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8-07
매년 여름이 되면 미국 극장가는 휴가철 관람객을 겨냥한 각종 블럭버스터 영화들로 부산하다. 2003년도 예외는 아니어서 대표적인 것만 들어도 워너브라더스의 터미네이터 3 (Terminator III, 07/02), 유니버설픽처스의 헐크(The Hulk, 06/20) 등이 각 제작사의 2003년 텐트폴(tentpole: 폭발적인 인기로 엄청난 흥행을 예견하는 영화)로 대대적인 홍보 캠페인과 함께 속속 극장가에 등장했다.
하지만 올 여름 화제는 역시 지난 7월에 개봉한(국내에서는 9월초 개봉 예정) 월트디즈니의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 펄의 저주 (Pirates of the Caribbean: The Curse of the Black Pearl)”(이하 “캐리비안의 해적”)이다. “진주만(Pearl Harbor)” 프로듀서인 제리 브룩하이머(Jerry Bruckheimer), “링(Ring)”을 감독한 고어 버빈스키(Gore Verbinski)(그림 1) 영화로 다른 메가급 영화들이 모두 기대 이하의 흥행 수준을 보이는 가운데 이 영화만이 유독 흥행 순위 2위를 3주째 고수하며 박스오피스에서만 대략 1억8천만 달러 (7/31 현재)을 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보다 앞서 개봉된 헐크(1억3천만 달러)와 터미네이터 III(1억4천만 달러)의 수입을 웃도는 숫자로 제작비를 제외한 순수익만 벌써 5천만 달러를 넘어서 있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예상치 않은 인기 비결은 여러 가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인자는 역시 이 영화가 디즈니랜드의 테마 파크(theme park), “캐리비안의 해적(Pirates of the Caribbean)”(그림 2)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해적 및 해적선, 포격 및 폭발 등이 난무하는 생생한 무대와 무시무시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35년 동안 관람객의 흥미를 끌어온 이 파크의 테마(theme) 자체가 불멸의 오락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로듀서인 제리 브룩하이머(Jerry Bruckheimer)(그림 3)는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세트 및 소품, 캐릭터 등등이 모두 “테마 파크의 제작 컨셉을 담당했던 마크 데이비스(Mark Davis)의 오리지널 스케치 및 컨셉 드로잉에 기초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해적선의 생김새는 물론이고 해적 마을, 해적들의 생활상, 해적선이 정박하는 항구 등등... 영화의 이곳 저곳에 테마 파크에서 보고 경험한 바를 기억하게 하는 요소들이 널려 있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은 해적선 “블랙펄”을 타고 노략을 일삼는 해적들이 아즈텍 골드(Aztec Gold)를 훔치는 바람에 받게 된 저주에서 벗어나고자 벌이는 로맨틱 코메디 액션 영화다. 갖가지 해적들이 엄청나게 등장하는데, 대머리 해적에다 나무로 만든 눈을 끼고 다니는 해적, 흉으로 얼굴과 몸을 장식한 해적 등등 그 모습이 각양 각색이다.
또 이들 해적들은 전혀 감각을 느끼지 못하며 달빛을 받으면 썩은 살점들이 여기저기 말라 붙은 흉칙한 모습의 해골들로 변하는 산 송장과 같은 존재다. 독특한 것은 이들 해적들이 해골로 변하는 양상이다. 늑대인간의 경우처럼 달빛을 받으면 갑자기 늑대로 완전히 변화하는 것이 아니고 달빛을 받은 부분만 해골로 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특성은 영화 속에서 극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해적들로 하여금 달빛과 움직임에 따라 해골과 해적 사이를, 골적 골적, 왔다 갔다하게 해 그렇지 않아도 정신 없는 격투 장면을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연출하고 있고 영화 내내 흐르는 코믹하면서도 으시시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들 해골들이 해적들 만큼이나 개성적이라는 점이다. 골격도 다르고 두건 및 걸친 장신구, 의상이 달라 해골만 보고도 어떤 해적의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머리 핀텔(Pintel)의 해골은 해골도 머리부분이 훤하게 벗겨져 있고 캡틴 바보사(Barbossa) – 죠프리 러시(Geoffrey Rush), 캡틴 잭 스패로우(Jack Sparrow) – 자니 뎁(Johnny Depp) 해골은 목소리뿐만이 아니라 그 몸짓과 풍기는 느낌까지가 그대로 실제 캐릭터의 판박이다(그림 4).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비주얼 이펙츠는 비주얼 이펙츠 수퍼바이저 존 놀(John Knoll), 애니메이션 수퍼바이저 할 힉켈(Hal Hickel)(그림 5)을 중심으로 구성된 ILM(Industrial Light & Magic) 팀 작품이다(그림 6). 총 200명 스텝에 25명의 애니메이터가 동원되어 대략 300개의 VFX 샷을 만들어냈는데 주로 캐릭터 제작과 그의 애니메이션, 그리고 관련 매트페인팅에 집중돼 있다.
