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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질투는 우리의 힘

2006-06-05

“내가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먼저 발표해 버리는 것”이 아이디어라는 이야기가 새삼 가슴에 와닿는 날씨 좋은 아침입니다. 사실 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차’ 하는 순간을 만나곤 합니다. ‘아아, 저걸 내가 했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도 한 시간에 몇 십 번씩 합니다.

머리 속에만 있는 건 아직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했던가요? 그렇다면 배짱을 갖고 일단 발표를 해볼 일입니다. ‘이런 생각을 얘기했다가 나의 지적 능력을 의심 받으면 어떡하지? 말도 안 된다고 하면?’ 하고 망설일 일이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발표했다가 의심 받으나 가만히 있다 의심 받으나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사람들의 칭찬을 많이 받은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보면 우습다는 생각이 먼저 들지 않으세요? ‘흥, 저까짓 것 누가 생각 못해?’ 라는 마음이 들지 않나요? 우리에게는 그 곳이 바로 좋은 출발점입니다. 오늘부터 ‘내가 본격적으로 하지 않아서 그렇지, 하기만 하면 이것보다는 훨씬 잘 할 수 있지’ 라고 마음을 먹읍시다. 살짝 뻔뻔해집시다.

지금은 미국 어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제 친구의 별명은 ‘꼬끼오’였습니다. 모두들 바빴지만, 그 친구는 특히 바빠서 집에 갈 짬이 별로 없었습니다. 자기 일을 마치면 아무 회의실에나 불쑥 들어가서 “여기 무슨 회의하세요? 이런 아이디어 어때요?” 하며 한바탕 떠들어대고 나오거든요. 물론 거기서 나와 계속 다른 회의실에도 가봐야 하니 바쁠수 밖에요. 누가 초대하지 않아도 아이디어 회의만 있다 하면 어디에나 ‘꼭 끼어’ 들어서 우리는 그를 ‘꼬끼오’라고 불렀답니다. 지금도 아무 수업에나 들어가서 강의하는 건 아닐까요?

우리도 여기저기 끼어듭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보기엔 말도 되지 않을 아이디어를 나보다 먼저 발표해 많은 이의 칭찬을 받는 누군가를 질투합시다. ‘내가 하면 더 잘 한다.’는 정신으로 덤벼듭시다. 질투는 우리의 힘입니다.

광고1) “이코노미스트” 지(Cut through the clutter.)
늘 빨간색 배경에 흰색 카피 한 줄만으로 승부하는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의 아이디어. ‘복잡한 판을 뚫고 나가라(Cut through the clutter)’는 헤드라인 한 줄이 크게 보이고, 그 헤드라인 자체를 멋지게 잘라냈습니다. ‘쾌도난마’라는 말이 어울릴까요? 너무도 심하게 엉켜 있어서 모두들 풀려고 고민하던 매듭을 한 칼에 잘라 풀어버렸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고디언의 매듭’도 생각이 나는군요. 물론 무서운 칼을 휘두르며 덤비는 사무라이 떼를 총 한방으로 너무도 쉽게 제압했던 ‘인디애나 존스’도 떠오릅니다. 세상살이 자체가 어려운 것이지만, 비즈니스 환경도 결코 단순하지는 않지요. “이코노미스트”에서는 아무리 문제가 꼬여서 난맥처럼 보여도 결국 정면 돌파를 하는 것이 좋다고 한 수 알려 줍니다. 문제가 복잡하게 꼬이면, 빠져 나와 맨 처음으로 되돌아가야 길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광고2) 오린지 통신(Orange Telecom)
모음의 외출인가요? 카피에서 모음들이 다 빠졌군요. 바쁜데 문장을 꼭 다 써야 알아듣나요? 모음 정도는 좀 빼고 써도 아는 분들은 다 안다는 이야기지요. SMS(Short Message System)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말 그대로 short message를 보여 주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short and sweet’, 두 번째는 ‘bad selling works’를 줄였군요. 지구가 돌아가는 속도가 워낙 빠르니까 모든 것이 속도 위주입니다. 말을 빨리 할 뿐 아니라 줄여서 하는 게 멋이 된지 너무 오래 됐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아름다운 우리말을 오염시킨다고 어른들은 걱정을 많이 하십니다. 하지만, 그것도 한때의 멋이지 나이 들면 더 이상 그러지 않을 테니 잠시 놓아두셔도 좋을 듯합니다. 창의적이어서 재미있는 부분도 있으니까요. 또 ‘새로운 언어의 탄생’이라는 거대한 세계적인 물결을 막을 뾰족한 수도 없고요.

광고3) 랜드로버(Land Rover)
사물은 보는 이의 눈에 따라 달라 보입니다. 정작 위에 올라가 내려다보면 웬만한 고층빌딩 옥상에서의 시각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아찔한 그랜드 캐년이 고속도로로 보이고,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장대한 폭포도 그저 도로의 홈 정도로 보인다는 과장입니다. ‘랜드로버는 4륜 구동 자동차라 길이 아닌 곳도 너끈하게 갈 수 있다’가 컨셉이었을 텐데 참 독특하고 뻔뻔하게 풀었지요?

광고4) 매치박스(Matchbox) 장난감 자동차
짐작하시다시피 매치박스(Matchbox)는 장난감 자동차 브랜드입니다. 그런데 자동차가 길이 아닌 음식 접시 위로 지나간 까닭은? 카피를 보니 이유를 알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자동차는 “길이어도 좋다, 길이 아니어도 좋다(옛날 쌍용 자동차 카피였나요?)”는 오프로드 에디션(off-road edition)이거든요. 프랑크푸르트의 크리에이티브 팀이 장난기 어린 시각으로 생각해낸 아이디어. 명함에 카피라이터라고 적혀 있다고 카피를 언제나 길게 쓸 필요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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