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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영상 | 리뷰

엄마찾아 마음 다해 부르는 길손이의 소망을 보다

2003-06-11

<오세암> 은 길손이 누이의 손을 이끌고 바닷가를 지나 마을로 가는 장면에서
“하늘처럼 생긴 물인데, 꼭 보리밭같이 움직인다.”라는 길손의 표현으로부터 시작된다.

붉은 단풍과 높은 산봉우리,
시골길 양 옆으로 펼쳐진 누런 논밭,
감나무의 홍시따기와 말뚝박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
소달구지를 얻어 탄 남매와 함께 펼쳐지는 늦가을 농촌의 사실적 정경들...
은 우리의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감사와 은혜의 계절, 5월에 우리는 극장에서 한편의 감동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났다.



스토리
다섯살배기 꼬마 길손이는 눈먼 누나 감이와 함께 엄마를 찾아 떠돌아다닌다.
단풍이 지는 늦가을, 길손이와 감이는 길에서 만난 설정 스님을 따라 추운 겨울이 끝날 때까지 절에 머물기로 한다. 심심해진 길손이는 온갖 장난으로 절을 휩쓸다가 외딴 암자로 떠나는 설정 스님과 함께 마음의 눈을 뜨는 공부를 하러 간다. 앞 못보는 감이가 엄마를 만나고도 놓쳐버릴까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엄마 얼굴을 모르는 길손이는 감이에게 마음으로 보는 법을 가르쳐주겠다고 결심한다.


<오세암> 은 원작이 튼튼한 말 그대로 작품성을 바탕으로 한 가능성 있는 작품이다.
동화작가, 고 정채봉 선생의 동명소설로 1985년 초판된 이래 10만부 이상이 팔린 스테디셀러이며 1990년 박철수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바 있기도 하지만 애니메이션으로는 처음 만들어졌다.
장편 애니메이션 <오세암> 제작을 맡은 “마고21”은 2000년 10월부터 약 석달간 인기리에 방영됐던 TV애니메이션 시리즈 <하얀마음 백구> 를 제작한 곳으로 이를 통해 한국형 가족용 애니메이션에 자신감을 가진 후 온 가족이 보고 즐길 수 있는 본격적인 극장용 명작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보고자 어려운 제작환경에서 과감한 모험을 시작했다.

<오세암> 의 프로듀서를 맡았던 이정호 “마고21“ 대표는 그때 시작당시 상황을 얘기하며 가뜩이나 애니메이션 시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극장용 장편을 기획하고 또한 작품이 전체적으로 무거워 요즘 사람들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많이도 말렸다면서 그래도 <오세암> 을 포기하지 못했던 것은 그 작품이 끌어당기는 말할 수 없는 힘이었고 이 작품은 만은 뭔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오세암> 은 화려한 액션도, 변신과 마술이 난무하는 환타지도, 10대들의 애뜻한 사랑도 없는 서정적 사실주의에 바탕을 둔 동화 애니메이션으로 산 속 설악산 깊게 자리잡은 절간과 암자가 유일한 배경으로 등장하고 눈먼 소녀와 그의 남동생이 죽은 엄마를 찾고자 애태우는 슬픈 사연은 분명 요즘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 또한 취향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작품의 주제와 특성을 이정호 대표는 오히려 커다란 장점으로 보았던 것일까?

“요즘 노출되는 대부분의 애니메이션들이 시각적 화려함 또는 일시적 재미만을 추구함으로써 아이와 부모가 분리되고, 젊은층과 아동층이 분리되는 현실과 달리 [오세암]은 가슴 따뜻한 이야기와 맑은 서정을 표현함으로써 가족 누구나가 함께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 보아도 가슴 속 저편에 잠재되어 있는 맑고 따뜻한 동심을 느끼게 하며 점점 잃어가고 있는 삶에 대한 여유를 제공하고자 했다. ”

