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7-18
최근 해외파 영화학도 또는 애니메이터들이 국제무대에서 수준 높은 작품으로 그 기량과 창의력을 인정받으며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특히 연예계의 세계적인 권위를 내세우는 Academy Award의 한 부문인 29회 Student Academy Award는 미국에서 학생 영화부문에 가장 영애로운 상으로 매년 300여개 대학에서 참가해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행사로 올해엔 32명 부문별 작품상 후보에 한국계 영화인들이 5명이나 선정되어 해외파 작가들의 놀라운 활동을 반증하고 있다.
그 중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에 오른 작가 조예원의 'Trilemma'는 3분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 여성이 가지는 복합적 내면의 갈등을 퍼핏 형태(flat character)의 단편 3D 애니메이션에 담고 있다. ‘평소 사회적, 도덕적 규범, 경제적 요건에 지배당하는 현실 상황에 대한 진실과 도덕적 되물음의 표현’이라는 작자 본인의 설명에서처럼 매우 진지한 테마를 가지고 실험적인 영상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6월 21일,23일 뉴욕에서 활동하는 독립영화 감독들을 특집으로 소개하는 방송국인 PBS(Channal 13)의 다큐멘터리나 실험적인 예술, 교육 등을 다루는 프로그램인 ‘릴 뉴욕’(Reel New York, www.thirteen.org/reelnewyok7/)에 작품이 방영되었으며 7월에는 ‘SIGGRAPH 2002' 아트 애니메이션 부문에 선정되어 텍사스 샌 안토니오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이밖에도 히로시마 애니페스티벌, Anima Mundi, Kalamazoo Animation Festival, Museum of Moving Image 등 다양한 곳에서 상영되었거나 될 예정으로 그 실험성과 작품 내용에 대해 미국 현지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다양한 반응과 관심을 끌어내고 있다.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Trilemma'의 작자 조예원(30)은 서울대학교에서 조소과와 산업디자인과 두개의 학부과정 및 동 대학원을 마친 직후 Time-Based Art(film, video, animation..)를 공부하고자 바로 뉴욕에 와서 SVA(School of Visual Arts)의 Computer Art에서 석사 과정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인 ‘Grahame Weinbren'의 비디오 수업을 들으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본 작품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쥴리아드의 무용과 교수와 작곡가 그리고 동료와의 공동작업 비디오 프로젝트에도 참여하는 등 실험적인 영상작업을 해오며 그 연관성을 가지고 졸업작품으로 'Trilemma'을 구상 제작하였고. 현재는 뉴욕의 Curious Pictures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광고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작품의 간단한 줄거리는 한 소녀가 상자를 들고 무한의 어두운 공간에서 외나무 다리를 건너면서 까닭 없이 소녀의 허파, 간, 콩팥 등이 서서히 하나씩 몸에서 나와 결국에는 온몸이 분해되어 어딘가로 떨어져 들고 있던 상자에 쌓인다. 이를 지켜보는 또 다른 자아가 걸어왔던 과정을 되풀이한다는 내용이다.
제목, ‘Trilemma'는 dilemma(딜레마)에서 twist된 언어로 세 개의 대립 요소들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주인공 소녀의 심리 상태를 암시하고 있으며, 환상(Illusion)속의 자신의 모습과 실제(Reality)의 모습 속에서 생기는 갈등 및 혼란의 심리적 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또한 작자는 현대사회의 인간 개개인의 역할모델(Role Model)이 존재하며 등장하는 소녀 캐릭터 또한 작자 자신의 ‘이상’이 아닌 ‘환영’으로써 사람들로부터 받아온 기대감과 자신이 거쳐온 상황(background)에서 오는 어떤 전형적인 모델에 따라가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껴왔으며 실제 자신의 모습으로는 이를 거부하는 존재감을 발견하며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자아의 모습을 ‘Trilemma'라는 세가지 요소가 대립하는 것을 암시하여 청중들로 하여금 찾아내도록 의도하였으며 실제로 몇 번의 스크린 과정에서 청중들은 제각기 다른 의견들을 내놨는데 각자의 경험을 토대로 상당히 상이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흥미로 왔다고 한다.
'Trilemma'에는 두 개의 보이는 캐릭터(a jaint She와 a small She)가 있고 한 개의 보이지 않지만 암시되어 있는 캐릭터가 있다. 또한 메인 캐릭터와 외나무다리, 무한한 공간의 대립, 스토리상의 세 개의 대립 등으로 구분하여 세가지 갈등적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고 작자는 전한다.
'Trilemma'는 총 제작 과정에 1년 4개월의 기간이 소용되었는데 제작과정별로 구분하여 보면 아래와 같다.
