는 말을 툭 던졌다면 빛을 보지 못했을 아이디어지요.

“미국 비자 얻는 데 걸리는 세월만큼 오래 갑니다. 혹은 5년은 갑니다.” (어느 쪽이든 먼저 오는 쪽만큼.) 5년 품질보증의 외장용 페인트, 일본 페인트. 미국 비자 얻으려면 우리나라만 오래 기다리는 줄 알았더니 다 마찬가지군요. 빈 라덴 때문에 요즘은 더 오래 걸리지요. 페인트가 오래 간다는 이야기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미국 비자발급기간에 빗대어 풍자적으로 표현해서 동양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저러나 미국 대사관에서도 이 페인트를 쓰면 좋겠네요. 우리처럼 비자 발급 신청해 놓고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을 수 있으니까요. 한 번만 칠하고 5년은 잊어버리세요!

몇 해 전에 만들어져 상을 많이 받은 뉴질랜드의 옥외 광고입니다. 거대한 옥외광고에 거대한 크기의 빨간색 카피가 얹혀져 있습니다. “모들 개들은 한 번은 죽습니다. 이 개가 죽을 날아 바로 월요일입니다.” 그리고는 하단에 작은 글씨가 보입니다. “이 개는 앞으로 7일 밖에 살지 못합니다. 이 개를 키우시려거든 0800-HUMANE으로 전화 주십시오. 뉴질랜드 인도주의 협회” 그리고 카피가 끝나는 마침표 바로 옆에 주인공 개가 창살 너머로 보입니다. 실물 개를 가두어 놓았군요. 개의 덩치가 좀 크기는 하지만, 빨리 구해줘야겠네요. 일주일 안에 죽는다니.

이번에는 아예 “사형수 감방”이라고 크게 써 놓고, 그 아래에 감옥 4개를 만들었습니다. 주인공들이 옥외광고에 직접 등장하는 아이디어는 도대체 누가 냈을까요?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집행하게 허락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부러울 따름입니다. 저는 원래 개 기르는 것을(특히 아파트에서) 좋아하지 않지만, 우리나라에도 집 나간 강아지들이 점점 많아진다고 하니 닭장차에 실려 어느 시장으로 넘어 가기 전에 캠페인을 벌이면 좋겠습니다.

위에 보이는 조개 모양의 작은 통은 아편을 담는 통입니다. 1834년경에 나온 것이랍니다. 그 밑에 “미안합니다. 저희는 통만 판매합니다.”라는 카피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고 자세히 봤더니 골동품 가게 광고군요. 붕어빵에도 정작 붕어는 들어있지 않다는 것은 전 국민이다 아니까 새삼 실망할 것도 없지요. 광고는 만들어야 하는데 제작비가 적다면 이런 방법을 쓰면 되겠네요. 작은 농담이지만 눈길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1822년경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대감의 침대가 보입니다. 그리고는 “만일 첩이 32명이었다면, 침대도 정말 바위처럼 단단한지 확인했을 겁니다.”라는 카피가 이어집니다. 중의법을 잘 썼군요. 첩들 입장에서 단단해야 좋을 두 가지를 한 번에 담아 표현했습니다. 주인님이야 세상을 뜬지 오래 됐겠지만, 180년이 더 된 이 물건은 여전히 튼튼하다는 이야기네요. 확실히 돌려서 말하니까 재미있지요? 낡아빠진 침대를 그냥 오래 돼서 좋으니 사가라고 말한다면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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