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9-02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은 참 대단하다. 최소한 광고에 있어서는 말이다. 아니, 어쩌면 이러한 광고를 만든 TBWA 파리가 대단한지도 모르겠다. 파격적인 광고표현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아왔고 여러 광고제에서도 큰 상들을 휩쓸었는데 올해 칸 광고제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각기 다른 표현의 6개 광고가 모두 각각 인쇄광고부문 금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물론 이 6편의 광고가 모두 성적 소구를 이용한 것은 아니다. 게임이 가져 다 주는 즐거움은 곧잘 섹스와 비유될 수 있으며 이는 게임기 광고에서 성적 표현이 확고한 한 유형을 이루는 이유일 것이다. 그 중 3편을 감상해 보자.
한 젊은 여성이 속옷차림으로 한 남자와 침대 위를 뒹굴고 있다. 그런데 그만 남편에게 들키고만 게 아닌가. 출장간 남편인지, 다른 날 보다 귀가가 일렀는지 아무튼 서류가방을 든 정장차림의 남자가 방문으로 들어서고 있다. 화들짝 놀란 여자의 표정. 그런데 이런 여자의 간통 상대는 플레이스테이션이다. 광고에서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 △, ○, X 모양의 가죽 쿠션들과 엉켜있는 것이다. 이것이 건장한 남자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가슴에 털이 나듯 여기저기 털들이 보인다.
그리고 게임은 아무나 통정의 상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번엔 소파 위에서 하나가 되려는 남녀가 보인다. 그런데 이들의 얼굴은? 남자는 플러그 형이고 여자는 이를 꽂을 수 있는 콘센트로 서로 음양의 요철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들은 플러그를 꽂아 쉽게 하나가 되고 통정을 한다. 게임이 그런 게 아닐까? 그 뒤론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듯한 남자가 서있다.
그러고는 게임은 사랑을 부정해 버린다. 그들의 섹스는 섹스일 뿐일까?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곡으로 유명한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보인다. 16살 그녀는 물레에 손가락이 찔려 그만 영원히 잠이 들고 마는데 이런 그녀를 깨운 것은 달콤한 왕자님의 키스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분은 게임에 빠져 끝끝내 오시질 않고 미녀는 그만 할머니로 늙어버렸다. 게임 앞에서는 사랑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다는 이야기.
게임이 가져 다 주는 환상은 일상의 탈출이자 활력소임에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을 부정하는 차원으로 넘어간다면 삶은 더 비참한 일상에 놓여질 것이다. 섹시한 광고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