Pre-production: 3개월 - 스케치, 컨셉 디자인, 스토리보드
Production: 9개월- Rigging(Character set-up), 모델링, 렌더링 테스트
(최종 렌더링과 콤파지팅에 들어가기 전까지 모든 shot은 계속 바뀌어 졌다. 작업 초기에는 스토리 보드에 맞추어 작업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정해진 스토리 보드를 따르기 보다는 즉흥적인 Shot과 편집을 많이 함)
Post-production: 2개월 - 콤파지팅
'Trilemma'의 제작과정을 살펴보면 일반적인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일반적인 애니메이션 작업이 감독 1인 중심의 제작과정으로 이루어지는 다소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작업들이 많은데 'Trilemma'는 예술적인 경향이 강하면서도 작업초기 기획단계부터 개방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쥬리아드와 SVA 첫 번째 공동작업이었고 쥴리아드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중국계 미국인 Justine F. Chen을 만나 음악적 견해를 나누고 추상적인 동작(온 몸이 분해되는 장면)은 쥴리아드의 현대무용을 전공한 댄서들이 애니메이션의 Reference를 제공해 주는 등 영상과 함께 실험적인 사운드를 연출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작자가 뉴욕의 예술가과 함께 작업하며 열린 자세의 다양한 가능성들을 받아들이고자 노력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라 본다.
'Trilemma'는 작업 초기의 계획에서 벗어난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영감을 활용해 후반작업을 완성시켰다. 초기에 비디오와 컴퓨터 그래픽을 합성시키는 작업으로 구상하였다가 Full 3D Animation으로 제작방법을 변경하였던 점 또한 주목할 부분으로, 작업을 진행하면서 마지막 두 달 전까지 계속 Plot을 바꾸며 지도교수인 Perry Hoberman과 협의를 통해 스토리상 불필요하고 CG의 추상적 이미지를 약화시킨다는 판단아래 실사 촬영은 삭제하였다. 일반적인 3D 애니메이션의 입체감과 사실적인 텍스쳐 표현을 거부하고 Lotte Reigner의 퍼핏 모델 형태의 아이디어를 얻고 한지의 반투명한 이미지를 활용한 라이팅 효과를 최대한 살려 내면적 심리상태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실제로 두꺼운 종이로 2D 스타일의 모델을 만들어 캐릭터 구조 및 모델링에 참고하였으며 주로 사용한 툴은 Maya이며 컴포지팅은 After Effects를 사용하였다.
2D 스타일의 캐릭터로 Z방향의 3차원적 공간에서의 애니메이션이 제한적으로 Rigging(Character Set Up)에 많은 신경을 써 현대무용을 전공한 댄서들의 도움으로 평면적 캐릭터의 추상적인 동작 표현에 연출 완성도를 높였다고 한다.
[제작스텝]
스토리, 디자인, 애니메이션, 연출: 조예원
애니메이션 reference: choreographer - Laura Halm dancer : Laurel Lynch
음악 및 음향: Justine F. Chen
[인터뷰]
Q1: 디지털 미디어라고 할 수 있는 디지털 영상, 모션그래픽, 웹 아트, 컴퓨터 게임, 가상현실 등 매우 다양한 미디어 분야 중 컴퓨터 애니메이션에 대해 창작자로써 본인이 느끼는 매력과 장단점, 전통적 애니메이션(아날로그)과 현재작업과의 커다란 차이점은?
조예원: 저의 경우 디지털 비디오, 모션그래픽, 애니메이션 등에 관해 특정하게 미디어의 구분을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접근하는 방식은 약간의 방법의 차이지, 디지털 미디어의 큰 카테고리에 묶어 두고 싶습니다.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경우, 특히 영상 이미지에 대한 표현의 제한은 거의 없어 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애니메이션은 영화나 광고들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가능성을 보여 왔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컴퓨터 애니메이션만이 가지는 툴 자체가 줄 수 있는 장점을 이용한 내러티브를 더 공부하고 싶습니다.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스토리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묶어 두고 싶지 않습니다. 즉, 툴 자체의 핵심에서, 컴퓨터 애니메이션만이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경험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Media Lab의 John Maeda의 경우 컴퓨터를 하나의 수단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그 미디어가 가진 최대한의 가능성을 실제로 열고 있지 않습니까?
Q2: 'Trilemma'의 중요한 구상 모티브가 있다면 그리고 표현하고자 한 것은?
조예원: 평소 사회적, 도덕적 규범이나 경제적인 요건 등에 의해 무의적으로 지배 받고 있는 제 자신의 상황이 마치 줄이 달린 퍼펫 처럼 제 자신이 되고 싶지 않은 한 전형의 모습으로 조종당하는 느낌을 표현하고자 시작한 작업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생기는 진실, 도덕 등에 대한 제 자신에 대한 기본적인 되물음과 갈등의 상황을 표현한 작업입니다.
