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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영상 | 리뷰

순수한 내면으로의 환상여행, 그 탄생기

2002-01-24

2002년 1월 11일 <마리이야기> 가 개봉하던 날은 우리 한국애니메이션사에 한 획을 긋는 날로 기억될 것이다.
그간 한국애니메이션의 발자취를 살펴보았을 때 우리는 이제서야 제대로 된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에 스스로 놀라워하고 있다. 블루시걸과 아마겟돈, 런딤, 별주부 해로 등 수많은 애니메이션의 타이틀 속에서 성공한 모델을 찾기는 그리 쉽지 않다.
특히나 어린이를 주 타겟으로 하지 않은 성인대상의 애니메이션이란 스스로 실패를 자초하는 길이라 여겼다. 그래서 엄두도 못내고 사장된 기획서들과 아이디어들이 허다했다. 장편에서 TV시리즈로 시리즈에서 OVA로 우리는 모험과 도전보다는 현실적인 자본의 원리에 순종하며 지난 몇 년을 탐색했다. 때론 기술력을 앞세우며, 때로는 상업적 전략을 앞세워서, 때론 거품으로 치장한 허풍을 떨며 자초해온 애니메이션의 텃밭은 마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황폐한 상태였고 플래시와 캐릭터들이 거리와 컴퓨터를 점령하고 있었던 때이다. 마리는 그렇게 공룡들이 죽고 새로운 생존방식을 실험하는 2002년도에 적자생존의 살벌한 정글로 조용히 그러나 당당히 나타났던 것이다.

우리는 <마리이야기> 가 만들어지던 처음으로 돌아가 현재 개봉이후의 마리의 모습까지 더듬어가며 신화가 아닌 진실된 나날로 이루어진 제작 여행기를 같이 가보고자 한다.

<마리이야기> 의 시작은 1998년으로 거슬러 간다. 당시 이성강 감독은 앙시애니메이션 페스티발에서 <덤불 속의 재> 본선에 올라 주목을 받았던 때로 차기작으로 옴니버스 형식의 애니메이션을 구상하게 되는데 그중 한편이엇던 <하늘을 나는 원숭이> 가 지금의 <마리이야기> 의 기본 모티브가 되었던 것이다.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숲속에서 길잃은 소년이 소녀를 만나 즐거운 한때를 보낸후 전쟁중인 세상으로 내려왔을 때 그 소녀가 하늘을 나는 원숭이라는 것을 알게된다는 이야기로 이때만 해도 한편의 짧은 동화적인 이야기에 불과했다. 98년 10월에 기획이 시작되어 메인스텝이 구성되면서 초기시나리오 및 설정에 들어가고 이성강 감독이 만든 첫 <마리이야기> 데모가 만들어지고 씨즈엔터테인먼트가 제작사로 결합하여 본격적인 기획에 돌입한 후 1년 6개월의 시나리오 작업, 캐릭터 디자인, 콘티제작, 스탭구성 등 기획과정을 거쳐 메인작업인 프로덕션 과정에 1년 4개월 가량을 투자해 총 제작기간 3년여를 들여 완성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탐험가와 숲에서 사는 마리의 만남은 판타지가 주를 이루었지만 하나로 엮어지면서 숲은 어촌으로, 탐험가는 남우로 바뀌어 일상적 이야기가 강해지는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아래의 글은 마리이야기 사이트의 작업일지에 마케팅 담당자가 정리해 올린 글로 초기의 기획과정과 투자유치 및 마케팅 계획을 자세히 알 수 있다.

“시나리오의 장편화와 함께, 기존 캐릭터들을 장편 애니메이션에 맞게 재설정하는 작업, 새로운 캐릭터들의 모델링, 장편에 사용될 각종 배경들의 모델링 작업, 외주 업체에 의존하지 않은 제작 시스템 - 애니메이터 확보 등- 의 구축 등 제작 공정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작업과 함께, 투자 유치의 과제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지요.
기획 과정에서 'SICAF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 기획 공모전'에 출품되어 최우수 기획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한 <마리 이야기> 의 제작비 전액 투자 유치를 위해, 필름용 데모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에 필요한 비용은 본 영화의 기획성을 타진한 ‘무한 기술투자'에서 제공했으며, 99년 하반기에 시작하여, 2000년 2월에 완료 되었습니다.
<마리 이야기> 의 핵심을 집약하여, 약 3분 30초의 분량으로 제작된 데모 필름을 통해, 기본 이야기와, 음악, 영화의 질감등을 기본적으로 판단 할 수 있었던 터라, 데모 완성 후 전체 제작비의 투자 유치는 어렵지 않게 성사됐어요. (투자 : 아이 픽쳐스)
투자 유치가 결정 나는 동안 , 지속적으로 시나리오 확장/수정 작업을 진행했으며, 극장용 애니메이션 제작이 근간이 된 부가 사업- 캐릭터 사업, 출판, 게임 개발 등- 추진을 위한 기본 조사 작업들도 함께 추진했답니다.“