라고 피력하면서 다양하게 제작된 사례에 대해서도 다양한 윈도우로 노출된 점을 오히려 큰 장점으로 생각하였으며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매체들과는 달리 애니메이션 <오세암> 은 원작에서 대중적인 코드에 많은 각색 포인트를 두었는데 대표적으로 불교적 색채가 강한 작품의 기본 배경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코드로 바꾸었고, 또한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다섯 살 아이의 천진난만함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보다 밝고 따스한 이야기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간 일본 재패니메이션과 미국 애니메이션의 하청산업에 길들여진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이렇다 할 만한 작품을 기획하지 못한 체 무국적의 작품들을 만들어 내면서 한국애니메이션의 정체성 문제가 항상 대두되어 왔었다. 상업적 애니메이니션들 대부분이 한국적 소재를 많이 활용하긴 했으나 깊이있게 접근하지 못한 체 그 겉모양과 양식적 스타일에 매달려온 반면 “마고21”의 <하얀마음 백구> 와 <오세암> 은 한국의 인문학적 배경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정서로 다가가는 이야기를 과장과 꾸밈을 최소화하면서 품격있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작 <오세암> 은 동화작가 정채봉 선생이 설화를 바탕으로 각색하여 동화적으로 풀어내면서 누이동생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기본 줄기로 가져갔고 이를 애니메이션 <오세암> 에서는 대중성과 재미를 고려해 불교적 색채를 최소화하고 “바람이”라는 동물캐릭터를 만들어 넣음으로써 보완하고자 했는데 무엇보다도 이 작품을 빛낸 것은 길손이라는 캐릭터라고 생각되어진다. 맑고 순수한 영혼을 지닌 어린 소년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그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이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장난꾸러기적 면모를 통해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이 절의 엄숙함과 스님들의 절제된 행동과 대비되어 웃지 못 할 에피소드들이 연출되곤 한다.
이를 통해 작품 전체적으로 무겁고 어두운 기운을 일소하고 관객들로 하여금 울다가 웃다가하는 감정의 기복을 크게 줄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첫 번째로 제작기법을 2D 디지털애니메이션 기법을 사용하여 따스한 정서를 전달하고자 하였으며 눈 내리는 장면과 물이 햇빛에 반짝거리는 장면 등 부분적으로 3D를 사용하여 보다 사실감을 덧붙여 주었다.
한국적 서정적 사실주의를 구현하려는 감독과 스탭진의 노력을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 배경제작을 위해 설악산을 3회의 직접 답사와 오세암 및 절들을 찾아다니며 수많은 스케치를 통해 얻어진 사실에 충실한 수채화 같은 이미지는 기존 2D애니메이션의 밋밋한 이미지를 보완하기 위해 컬러설정과 배경에 많은 공을 들여 밀도와 서정을 표현하는데 노력함으로써 얻어진 결과이다. 이는 실물을 촬영해 색을 덧입힌, 세월의 먼지가 곱게 앉은 단청과 탱화는 수공의 노력의 성과가 돋보이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 작품길이 75분으로 간결하게 끝을 맺는 <오세암> 은 총 제작기간 2년 반에 국내 장편애니메이션 중에서도 눈에 띄게 적은 액수인 15억원으로 제작됐다. 이는 나날이 높아가는 제작비와 늘어나는 제작기간 등 덩치만 커가는 블록버스터형 애니메이션에 대한 반성을 말없이 실천으로 보여준 예라 하겠다. 한탕주의로 기대치만 높여놓은 체 뒷감당을 못하는 허약한 한국 애니메이션의 현실은 아직도 어둡기만 한 것이다.
15억원이면 실사 멜로영화 한편 찍는 비용인데 이것으로 수준 높은 애니메이션 제작이 가능했던 것은 아마도 투니버스 재직시 TV용 애니메이션 기획 제작에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쌓은 이정호 PD를 중심으로 프로젝트의 군살빼기와 백성엽 감독과 스탭진들의 의기투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이와 더불어 “마고21”이 여타의 프로덕션과는 차별성을 가지는 설립배경과 모토를 내걸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는데 투니버스 초창기부터 TV 방송용 애니메이션 기획 및 제작에 참여하며 나름대로 노하우를 축적하며 한국적 애니메이션 제작에 관심을 가져오던 이정호PD와 기존 제작사에서 이미 많은 제작경험과 실력파인 성백엽 감독과 스탭진들이 결합하면서 탄탄한 팀웍을 바탕으로 첫 번째 작품으로 <하얀마음 백구> 에 이어 장편 애니메이션 <오세암> 을 기획 제작하게 된 것도 아래와 같이 설립당시 내세운 목표를 통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과 인간사랑에 바탕을 둔 동양적 인본주의를 회사의 기본이념으로, 지식기반의 문화세기가 될 21세기에 동양 문화에 기반을 둔 선구적인 종합문화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자리매김하는 것”

길손이
5세의 사내 아이. 티없이 맑은 눈을 한 동심 그 자체. 앞 못보는 누이인 감이를 위해 세상의 모든 것을 말로서 설명해준다. 그러다 보니, 그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과 이야기할 수 있는 재능이 생겼다.
스쳐지나가는 바람에게서 풍문을 듣고, 가는 길에 지루하지 않게끔 별과 이야기한다. 그리고 틈틈히 나타나는 다람쥐와 토끼와 어울려 고 또래의 마음을 주고 받는다.
소년의 의심 없는 마음을 눈여겨본 스님에 의해 암자로 가게 된다.

설정스님
아이들의 대변인이자 기적을 세상에 알리는 메신저...
길손과 감이의 순수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그림자처럼 아이들을 돌본다.

