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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상품이 아닌 문화를 팔라

2006-01-26


최근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이 복잡해지고 다양해짐에 따라 문화라는 단어가 과거에 비해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두손문화’라 일컫는 DIY문화, 사진찍기 열풍에 따른 디카문화 등 집단적으로 공통적인 생활양식과 소비패턴을 보이는 곳에 문화는 쉽게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문화의 본래 개념은 생각처럼 단순하지만은 않다. 세계적인 문화이론가 윌리엄스(Williams)가 문화를 가리켜 ‘가장 난해한 단어 중 하나’라고 지적한 것처럼 실제로 문화의 개념은 학자들도 그 정의를 쉽게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문화의 정의를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사람이 만든 것임을 강조하는 ‘산물문화’로서의 정의이고, 두 번째는 외부 물질세계를 강조하기 보다는 정신세계로서 ‘사고’를 강조하는 ‘사고문화’로서의 정의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 두 가지 문화에 대한 정의의 절충점이라고 할 수 있는 ‘상징문화’이다.

쉽게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최근 유행하고 있는 웰빙의 경우에는 산물문화에 해당하는 웰빙 관련 제품들이 있다. 스포츠 센터나 유기농 야채 등 다양한 건강관련 제품들이 웰빙에 있어서의 산물문화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웰빙에 담겨있는 철학은 깊이 들어가 보면 건강한 삶은 기본이며, 좀 더 나은 프리미엄 생활을 추구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철학이 웰빙이 가지고 있는 사고문화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두 가지의 문화가 ‘웰빙’이라는 하나의 상징문화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웰빙 문화의 예처럼 결국 문화는 산물과 사고 그리고 상징에 의해서 소비자의 생활양식으로 자리잡게 된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기업의 마케팅 과정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

자사 제품이 가진 철학을 브랜드에 담아서 소비자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마케팅 활동을 포괄적으로 문화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제품은 바로 산물문화이며 제품이 가지고 있는 철학은 사고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제품의 철학이 상징화 과정을 거쳐서 소비자들에게 전달되는 브랜드는 바로 상징문화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패션 업체인 베네통은 자사의 철학(사고문화)인 인류애와 편견 타파를 표현하고자 ‘United Colors of Benetton’이라는 브랜드 슬로건(상징문화)으로 독특한 색채와 디자인을 담은 제품(산물문화)을 출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기업이 문화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창출하여 새로운 수요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제품과 자사의 철학을 얼마나 잘 브랜드화해서 나타내느냐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브랜드가 자연스럽게 문화를 형성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생활양식들은 일시적인 열풍에 지나지 않는 유행을 넘어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어서 살아남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시대에 따라 제품과 그 제품에 담긴 철학이 중요한 때가 있었다. 산업화 초기에는 누가 먼저 기술적으로 뛰어난 제품을 만드느냐가 우선시되는 시대였다면, 그 이후에는 누가 먼저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느냐가 관건인 시대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기술력이 비슷해지고 기업의 철학 즉, 비전의 차별화가 없어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제는 제품과 자사의 철학을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어 하나의 생활양식, 즉 문화로 자리잡게 하느냐가 핵심인 시대로 돌입한 것이다. 즉, 지금까지의 경쟁우위 요소였던 제품 차별화만으로는 부족하여 상품에 포함된 문화를 판매함으로써 고객의 로열티를 얻어내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처럼 기업이 문화를 상품화하는데 있어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마케팅의 기본 원리를 활용한 문화 마케팅의 성공 전략을 짚어보자.

기업은 타깃 집단의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공통적인 그 무엇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연령, 소득 등과 같은 인구 통계적 특성을 통한 시장 세분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 국내의 많은 브랜드들이 단순하게 인구 통계적 특성으로 타깃을 구분하는 경향이 많다.

