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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영상 | 리뷰

고독한 영혼이여, 아름다운 세상 속으로 ‘5센티미터’ 가까이

2007-07-10



너 그거 아니?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초속 5센티미터.
벚꽃이 떨어지는 찰라. 꽃 비를 내리는 그 아름다운 시간 속의 초속 5센티미터. 그 순간의 햇살과 바람, 그 모든 공기의 움직임을 처연한 아름다움으로 표현해낸 애니메이션 ‘초속 5센티미터’를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눈물이 고인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고교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다. 하굣길에 자전거를 타고 가며 노을진 하늘을 봤는데, 눈물이 날 뻔한 기억이 있다고 한다. 자연과 우주의 일치감을 느낀 듯한 순간이었다고.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 아니라도 이런 경험은 한 번쯤 있을 것이다. 감독은 금세 잊혀지는 일상의 순간, 그 순간의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의 떨림을 그려 내고 싶었던 것이다. 유통기한 짧은 기억 속의 아름다운 순간을 실제의 시간보다 더욱 아름답게 그려낸 ‘초속 5센티미터’를 감상해보자.

취재 | 권연화 기자 (yhkwon@jungle.co.kr)

실사 같은, 사실적인 영상의 3D 애니메이션이 여러 메이저 영화사에서 나오고 있는 요즘, 2D 애니메이션이 영화관에서 상영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다. 3D 애니메이션을 볼 때와는 또 다른, 잠자고 있던 감성을 자극하는 ‘초속 5센티미터’를 만든 사람은 바로 ‘빛의 작가’라고 불리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다.
그는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별의 목소리’ 등의 애니메이션을 1인 제작시스템으로 만든 바 있다. 그림도 전공하지 않았고, 컴퓨터 게임회사에서 타이틀 오프닝을 제작한 경험이 전부인 그가 퇴근 후에 집에서 혼자 만든 영화가 바로 ‘별의 목소리’이다. 이 영화 하나로 그는 천재 애니메이터로 이름을 알리며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다.
‘초속 5센티미터’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과 소수정예 군단이 모여 만들어낸 신작으로, 개봉 전에 영화의 3분의 1인 제1화 벚꽃이야기가 인터넷 선행판으로 공개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뜨거운 관심이 쏟아지고 있었다. 얼마 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의 개막작으로 선정되었고, 전회 매진되는 기록을 만들기도 했다. 초속 5킬로미터의 속도로 재패니메이션의 바람을 몰고 오는 이 애니메이션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총 3편의 이야기로 구성된 ‘초속 5센티미터’는 토노 타카키가 초등학생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의 이야기로, 어린 시절 특별한 마음을 나누게 된 소년과 소녀가 헤어지게 되고, 시간이 흘러 성장해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내용이다. 제1화 벚꽃이야기, 제2화 코스모나우토, 제3화 초속 5센티미터의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이유는 감독이 단편영화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꼭 극장에 가지 않아도 휴대용 플레이어로 지하철에서, 학교를 마친 뒤, 잠자리에 들기 전과 같이 일상 속에서 볼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3편의 단편은 연결되는 이야기지만, 각각 따로 보아도 좋을 영화가 되었다.

감독은 자신이 정말 보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정말로 절실한 무언가를 주제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또 무엇을 위해 만드는가가 중요하다. 누가, 몇 명이 만들었는지는 그에게 중요치 않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으니, 어떤 유행에도 휩쓸리지 않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만의 색깔이 분명히 나타난다.

‘초속 5센티미터’에서 단연 돋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은 감독의 의도였다. 극적인 드라마도 하늘의 어떤 계시도 거의 없는 일상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매우 깊은 맛과 아름다움이 여기저기 가득 차 있는 세상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눈에는 보인다.
교실의 책상 위로 비치는 햇살, 폭설이 내리는 기차역, 도심의 건물 틈으로 새어 나오는 아침 햇살, 벚꽃잎이 날리는 기차 건널목 등의 영화 속 장면들은 시신경을 거쳐 뇌리에 박힌다. 우리 일상의 순간들이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빛의 작가’라는 호칭이 붙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섬세하게 표현된 지하철역의 장면에서는 눈을 뗄 수 없다. 철컹 철컹 달리는 지하철 안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의 움직임이 익숙한 일상의 풍경보다 더 빛나고 더 따뜻하게 그려졌다. 영화를 보고 나가면 익숙하던 풍경이 평소보다 빛나 보이도록 하고 싶었던 작가의 따뜻한 배려가 느껴진다.