감이
길손의 누이. 비록 앞을 못 보지만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일일이 이야기해주는 동생 길손 때문이다...
바람과 달과 별의 모습을 일일이 설명해주며 그의 길동무인 온갖 동물들과도 교감하게 만들어준다...


이밖에도 스님들과 바람이(삽살개), 악동이 형제와 그들의 어머니 등이 등장한다. 장편치고는 캐릭터 설정이 간소한 편으로 이는 작품의 등장배경이 산속의 절로 한정된 것도 이유일 것이다.

기존 국산애니메이션 작품들과 다를 수밖에 없었던 <오세암> 제작과정의 이야기들을 몇 가지 소개한다.

두 번째는 캐릭터설정과 디자인으로 한국 어린아이의 표준에 가까운 길손이 얼굴을 만드는 일이었다.
길손이의 천진 난만한 모습을 얼마나 친근감 있고 자연스럽게 표현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일단 길손이의 사실적이고 정감 어린 캐릭터를 설정하기 위해 캐릭터 디자이너는 실제 5살 어린아이의 체형과 특징을 고려해 쌍거풀 없는 외눈에 약간 눈 꼬리가 올라간 눈, 작고 도톰한 입 크기 등은 한국 어린아이의 표준 얼굴로 탄생하였고 또한 길손이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위해 성백엽 감독은 마침 다섯 살인 딸 예지의 움직임을 매일 관찰하고 카메라에 담았다.
다섯 살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있는 모습, 뛰어 다니는 모습, 나뭇가지를 향해 팔을 뻗은 모습 등의 동작 하나 하나는 모두 실제 다섯 살 아이의 동작을 참고해 그린 것으로. 꼬마 길손이의 모습은 이렇게 스크린에 옮겨져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세 번째로 애니메이션 <오세암> 은 <하얀 마음 백구> 를 시작으로 약 5년간 호흡을 맞춰온 제작진의 프로젝트였다.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기존의 제작 환경과 달리 프로듀서를 중심으로 시나리오 작가, 감독, 캐릭터 디자이너, 배경감독 등 전 스텝이 프리프로덕션 단계부터 작품에 대한 진지한 구상과 의견을 최대한 공유하며 진행했다.
이러한 팀웍을 바탕으로 한 프로듀서 중심의 제작 시스템은 <오세암> 이 같이 출발한 다른 애니메이션들에 비해 단기간에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완성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바로 이 탄탄한 기획력과 한국형 애니메이션의 새 장르를 개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받아 애니메이션 <오세암> 은 2001년 영화진흥위원회 저예산 영화 제작 지원 및 2001년 우수문화 콘텐츠 사전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되었다.

네 번째로 기획단계부터 배급 마케팅까지 세밀한 계획을 세워 추진한 재대로 된 모델로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주제가 <마음을 다해 부르면> 을 윤도현, 이소은이 불러 OST를 출시하고 샘터에서 출판한 <애니동화> , 파랑새에서 출판한 만화 <오세암> 및 각종 상품출시 등 아동문학 및 만화 등 출판을 연계한 것도 참신한 부분이다. 특히 사운드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길손이의 목소리 성우를 맡은 MBC 공채 15기 성우 김서영씨의 자연스러운 연기도 돋보였다.

오래간만에 보기드문 작품을 만난 관계자 및 관객들은 흥분했다. 이제야 한국애니메이션 뭔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너무나 슬프고 감동적인 한국애니메이션을 만날 수 있어 행복해하던 순간도 잠시 오세암은 지난달 개봉 1주일만에 막을 내리게되었다. 극장들의 얄팍한 상업주의에 내몰려 보고싶은 관객들이 볼 권리를 빼앗기는 현실이 바로 한국애니메이션의 현장임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관객들이 상업주의의 행포에 가만히 당하지만은 않았다.
오세암 서포터스에 유명 연예인이 참여하는가 하면 국내 애니메이션을 지지하는 인터넷 동호회 '한국 애니메이션 서포터즈 모임'은 지난달 9일부터 이 단체의 홈페이지(http://zzaru.net/~kaf)를 통해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영화의 조기종영을 반대하고 재상영을 요청하는 내용의 서명운동에 참여한 네티즌들은 수천명에 달한다.

좋은 애니메이션 잘 만드는 것이 감독과 프로듀서, 제작진들의 몫이라면 그것을 지켜내고 오래도록 사랑해주는 것은 관객의 몫이라 생각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애니메이션을 접하고 좋아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한국 애니메이션은 발전하는 것이리라...

이 작품의 총감독이었던 성백엽 감독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대신하고자 한다.

"오세암은 가슴으로 봐야된다"

오세암이 몇십만 또는 몇백만의 관객을 모았다는 수치적인 흥행 대박도 욕심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을 울리는 대박이 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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