사회에서 주는 역할 모델에 대한 압력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의 일원으로서, 또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의 책임감이라든지, 또 교육적인 배경이나 환경에서 오는 기대감 등을 예로 들 수 있겠죠. 그러나 실제의 자신의 모습으로는 그러한 전형의 모습을 따라가고 싶지 않은 거부감이 존재함을 발견합니다. Trilemma는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자아의 모습을 표현한 작업입니다. 이러한 내부적 갈등의 표출을 신체가 갖는 상징성을 이용하여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간, 허파, 콩팥 자체가 상징성을 갖기 보다는 이러한 요소들이 점차적으로 신체 밖으로 튀어 나오는 행위 자체가 상징성을 갖는 다고 생각 합니다. 인체는 예로 부터 사회와 개인의 충돌하는 상징의 요소로서의 역할을 해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와 개인이 대립 되는 상황, 예를 들어, 고대에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죄를 지으면 교수형을 처한다든지, 현대에는 직접적으로 형벌을 목격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신체를 이용한 제도적인 종속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제 작업에서는 인체를 생물학적 입장에서 해석하기 보다는 하나의 사회와 개인의 충돌의 매개체로 해석하고자 간, 허파, 콩팥 등의 신체적 요소를 이용하였습니다.
Q3: 3D 애니메이션을 선택하였던 이유와 작품에서의 표현기법의 포인트는?
조예원: 페인팅, 조각 등의 순수 미술과 산업 디자인 등의 여러 미술 전공 관련을 접하면서 항상 시간이라는 요소가 가미된 작업, 즉, 비디오, 필름 등의 영상 작업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표현 기법에서는 한지를 연상시키는 텍스쳐를 주로 사용했고, 또, 한지에서 나오는 반투명의 그림자 효과를 이용하고 싶었습니다. 라이팅의 경우, 실제 퍼핏 극을 연상 시키는, 드라마틱한 효과를 연출하는 스팟라이트를 많이 사용 했습니다.
Q4: SVA에서 Grahame Weinbren에게 영향받은 것을 구체적 소개한다면?
조예원: Grahame Weinbren의 비디오 수업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일단은 내러티브를 디지털 미디어로써 접근하는 방식, 즉 미디어를 하나의 수단으로 간주하지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의 가능성을 가진 매체로 접근하는 방식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애널로그와 디지털 미디어의 차이에서 오는 새로운 내러티브의 가능성이 놀라왔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분에게서 받은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항상 스치면서 지나가는 스케치 같은 아이디어를 catch해서 발전시키는 능력 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수업 시간에 문득 스쳐지나 가는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얘기 했을 때 예리하게 그 부분을 잡아 내는 능력 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재료나 테크닉을 접목 시키기는 방법적인 부분 보다는 그것들을 수용하는 태도의 문제 인 것 같습니다.
그의 수업은 각 주 다른 주제로 진행되는데, 저의 경우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10명이 좀 안되는 클라스 메이트들이 모두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Q5: 쥴리아드와 SVA 공동작업 - 영상, 무용, 음악작업과의 공동작업과정을 통해 영역별 교감을 통한 색다른 영상을 창출할 수 있었을 텐데 이에 대한 작업자로써 직접 느낀 점은?
조예원: 일단은 그들의 비쥬얼 아트를 수용하는 태도, Open Mind 에 놀랐습니다. 실제로 쥴리아드에서는 댄싱과 음악전공의 학생들이 공동작업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시각 전공과의 공동 작업은 그들에게도 처음에라 작업 초 부터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저에게 animation reference를 제공해 준 Laura. Halm을 만난 것도 쥴리아드에서의 학기말에 음악전공을 하는 학생들과의 공동작업의 콘서트였습니다. 그들은 4살이나 더 어려서부터 자신의 전공을 해온 사람들입니다. 시각적인 작업을 그들의 언어로 해석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Laura나 Justine과는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 시켰습니다. 애니메이션 reference같은 경우, 제 애니메이션에서 팔과 다리들이 떨어지는 장면 등의 동작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실제적인 작업의 질적인 향상도 많이 도움이 되었지만, 그들과 작업하면서 디렉터로서 작업의 방향을 이끌어 나간다는 것이 많은 경험을 요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의견을 수용하면서 제 작업 방향에 맞도록 이끌어 나가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겠지요.
Q6: 향후 작업 계획이나 활동 계획은?
조예원: 문화계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성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러한 작업들에 대해 관객들과 의미를 공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습니다.
'Trilemma'는 동양적 그림자극 또는 종이인형의 형상적 이미지를 3차원 컴퓨터 기술에 접목해 현대인의 정체성의 문제를 상실한 신체를 통해 제기함으로써 신체의 회복을 통한 딜레마의 극복을 은연중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제작에 있어서도 분명 열린 형식의 가능성을 내포한 창작방식과 예술적 기량의 방향과 위치를 제시한 또 하나의 모델로 무엇보다 정체 되 있는 듯한 국내 창작자들에게 신선한 자극제로 제시될 것이라 기대해 본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