애니메이션이 형식의 예술이라고 본다면 <마리이야기> 도 예외는 아니다. 제작형식과 기법은 2D 셀 애니메이션 기법을 차용하면서도 2D와 3D를 교묘히 합성하여 만든 새로운 디지털 애니메이션 제작방식을 창출하고 있다.
배경은 3D로 모델링하여 2D로 전환하여 리터칭을 하였으며 그 위에 얻어진 2D 캐릭터와 동화들은 벡터방식으로 이미지를 구현하는 플래시(Flash)를 사용하여 퀄리티와 제작의 효율성 동시에 고려했다.
이러한 제작방식을 선택한데는 2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거대한 제작 시스템이 아닌 중소규모 제작시스템에서 세분화 된 작업분장보다는 컴퓨터제작 방식을 중심으로 한 작화와 디지털작업의 통합적 운용과 애니메이터의 작업 효율성을 위해 개인용 제작시스템으로 메킨토시를 선택하고 웹애니메이션의 범용적 툴인 플래시를 활용하였다는 것이다. 특히 벡터방식을 기반으로 하는 플래시의 선택은 애니메이터에게도 쉽게 적응하여 작업이 가능하게 하였으며 실제로 1주일 정도의 적응 시간으로 컴퓨터를 모르던 작업자도 작업을 원활히 수행하였다고 한다. 또한 작화시 작은 차이에 의해 생기는 선떨림 등이 거의 없으며 수정작업 또한 매우 수월하였다고 한다.
둘째, 아트웍을 보면 알겠지만 셀(Cell) 기법의 평면적이고 건조한 느낌을 없애고 파스텔톤의 윤곽선 없는 부드러운 느낌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면서 동시에 사실적 공간적 처리를 위해 3D로 배경을 제작하여 메마른 질감과 느낌을 2D이미지로 세밀하게 리터칭하여 마무리함으로써 시각적인 면에서 수작업의 수채화 또는 유화를 보는 듯한 자연스러운 느낌을 만들어냈다. 즉, 이를 통해 기존의 만화적인 애니메이션과는 차별성을 가지는 사실적이면서도 풍부한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30명 규모의 컴퓨터작업이 가능한 애니메이션 전문인력을 필요로 하였으며 또한 연출부와 매우 긴밀하게 협조해야만 가능한 새로운 제작방식의 시도였다.

이성감 감독은 이러한 제작방식이 컴퓨터 작업을 잘 아는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대규모 하청업체에서 작업해온 사람들에게는 접근하기 힘든 방식이었을 거라는 말을 통해 어느 정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었다.

이러한 독특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마리이야기> 는 파스텔톤의 색상으로 솜사탕같이 금방 사라질 것 같은 부드러운 화면에 자연스러운 캐릭터들의 동작등 그려진 배경과 동화가 하나로 어울어지는 곡선적 처리는 작품전체의 부드러운 이미지를 살려내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또한 환타지와 리얼리티를 동시에 구현하고자 했던 컨셉에 따라 사실적인 표현을 위해 다양한 노력들을 하였다. 그 중에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콘티가 완성된 후 영화에서 장소 헌팅을 하듯 애니메이션에서는 작품에 주된 배경과 공간이미지 설정을 하는데 이를 위해 마리팀은 서울 백련사사 주변의 주택가와 포항근처의 감포 앞바다와 어촌을 실제로 배경의 주된 장소로 사용하였는데 현지의 실사촬영을 통해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시나리오의 공간적 리얼리티를 복원해 냈던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캐릭터의 리얼리티 구현에도 그대로 적용하여 메인 캐릭터인 남우와 준호, 남우의 어머니인 효진과 그를 좋아하는 경민, 할머니 등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마리팀의 스텝이거나 그들의 주변에 있는 친근한 일상적 인물들의 이미지를 옮겨놓음으로써 만화체가 가지는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러운 캐릭터를 창출할 수 있었다. 여기에 선녹음방식으로 진행된 녹음장면을 녹화해 연기적 측면과 입모양을 고려한 립싱크 작업을 함으로써 성우와 캐릭터를 일치시키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여기에 보다 자연스러운 표정과 액션연출을 위해 캐릭터와 비슷한 일반인을 캐스팅하여 장면에 맞는 연기촬영을 하여 이를 참고로 애니메이터들이 원화와 동화를 잡아내는 기술적 과정을 도입 스테레오타입의 타이밍과 액션표현을 최대한 극복하고 실제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동작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모든 작업을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12프레임(frame)의 일반적 애니메이션 타이밍표현과의 절충을 꾀 할 수 있었던 것이라 본다.
이러한 손이 많이 가고 다리품을 많이 팔아야하는 작업방식 때문에 옥수동 스튜디오의 30여명의 애니메이터와 스탭들은 오랜 제작기간 내내 <마리이야기> 의 탄생을 꿈꾸며 힘들고 어려운 작업을 진행하였는데 초기에는 스탭과 감독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서로 맞추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3D작업은 일반적으로 사실적인 표현을 위해 디테일한 작업이 많은 편이지만 이 작업에서는 사실적 표현보다는 캐릭터와 매치될 수 있도록 2D적 특성인 단순화와 평면적 표현을 해줘야하는데 그러한 작업 스타일이 쉽게 나오지 못한 것 등이 한 예이다.

