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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영상 | 리뷰

17분 간의 로고 세상

2010-04-22


프랑스 H5의 프랑수아즈 알로와 에르베 드 크레시, 뤼도빅 우플랭이 연출한 로고라마(Logorama)는 17분 분량의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이를 제작한 H5는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 골드프랩(Goldfrapp), 로익소프(Röyksopp) 등의 뮤직 비디오 제작으로 화제를 모은 영상 그룹. 로고라마는 깐느 필름 페스티벌에 이어 제 8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을 수상하며 높은 관심을 얻고 있다. 셀 수 없는 로고들로 이루어진 애니메이션 속 세상은 결국, 현대 사회를 날카롭고 또 재치 있게 풍자한다.

에디터 │ 이지영 (jylee@jungle.co.kr)
자료 출처 │ www.logorama-themovie.com, www.h5.fr, vimeo.com

애니메이션의 배경은 뉴욕 다음으로 미국을 대표하는 대도시, 로스앤젤레스다. 캘리포니아의 분위기를 양식화 해 보여주는 로고라마의 세상은 건물, 사람, 풍경, 동물, 소품에 이르기까지 온통 로고로 이루어져 있다. 약 17분짜리 단편 영화에 현재 및 과거를 통틀어 약 2,500개 이상의 유명 브랜드 로고가 사용된 것이다. 미처 다 세거나 알아채기도 힘들만큼 수많은 로고들 가운데서 흥미 진진한 스토리가 전개된다.

로고라마에 맨 처음으로 등장하는 로고는 말리부 럼(Malibu rum)이다. 그 다음으로 로스앤젤레스의 전경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물론 도시의 모든 건물이나 주요 공간은 상업적인 브랜드의 로고나 마스코트 및 대표 메시지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예를 들면 하늘의 새는 벤틀리(Bentley) 자동차 로고가 등에 새겨져 있으며, 나비들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AIM(보험사)의 아이콘 모양을 한 보행자, 아틀랜틱 레코드사의 로고 모양 산에 세워진 고속도로 사인 등도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등장하는 거의 모든 캐릭터는 모두 대중에게 유명하고 친숙한 브랜드의 대표 마스코트와 로고 등으로 처리했다. 게다가 주요 캐릭터와 줄거리는 할리우드의 유명 반골 감독, 로버트 알트먼(Robert Altman) 식으로 재현됐다고. 본격적인 이야기는 프링글스(Pringles) 마스코트가 식당의 주차장에 차를 댈 때, 흡연 휴식 시간을 갖던 에쏘(Esso, 석유 브랜드) 로고의 여종업원과 맞닥뜨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 옆에 주차된 순찰차에 타고 있던 미쉐린(Michelin) 마스코트 모양의 남자 경찰관 두 명은 동물원에 가둬놓은 동물들과 관련해 도덕성에 대한 논쟁을 벌이는 중이다.

한편, 도시 건너편에서는 밥스 빅 보이(Bob’s Big Boy, 유명 레스토랑 체인) 캐릭터와 하리보(Haribo, 독일 과자 브랜드) 캐릭터가 현란한 스타일의 게이, 미스터 클린(Mr. Clean, 다목적 세정제 브랜드)의 인솔로 동물원 투어를 하고 있다. 경찰관들이 점심을 주문하는 사이 라디오에서는 도망친 범죄자 로널드 맥도널드(Ronald Mcdonald)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고, 이들은 다급히 추적에 나선다. 추격 신이 진행되는 가운데, 동물원 구경을 마치고 돌아가는 스쿨버스가 등장한다. 에쏘가 점심 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 프링글스 오리지널과 핫앤스파이시 마스코트 캐릭터를 기다리고 있던 피자헛 바로 앞에서 맥도널드가 탄 트럭이 전복되면서 스쿨버스는 이 틈에 갇히게 된다. 그 사이 맥도널드의 트럭에서는 총과 생화학 무기가 쏟아져 나오고, 빅 보이와 하리보는 암시장에 내다팔기 위해 이를 훔치다 인질로 맥도널드에게 잡힌다. 빅 보이는 에쏘 캐릭터와 함께 피자헛 카운터 뒤로 숨고 격분한 로널드 맥도널드는 여기에 불을 지르고, 경찰관 중 한 명을 죽이게 된다.

이렇게 싸움이 벌어진 사이, 도시 전체에는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대규모 지진이 도시를 덮친 것. 경찰에게서 도망치던 맥도널드는 제니스(Zenith, 스위스 시계 브랜드) 로고 모양으로 땅이 갈라진 틈에 추락하고, 빠져 나오다가 빅 보이와 에쏘가 훔쳐 타고 도망가던 경찰차에 깔린다. 빅 보이와 에쏘가 고속도로를 타고 거의 도시를 빠져나가 거대한 할리우드 간판이 보일 무렵, 그것이 붕괴되면서 그들 바로 앞에 떨어진다. 소니 바이오(SONY VAIO) 형태의 고속 도로에서 갑자기 방향이 틀게 되면서 언덕 길로 미끄러지고, 아메리칸 센추리(American Century) 로고 모양의 나무에 차를 들이박는다. 설상가상으로 로스앤젤레스는 지진으로 갈라진 땅 틈새에서 기름이 분출되기 시작한다. 결국 원유 홍수가 난 도시. 에쏘와 빅 보이 캐릭터가 떨어진 언덕은 둘로 갈라지면서 거대한 노스페이스 로고를 드러내고, 마침내 그들 주위의 땅까지 무너져 내리면서 바다에 휩쓸린다. 조그만 섬에 남겨진 이들은 마치 아담과 이브 같은데, 아니나다를까 에쏘 걸은 애플(Apple)사의 로고 모양 사과를 든 채다. 영화는 더욱 많은 로고들로 뒤덮인 지구와 우주를 줌 아웃으로 비추며 마무리된다.

긴장감 넘치는 자동차 추격과 인질극, 오묘한 로고 및 마스코트 캐릭터 묘사, 거기에 온갖 장르 영화의 패러디 장면들까지. 17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영화는 보는 이에게 참신한 아이디어와 잘 짜인 내러티브 및 재치 있는 영상으로 즐거움을 준다. 동시에 로고와 브랜드로 점철된 현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시선도 놓치지 않아 기대 이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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