해골 모델링은 각 종 스케치와 애니메트로닉스 표본을 토대로 모든 해골의 기준이 될 해골 표본을 구상하는데서 시작한다. 구상이 서면 의상과 메이컵으로 차려 입은 각 배우들을 찍어 그 사진과 해골 표본을 토대로 VFX 아트디렉터 아론 맥브라이드(Aaron McBride)가 각 등장인물들에 맞는 해골들을 그리게 되고, 그에 대한 고어 버빈스키 감독의 승인이 떨어지면 배우의 몸 전체와 얼굴을 직접 3D 스캔하는 작업을 하게 되는데 이러면 CG 모델링 작업의 기초 자료를 준비하기 위한 과정이 모두 끝난 셈이다(그림 7).
CG 모델링은 배우를 스캔한 정보를 토대로 해골 표본을 각 캐릭터에 맞게 변형 및 수정하는 작업으로 시작한다. 각 배우들의 골절 위치 및 골격 크기에 맞게 기본 뼈대 구조를 조정해 해골들의 개성화 작업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이다.
그 작업이 끝나면 뼈대 위에 피부를 붙히는 작업을 하게 되는데 썩어 비틀어진 피부 묘사는 우선 칠면조 육포를 스캔한 텍스처 맵을 입히고 부분적으로 텍츠처 및 투명도를 조정하거나 직접 그려넣는 방법을 이용해 캐릭터들의 미묘한 차이와 변화를 묘사해 내는 과정을 밞았다(그림 8).
이렇게 뼈대와 피부가 만들어지면 그 위에 의상 및 장신구 등을 더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여기에는 머리칼에 촘촘이 달린 장신구, 귀걸이 및 목걸이, 칼 등이 의상들과 만들어내는 구겨짐과 겹쳐짐 등이 해골과 자연스럽게 시뮬레이트되도록 의상과 몸에 지닌 소품들이 서로 연관성있게 반응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사용된다.
ILM이 사용한 해골의 애니메이션 테크닉은 여러 가지다. 제작사 측에서 애니메트로닉스(Animatronics: 컴퓨터로 조정되는 실시간 모델)와 스톱 모션(Stop Motion: 동작의 변화를 일일이 찍은 사진의 애니메이션) 포토그래피를 사용하지 않기를 결정함에 따라 모션 캡처 및 기타 프리폼 셰이프 애니메이션(free-form shape animation: 두가지 버전의 3D 모델을 두고 한 모델에서 다른 모델로 변형하는 테크닉, 즉 모핑), 모션 다이내믹스 기술(골절마다 다양한 힘을 적용해 실제 물체와 같은 모션을 시뮬레이트하는 기술)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 기술이 동원되었다.
그러나 해골의 애니메이션과 관련해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영국 해군과 해골이 선상에서 싸우는 전투 장면이다. 해골들 움직임을 일괄적으로 통제하는 통상적인 모션 콘트롤 테크닉(Motion Control) 대신 실제 촬영 장면에 기초해 캐릭터 및 카메라, 라이팅을 애니메이션하는 방법으로 접근한다. 장면의 생생함을 표현하는데 “모션이 통제된 듯한 어색하고 맥빠진 화면을 연출하고 싶지 않아서”라는 것이 이유인데...
간단히 그 과정을 살펴보면, 일단 해적과 영국 해군이 싸우는 장면을 촬영해 캐릭터들의 움직임 및 카메라, 라이팅 참고 자료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다음 해적과 해군들이 각각 혼자서 싸우는 장면을 찍는데, 이 때 카메라는 이들 장면과 독립해 패닝 및 클로즈업 등을 실제 대상이 없는 상태로 촬영하게 되고 그 위치 및 각도를 참고로 해골들을 애니메이트 해 영화 속의 빈 공간에 합성하는 것이다(그림 9).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비주얼 이펙츠 장면이 차지하는 비중은 요즘 나오는 굵직한 영화에 비하면 극히 적다. 해골이 나오는 장면 외에는 해적선과 관련한 바다의 안개나 해적선 묘사에 부분적으로 사용된 정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비주얼 이펙츠 해골의 경우도 해골이 움직인다는 사실 때문에 비실사 객체로서 인식 되는 것이지 “비주얼 이펙츠로서의 비주얼 이펙츠”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실제 캐릭터의 행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등장인물과 분리해 인식 되지 않기 때문이며 같은 이유로 “캐리비안의 해적”에 등장하는 비주얼 이펙츠 해골들은 해적들 만큼이나 개성적이고 독특한 하나의 캐릭터로서 인식되기 때문이다.
또 대부분의 장면에서 실사와 비주얼 이펙츠 해골은 길어야 수초 간격으로 해골과 해적을 넘나든다. 해골이다 싶으면 해적으로 변하고 해적이다 싶으면 해골로 변해 비주얼 이펙츠고 뭐고 구분할 기회조차 없고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 없는, 말 그대로 현실과 꿈을 넘나드는 환상의 세계를 경험하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캐리비안의 해적”의 비주얼 이펙츠는 극히 사실감 있는 이펙츠를 통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환상의 세계를 실제 화면이 아니라 머리 속에 시각화 해주는 비주얼 이펙츠의 또 다른 차원에 접근하고 있다 할 수 있다. 또 바로 이런 매력 때문에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은 싱거운 액션 코메디에서 벗어나 로맨스가 있고 모험과 환상, 꿈이 있는 로맨틱 코메디 액션 영화로서 관객들의 호응을 받고 있는 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