<마리이야기> 가 본격적인 기획에 들어가면서 시나리오 등 초기 기획에서 변화가 뒤따랐지만 이야기의 기본설정은 그대로 가져가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물론 이 때문에 완전히 엔터테인먼트적인 영화로 변신하기보다는 예술성과 작품성을 고려한 보편성에 무게를 두면서 수정 보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마리이야기는 극장에서 대박이 아닌 또 다른 면에서 평가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마케팅 프로모션과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에 있다.
작품의 완성도 만큼이나 세일즈 프로모션에 신경을 썼는데 출판사업, 캐릭터사업, 모바일게임사업, 음반사업, 그밖에 국내외 판권사업을 하나로 묶어 <마리이야기> 의 상품적 가치를 다양화해 극대화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대표적인 예가 음반발매로 이병우가 현악 스트링 앙상블의 선율과 클래식 기타와 피아노의 서정성 짖은 음색과 목관악기와 시기사이저의 몽롱함 등이 어우러진 O.S.T 및 성시경의 ‘내안의 그녀’ 뮤직비디오가 그것으로 유명 아티스트의 결합으로 보다 효과적인 대중적 반응을 얻고있다.
또한 출판사업중 제작과정에 대한 보고서형식의 백서를 출간할 예정이어서 향후 <마리이야기> 를 애니메이션 제작의 훌륭한 모델로 활용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이쯤에서 정명근 어시스트 프로듀서의 말을 통해 <마리이야기> 를 맡아 진행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목표로 가진 것이 무엇이었나를 들어보았다.
“일반적인 상업적 논리와 시장을 전제로 영화쪽에서 적용해왔던 기준에 비추어 동등한 평가와 적용을 받는 것이다. 진정한 성공은 그 이후의 일이다.” 라는 뼈있는 한마디였다.

애니메이션 전문 배급사와 마케터가 없는 상황에서 장편애니메이션이 극장에 제대로 걸리고, 캐릭터 사업과 각종 O.S.T 및 비디오 등 판권활용 및 해외판매 등 세일즈 프로모션을 잘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로 <마리이야기> 또한 예외는 아닐 수 없다.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의 판타지가 겁을 주고 디아더스의 복병을 만나며서 한국영화인 나쁜남자에게까지 일격을 당하는 가운데서도 서울중심가 개봉관을 20여군데를 잡아들어가 길게는 2주 이상까지 걸릴 수 있었다는 것조차 한국 애니메이션사의 새로운 기록이며 그 가능성을 확보한 셈이라 할 수 있다.

<마리이야기> 이후의 모습은 항간에 이후 팀이 해체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와 달리 새로운 작품기획에 돌입한 상태였다. 장르는 무협코믹으로 보다 대중적이며 상업적 논리를 잘 활용한 작품이 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꺼내놓는 이성강 감독의 얼굴에 자신감이 엿보였다.
시스템과 기술, 자본을 모두 갖추고 있는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어쩌면 <마리이야기> 같은 유년의 순수열정이 우리내면에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닌가 반문하면서 옥수동 작업실을 나섰다.
12프레임의 보통의 속도감으로 사람내음 나는 일상 속에 따스한 유년의 세계를 여행하고 돌아온 남우와 준호는 문득 나 자신 또는 우리들의 자화상으로 오래 남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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