실제로 최근 국내 모 마케팅 조사업체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패션 업체의 55%는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방식에 의한 시장 세분화 방식에 공감하고 있으나 아직도 시장 조사 비용, 마케팅 전략 실행 능력 부족 등으로 인해 연령 등과 같은 인구 통계적 변수를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예컨대, 여성 정장의 경우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의 전문직 여성을 타깃으로 하며, 대부분의 소비자가 올해 유행하는 컬러에 수긍하고, 중고가로 포지셔닝하면 일정한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제품 광고 및 매장 진열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연령에 따른 타깃의 구분은 가장 보편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집단 구분에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사회가 점점 다원화되고 개인의 개성이 중요시 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전통적 시장 세분화는 문화 마케팅에 적합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기업이 문화적 관점에서 고객을 세분화하게 되면 자사의 제품 및 서비스 성격을 명확히 대응시킬 수가 있다. 바로 문화를 상품에 투영시킬 수 가 있는 것이다.
스포츠 용품 업체인 아디다스의 경우 타깃 고객의 라이프스타일 방식에 따른 시장 세분화 기준을 효과적으로 적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전문 스포츠인 그룹인 ‘아디다스 스포츠 퍼포먼스’, 유행 추종형 고객인 ‘아디다스 스포츠 스타일’, 아마추어 스포츠 고객인 ‘살로몬’, 골프 플레이어 그룹인 ‘테일러 메이드 아디다스 골프’, 고품격 고객인 ‘아디다스 스포츠 헤리티지’ 등 크게 다섯 가지의 라이프스타일로 타깃을 구분한 다음, 각각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서 유동적인 제품 라인과 마케팅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예컨대, 아디다스는 유행 추종형 고객인 ‘아디다스 스포츠 스타일’ 비중이 높은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스타마케팅 강화, 스포츠 동호회 및 학교 체육활동 지원 등 다양한 제품 홍보 및 판촉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문화를 판매하는 중심에는 브랜드라는 상징물이 있고 그 브랜드의 중심에는 소비자가 있다. 소비자 없이 브랜드는 만들어지지 않으며, 이는 곧 소비자 없는 문화마케팅은 의미가 없음을 의미한다. 기업은 문화적 관점에서 소비자의 의견과 제품에 대한 평가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소비자의 피드백이 곧 자사 브랜드를 하나의 문화로 만들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피드백의 적극적인 반영은 그들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패션업체인 아르마니는 끊임없는 시장조사, 고객 의견 수렴을 통해 아르마니 고유의 새로운 고급 의류문화(New Noble Style)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르마니 콜레지오니는 부유하지만 합리적인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아르마니 익스체인지는 아르마니만을 고집하는 젊은 매니아 층을 형성하였다. 이와 같은 브랜드 확장의 성공에는 CEO겸 디자이너였던 아르마니의 소비자와의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 노력이 있었다. 아르마니는 사업 파트너이자 마케팅 책임자였던 갈레티오가 1985년에 사망한 후 매출이 급감하자 소비자들이 진정으로 자사 브랜드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 매년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전 세계만 여명의 소비자 인터뷰를 통해 패션 트렌드를 읽고 아르마니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소비자들이 원하는 아르마니는 여성스러운 실루엣의 남성복이라는 제품 컨셉을 도출할 수 있었다. 소비자와의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 활동이 디자인과 신제품 개발로 연결되어 결국 그들의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기업들은 보통 경쟁사를 분석할 때 동종 업계의 몇몇 기업을 선택하여 조사하며 그들만을 의식한 마케팅 활동에 얽매이기 쉽다. 하지만 유사 경쟁사의 가격 전략, 판촉 활동, 제품 출시 등에 대한 민감한 대응은 오히려 출혈경쟁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오히려 기존 사업 관행에 집착하여 변화를 유도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기업들은 신생기업, 틈새시장을 겨냥한 기업의 제품 변화에도 주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문화 마케팅에서는 이러한 동종 업계로 한정된 경쟁 패러다임에 구속되어서는 안 된다. 소비자를 라이프스타일에 따라서 세분화한다고 할 경우 라이프스타일에 관련된 모든 브랜드가 곧 자신의 경쟁사가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스포츠를 즐기는 소비자에게 있어서 SUV나 스포츠 용품, 스포츠 센터 등은 모두 비슷한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별도의 경쟁사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소비자의 한정된 소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경쟁에서 어떻게 하면 확실하게 우위를 점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 서비스는 어떤 다른 서비스를 대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시장을 바라보는 인사이트가 필요하다. 흔히 신상품에 대해 이루어지는 시장조사에서 간과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소비자의 한정된 소득을 둘러싼 경쟁이다. 자사의 제품이 시장에 나왔을 때 어떤 욕구 충족을 둘러싸고 누구와 경쟁을 해야 하는지를 폭 넓게 바라보는 시각이 부족하다 보니 시장수요의 면밀한 측정이 어려운 것이다.

스타벅스의 성공은 문화 마케팅에서 경쟁의 경계는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스타벅스가 판매하는 커피는 커피 산업에서는 여타 커피숍이 경쟁 브랜드이겠지만 스타벅스가 제공하는 공간은 사람들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데이트를 한다는 점에서 영화관, 서점 혹은 기타 만남의 장소와 경쟁관계에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스타벅스는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하여 출판업까지 진출하였다. 고객이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공간에서 책을 읽는 라이프스타일을 적절하게 활용한 것이다. 또한 최근에는 HP와 합작하여 음원 사업까지 진출하였다. 스타벅스 고객에게 있어서 커피를 마시면서 음악을 듣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생활이었기 때문이다.

문화 마케팅에는 소비자와의 접점이 중요하다. 이는 소비자와 브랜드가 만나는 곳이 바로 문화가 형성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비자와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매장이 중요하며 소비자와 직접 접촉하는 매장 직원의 역할이 기업 매출에 크게 영향을 준다. 최근 소니, 나이키 등 해외 유수의 기업들이 매장 직원에게 자사의 브랜드 스토리, 고객 응대 방식 등과 관련된 마케팅 교육을 강화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제품, 자사의 철학, 브랜드 그리고 이를 접하는 소비자 모두 함께 숨쉬는 매장이야 말로 진정한 소비자와의 접점이며 바로 이곳에서 문화마케팅의 빛이 발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매장을 단순히 제품 판매의 장소로 생각하지 말고 문화 전달의 장소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최근 BMW는 자사 매장에서 라이프스타일 샵(Shop)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BMW로고가 붙은 의류에서 생활 소품에 이르기까지 라이프스타일에 관련된 다양한 제품을 소비자에게 선보이고 있다. 물론 생활 소품들은 실제로 주력 판매 아이템은 아니다. 하지만 BMW는 자사가 추구하는 문화는 바로 이러한 것이라고 소비자가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BMW의 라이프스타일 샵에서 회사가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보면서 공감대를 느끼고 점점 동화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기업들이 문화를 광고, 판촉 등의 수단으로 활용하여 자사의 제품과 서비스에 문화 이미지를 담아내고자 하는 문화 마케팅 활동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는 공연, 전시회 등 단순한 문화행사의 후원에서부터 시작하여 ‘생활문화기업’이라고 직접적인 광고를 하는 사례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문화 마케팅은 앞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단순한 개념은 아니다. 우선 문화라는 것이 동시대 사람들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업은 문화를 매개로 브랜드와 소비자의 유대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하고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제품과 기업의 철학, 브랜드가 동화되어 생활의 일부분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브랜드를 삶 그 자체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문화 마케팅의 핵심요소이며 마케팅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글/박정현 연구원(LG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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