분명 아름다운 장면들이 돋보이는 영화지만, 그렇다고 볼거리만 많은 애니메이션으로 치부해버린다면 큰 오산이다. 국문학과 출신의 감독답게 대사 하나하나가 가슴을 파고든다.
“아플 만큼 귀에 갖다댄 수화기 너머로 그녀의 상처받은 마음이 손에 닿을 듯 느껴졌다.”라든가, “우리 앞에는 너무도 거대한 인생이, 아득한 시간이 감당할 수 없게 가로놓여 있다.”, “어느 정도의 속도로 살아가야 너를 만날 수 있을까?” 같은 대사는 사랑의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가슴으로 공감할 것이다.
살짝 대사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영화 ‘초속 5센티미터’는 나란히 걷고 있어도 어딘가 다른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한, 고독한 삶의 이야기이다. 우울하고 슬픈 내용임에도 등장인물 뒤의 배경은 아름답게 그려졌고, 또 우리가 실제로 일상생활을 하는 학교, 지하철, 편의점과 같은 장소가 배경이 되었다. 관객들이 실제로 일상을 살아가는 곳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나타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슬프고 고독한 사람들이라면 격려를 해주고 싶었다. 어느 한 인터뷰에서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는 고독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지는지 모르지만, 일본에서는 누구나 공감하는 소재이다. 가까운 친구나 부모 사이에도 고독을 느낄 수 있다. 결국 고독은 누구나 공통으로 갖고 있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만일 고독한 사람이 내 앞에 있다면, 힘내라고, 죽지 말라고 말해줄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니 계속 살아가는 편이 좋은 것이라고.”

무더운 여름의 시원한 소나기처럼, 햇살 좋은 봄날 하늘의 구름처럼, 눈처럼 날리는 벚꽃 아래 설레는 연인들처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선물 ‘초속 5센티미터’는 잠시 움츠렸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아름다운 세상 속으로 5센티미터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말이다.

원화의 선을 화면에 그대로 나타내는 작업을 했기 때문에 특히 선에 신경을 썼다. 그가 목표로 하였던 것은 신카이 감독의 독특한 터치를 가능한 한 잡아내는 것이었다. 처음에 본 신카이 감독의 그림 콘티가 무척 예뻐서 그것을 살리는 형태로, 캐릭터 디자인도 감독의 콘티를 충실히 재현하는 쪽을 택했다. “신카이 감독님이 말씀하시길, 타카키(주인공)가 서있는 모습이나 모양새가 저를 닮았다고 합니다(웃음). 의식하고 그렇게 그린 것은 아니지만 사진의 레이아웃 모델도 되었고, 아무래도 저 자신이 반영된 곳이 있긴 하더군요.” 이제 주인공 타카키를 보면, 니시무라 타카요의 모습이 그려질 것이다.

신카이 감독과 함께 탄지 타쿠미가 가장 중점에 둔 부분은 그저 디테일하고 리얼하게 그리는 것만이 아니라, 화면을 처음 본 순간의 정감이나 분위기를 중요하게 여겨보자는 것이었다. 탄지 타쿠미가 ‘초속 5센티미터’에서 가장 인상적이라고 생각한 장면은 새가 날아가는 장면이라고 한다.

마지마 아키코가 작업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제1화에 나오는 노선도였다. 역명이나 노선명도 전부 손으로 그렸다. 지나치게 투박하게 그릴 수는 없고, 너무 깨끗하게 그려도 안되어 꽤나 고생했다고 한다. 특히 개인적으로 힘이 들어간 건 카고시마의 장면. 그는 섬의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렸다.

그는 국문학을 전공했고 게임회사에 다니면서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를 만들었다. 이후 퇴근 후에 집에서 혼자 만든 ‘별의 목소리’로 일본 애니메이션 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혜성처럼 등장해 각종 애니메이션 상을 받았고, 일본 단편영화관 최다 관객 기록을 세웠다. 그의 첫 장편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역시 제59회 마이니치 영화 콩쿨 애니메이션 영화상을 비롯한 캐나다의 판타지 영화제 금상,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 경쟁부문에서 우수상을 받는 등 평단으로부터 인정받고 있고, 마니아들의 열광적인 지지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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